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축일] 2014년 6월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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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성경주 | 작성일2014-06-25 | 조회수10,282 | 추천수0 | |
[대축일] 2014년 6월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축일: 6월 24일 라틴어 Joannes 독일어 Johannes 영어 John 요한은 “하느님이 사랑하는 자”,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이란 뜻이다. 보통 성인들의 돌아가신 날을 축일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탄생일을 축일로 지내는 분은 없다. 그래서 탄생일을 축일로 지내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 그리고 세례자요한 세분 뿐이다. 세례자 요한은 사제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아들로 태어났다.
귀도 레니 Guido Reni, 세례자 요한 St John the Baptist, muse des Beaux-arts, Castellon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살았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였으며, 회개의 표시로써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였고, 신약을 여는 선구자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세례자 요한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오 11,11) 루카 1, 5-17
열두 부족을 재건한다는 설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엘리야로 자처한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의인들의 생각으로 돌아서게 하여 주님을 맞이할 백성들 을 준비시킬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루카 1,13-15).
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6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7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8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9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 기로 결정되었다. 10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11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12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 혔다. 13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 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 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15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 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 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17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Birth of St John the Baptist- GHIRLANDAIO,Domenico. 1486-90 Gtrdvo Santa Maria Novella,Florence. ▲ Fra Angelico 1387 – 1455. 아기 이름은 요한이다. tempera on panel (26 × 24 cm) — 1434-35 아이의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상식을 따르는 것이다.그 반면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지금 이들 부부는 아이의 이름을 짓는 데 사람들의 상식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아이가 자라나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상식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낙타 털옷을 입고 십자가를 들고 계신 성 요한 즈카르야’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버지처럼 사제로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 명망이 높아 존경받고, 기득권도 누릴 수 있는 신분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의 상식이다. 그 반면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언자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오롯이 주님께 봉헌되어 명망과 존경보다는 박해를, 기득권보다는 광야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이 두 가지 갈림길에서 주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고 있다.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서 예수님에 의해 증명되었고, 태어나면서부터 평생을 나지르 사람으로서 바쳐진 수행자였으며, 메시아의 선구자, 선지자 엘리아의 정신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청년 시절에 광야에서 기도와 고행으로써 자신을 준비하고 부름 받을 때를 기다렸다. - '요한 세례자 탄생 기념 성당'은 5세기경에 세워졌지만,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고 십자군 시대에 재건됐다. 그 후 사라센의 침략으로 완전히 파괴돼 폐허로 변했다. 17세기에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에서 성당 복구를 시작해 1885년에 보수 및 개축한 것이 지금의 성당이다. - 요한 세례자 탄생 기념 성당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집터에 지어졌다 나자렛에서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친척 엘리사벳의 임신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무려 100㎞가 넘는 거리를 달려가 나이가 들어서도 아이를 갖지 못했던 사촌의 수태를 축하했다. 요즘 자동차로 가면 나자렛에서 아인카렘까지 2시간여 만에 갈 길이지만, 2000년 전 나귀를 타거나 걸어갔을 마리 아는 족히 사나흘이 걸려 아인카렘에 당도했을 것이다. - 교회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우물가에서 만났다고 한다. 교회는 처음부터 이 우물 위에 성당을 지어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을 기념했다. 사진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난 장소로 전해지고 있는 우물터다. 우리말로 '포도밭의 샘'이란 뜻을 가진 아인카렘은 또한 요한 세례자의 탄생지이다. 요한 세례자는 생후 6개월 만에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 박사를 통해 구세주 탄생을 알게 된 헤로데가 2살 이하의 아기들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전승에 따르면 엘리사벳은 학살을 피하려고 간절히 기도하자 앞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면서 그 안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 기적의 바위가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에 보존돼 있다.
에는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이 자리한다. 두 곳 모두 작은 형제회 성지보호 관구에서 관리하고 있다. 17세기에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에서 성당 복구를 시작해 1885년에 보수 및 개축한 것이 지금의 성당이다. 사진은 요한 세례자 탄생 기념 성당 제단 모습 - 요한 세례자 탄생 기념 성당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집터에 지어졌다. 제대 왼쪽 지하로 내려가면 자연 동굴이 있는데 바로 요한 세례자가 탄생한 자리이다. 이 지하 경당 제대 아래 석판에는 라틴말로 "Hic Praecusor Domini Natus est"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 주님의 선구자가 나셨다"는 뜻이다. 아기예수님이 아기 요한에게 물을 먹이고 있다. 자료 : 위키백과 / 광야의 소년 세례자 요한 광야의 청소년 세례요한 광야 수도원은 세례자 요한이 그의 공생활을 준비한 곳으로 수도원의 기원은 헤로데 대왕이 예수님의 탄생 후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야의 세례자 요한 세례를 베푸는 요한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살았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였으며, 회개의 표시로써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였고, 신약을 여는 선구자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세례자 요한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오 11,11) 그러면 세례자 요한은 어떻게 살았을까? 엘리사벳은 아기 요한을 헤로데의 군사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아인카렘에서 이곳으로 피신하여 왔다. 소렉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해발 590 미터에 위치하고 있는 외딴 곳이지만 동굴과 우물이 있어서 피신 장소로는 적합한 곳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엘리사벳은 이곳 동굴에 세례자 요한을 숨겨 군사들로부터 보호하였다고 한다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은 두 가지를 기념하는 성지이다. 하나는 루가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세례자 요한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회개를 선포하기 이전에 성장한 장소이고 다른 하나는 요한의 어머니 성녀 엘리사벳이 묻힌 무덤이 있는 곳이다. 엘리사벳의 무덤은 비잔틴시대, 십자군시대의 건물 위에 다시 20세 기에 건축되었다. 정결례를 위한 연못에서 넘쳐흐르는 물은 바로 아래에 있는 연못으로 흐른다. 깊이 4미터나 되는 이 연못에 는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고, 주위로는 아름다운 꽃들과 코알라가 즐겨 먹는다는 거대한 유칼립투스(eucalyptus)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있어서 이곳을 방문하는 누구나가 머무르고 싶은 욕심을 내는 곳이기도 하다. 연못 바로 옆에는 세례자 요한의 동굴이 있다. 길이가 6m, 폭이 3m 그리고 높이가 대략 2m되는 동굴은 성녀 엘리사벳과 아기 요한의 숨결이 묻어 있는 동굴이다. 주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에게 그의 겸손함을 간구할 수 있는 동굴이기도 하다.
왼쪽은 정결례를 하는 곳이고, 오른쪽은 세례자 요한의 동굴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은 1년 내내 마르지 않는 바위 속에서 솟아 나오는 샘물과 세례자 요한을 숨겨줬고 엘리사벳이 요한과 함께 살았다는 동굴 바로 위에 세워져 있다. 정교회 신자들은 우선 계단을 내려와 먼저 샘 으로 가서 세례자 요한이 마셨을 그 물을 마시는 것으로 순례를 시작한다. 그리고 준비해 온 병에 정성껏 물을 담아간다. 세례자 요한의 동굴 입구 세례자 요한의 동굴 내부에 있는 벽화 광야의 삭막함보다는 풍요와 생명이 느껴지는 이곳이지만 밤이 되면 마치 유다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자 요한의 ‘소리’(마르 1,3; 마태 3,3 ; 루카 3,4 요한 1,23 참조)처럼 적막을 깨고 울어대는 자칼과 여우 등의 뭇 짐승들이 있어 고독을 더욱 느끼게 한다. 마르 1,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고요와 침묵이 있는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은 ‘은수자’의 전승을 이어가는 관상과 기도의 장소이다. 무엇보다도 유대교 뿐만 아니라 정교회 등 타 종파들과 그리스도 교파들에게 활짝 열려진 친교의 장소 이기도 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 3,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장차 오게 될 메시아의 증인이 되었다.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마련하였다. 그는 선교의 초기부터 자기는 메시아가 아니라면서, 장차 오게 될 메시아의 증인이 되었다. 첫째, 세례자 요한은 은수자처럼 살았다. 은수자들이 살던 동굴들. 요한의 동굴 밤이면 자칼과 여우의 소리가 들린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루카복음 1,80) 그의 거처는 광야였다. 그의 옷은 낙타털로 된 옷이었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그는 욕망을 절제하며 검소하게 살면서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부여한 사명을 수행할 준비를 갖추었다. 죄를 용서 받기위해 회개의 세례를 받을 것을 전달 하는 요한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의 재위 15년째인 28년에 하느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자, 그는 베타니아의 요르단 계곡으로 갔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으니 죄를 용서 받기위해 회개의 세례를 받을 것을 전달 하였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하느님의 어린양이 오신다 둘째, 세례자 요한은 겸손하게 살았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사람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겸손하게 예수님을 들어올렸다. 그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마태오 3,11)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 세례자 요한은 “당신은 누구요?” 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서슴없이 대답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요한 1,23) 그는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었고, 주님의 길을 곧게 내는 길잡이로서 모습을 보여주었다. 헤로데가 동생의 아내와 결혼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세례자 요한 ▒ Caravaggio. 세례자 요한의 참수. oil on canvas (361 × 520 cm) — 1607-1608 Museum of St. John, La Valletta ▒ 세례자 요한의 죽음(마태 14,3-12)이 내용이다. 괴짜 화가인 Caravaggio는 이 작품을 말타섬에 있을 때, 말타의 수도인 Valletta에 있는 성 요한 대성당의 제단화로 그렸다. 셋째, 세례자 요한은 의롭게 살았다. 당시 종교와 국가의 지도자들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었다. 신앙심은 크게 약화되었고, 종교의 생명력은 율법의 형식주의와 권위주의에 의해서 타락하고 무기력해져 버렸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로서 불의를 꾸짖는데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영주 헤로데가 동생의 아내와 결혼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했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왕의 잘못을 꾸짖었으며, 마침내는 헤로디아의 딸의 춤 값으로 참수를 당하게 되었다. 그는 불의를 책망하였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의롭게 생을 마감했다. 오실 메시아에 대해 증언하며 주님의 길을 닦는 세례자 요한 예수님의 세례 / 바티칸궁 넷째, 세례자 요한은 사명대로 살았다. 세례자 요한의 사명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그는 하느님 나라의 임박함을 선포하였고, 요르단 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는 예수님께도 세례를 주었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그렇다. 오늘날도 세례자 요한과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이란 세례자 요한처럼 주님의 길을 닦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은 삶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는 극기의 삶을 사는가? 너희는 겸손하게 사는가? 너희는 의롭게 사는가? 너희는 너희의 사명대로 사는가? 그냥 의미 없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례자 요한은 삶의 의미를 선명하게 심어주었다.
자료 :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 -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그림 읽어주는 신부/손용환신부님 / http://blog.naver.com/sonyh252/120132934018 편집 : 불광동성당 미디어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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