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덕 신부의 전례 이야기 ① 하느님 백성의 모임 112년 비트니아 지방(오늘날의 터키)의 총독 플리니우스가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을 보면, “(체포된 그리스도인들이) 말하기를, 자신들의 죄는 정해진 날 동트기 전 마치 신에게 하듯 그리스도에게 찬송을 드리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304년 “황제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왜 모였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49명의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신자들이 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는 주님의 만찬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주일 미사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주일에 제단을 중심으로 모이는 우리는 실제로 내적으로 깊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를 각자의 이름으로 부르십니다. 주님은 우리 세례일에 각자의 이마 위에 그분의 표지인 십자가를 표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 백성의 한 사람으로 받아주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날인 주일에 ‘당신을 기념하도록’ 당신 백성인 우리를 함께 부르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모든 도시와 마을, 모든 지역에서 당신 자녀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은 당신 백성들을 제단에 모읍니다. 이미 사도들의 시대부터 그랬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초기 그리스도 신자들이 늘 “같은 장소에” 계속 모여서 형제적 일치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분이 베푸시는 만찬을 거행했다고 전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일 때,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매 주일 우리가 가지는 주일 집회에서도 부활하신 분과의 이러한 만남이 이루어지며 주님의 현존이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임 가운데 들어오십니다. 주님은 성경이 봉독될 때 우리를 향해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찬례의 제대 위에서 우리를 위한 생명의 빵이 되십니다. 전례는 늘 미사의 이러한 보이지 않는 중심 사상과 신비를 우리가 깨달을 수 있도록 표지를 통해서 제시해 줍니다. 그래서 사제가 미사 시작 때에 제의실에서 나와 마이크 앞으로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첫 발걸음은 제대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는 제대 앞에 이르러 깊은 절을 하고 제대에 존경을 표시합니다. 어느 날에는 향을 피워 들고 제대 주위를 분향합니다. 제대는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믿는 이들을 한데 모으는 경외스러운 장소입니다. “주님의 만찬 없이는 그리스도인은 살 수 없다.”고 카르타고의 그리스도 신자들은 외교인인 재판장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주일날 주님의 제단 주위로 모여 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주님의 식탁’이며 우리는 이곳에 모여 있는 주님 백성의 집회 안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두고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 이번 호부터 최창덕(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의 미사전례 해설이 월 1회 연재됩니다. [2014년 1월 12일 주님 세례 축일 대구주보 3면,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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