[가톨릭 쉼터] 동방박사, 그들은 누구인가?
‘예수 탄생’ 기쁜 소식 처음 접한 이방인 -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동방박사 이야기는 예술 작품의 단골 소재로 사용돼 왔다. 그림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1465-1467), 136×50cm, 우피치박물관. 아기 예수님의 구유 옆에는 언제나 성탄 이야기의 주요 인물인 동방박사가 함께 했다.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 9-11) 우리에게 익숙한 동방박사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처럼 성경에 알려진 제한된 정보만으로는 도대체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등 그들의 정체에 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관련 설은 많으나, 정확한 정보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김없이 돌아온 주님 공현 대축일을 맞이하며 그동안 알고 싶었던 동방박사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 꿈의 해석자? 점성가? 동방박사라고 번역돼 사용되던 그리스어 ‘마고이’의 단수 ‘마고스’는 본래 ‘현자’ 또는 ‘꿈의 해석자’ 라는 뜻이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마고스는 기원전 6세기경 민족인 메데인들 중 꿈을 해석하는 특별한 사제 계급을 가리킨다”고도 했다. 사제 계급만을 지칭하던 이 용어는 수세기 후 점술이나 마술 등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일반화 됐고, 훗날 예수님이 활동할 당시 디아스포라의 유대계 율법학자로 이름을 떨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스는 “마고스가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성향을 지닌 이들과 사기꾼 마술가로 구분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동방에서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온 이들을 가리켜 ‘마고스’라고 소개했고, 마태오 복음사가는 ‘마고스’의 다양한 의미 중에서도 특히, 천문학적 지식을 지니고 있던 이들을 ‘마고스’ 라고 함으로써 이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 동방에서 온 박사들 마태오 복음서에서 이들이 동방에서 왔다고 한 것은 아마도 당시 메소포타미아나 페르시아 등 팔레스티나 동쪽 지역에서 성행했던 점성술을 염두에 둔 까닭으로 보인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아닌 동방에서 온 이방인들이었던 것이다. 비록 그 계시가 유대 전통을 잘 아는 헤로데 왕의 도움을 통해 확인과정을 거치는 불완전한 모습으로 표현되고는 있지만, 이 이방인들의 모습을 통해 마태오는 예수님의 탄생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지 않는 보편적인 구원 사업임을 드러내고 있다. 별을 따라 나선 동방박사들은 아마도 시리아와 유프라테스강의 사이에 있는 시리아사막을 건너 시리아 알레포(Aleppo)나 팔미라(Palmyra), 다마스쿠스(Damascus)에 다다른 후 남쪽으로, 오늘날 이슬람 순례자의 길이라고 하는 메카 루트를 따라 내려오다가 갈릴레아 호수를 지나 예리코성으로 향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기 예수님을 만난 동방박사들은 꿈에 헤로데 왕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만일 처음에 왔던 길로 돌아간다면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을 거쳐 예리코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는 경로였겠지만, 그들은 남쪽의 브엘세바를 우회한 후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모압 지방에 있는 메카 루트를 이용, 사해 동쪽 경로를 통해 페르시아로 갔을 것으로 보인다. ■ 삼왕 가장 대중적인 전승에 따르면, ‘마고스’는 왕으로 지칭되고 있다. 대부분 교부들이 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2세기 말 테르툴리아노는 ‘마고스’를 왕들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6세기 유럽에서는 이런 전통을 계승 보완해 ‘마고스’를 왕으로 추대했는데 당시 주님공현대축일 전례를 시편 72편 10절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라는 내용과 연관을 짓기도 했다. 이러한 연관성은 이방인들을 향한 선교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황금, 유향, 몰약 등 아기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을 통해 동방박사들의 수를 세 사람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중화 돼있으나, 미술 작품에서는 2명이나 4명, 8명에 이르기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아울러 8세기부터는 세 사람에게 발타사르, 멜키오르, 가스파르 등 이름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또, 시리아 전승에서는 이들의 이름이 라르반다드, 하르미스다스, 구쉬나사프라고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이들의 이름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확실성이 부족하다. - ‘동방박사의 경배’(1618~1619) 피터 폴 루벤스 작, 245x325cm, 보자르 미술관. ■ 동방박사를 다룬 작품들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동방박사의 이야기는 예술 작품의 단골 소재로 쓰여 왔다. 그림부터 책, 영화 등에 이르기까지 그 분야도 다양하다. 2세기경 로마 카타콤바 중 프리실라, 베드로, 마르첼리노, 도미틸라의 카타콤바 등의 프레스코화와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보관돼있는 435년경의 모자이크, 550년경 라벤나의 성 아폴리나리오 누오보성당의 모자이크 등에서 동방박사의 경배 장면을 만나볼 수 있다. 4세기경의 라테란 궁전 석관 그림과 팔레르모에 있는 팔라티나 경당 모자이크 등도 역시 마찬가지. 이후에도 동방박사의 경배 장면과 별을 따라가는 모습, 헤로데 왕 앞에 선 모습 등은 꾸준히 그림으로 표현돼왔다. 이 밖에도 미셀 투르니에의 장편 「동방박사」를 비롯해,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도 동방박사의 일화를 만나볼 수 있다. 영화 ‘벤허’에도 동방박사 중 발타사르가 등장한다. 발타사르는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를 만나고 고국으로 돌아가다가 팔레스타인에서 장성한 예수님이 왕으로서 억압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팔레스타인에서 30년을 머물러 살았다고 그려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잘 몰랐던 동방박사의 실체를 정보의 재구성을 통해 살펴봤다. 우리가 알아본 동방박사는 빛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가장 축복되게 맞이한 신앙인의 모습이었다. 주님공현대축일을 보내며, 구세주의 빛나는 별을 따라 먼 길을 재촉한 동방박사의 모습처럼, 우리도 하느님께로 나 있는 신앙의 길을 따라 가는 구도자의 마음가짐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가톨릭신문, 2014년 1월 5일, 이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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