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숲] 유다교의 회당 예배와 그리스도교의 말씀 전례 그리스도교 전례의 창시자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에서 시작된 전례 예식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은 것이 아니고 유다교 예배의 영향을 받아 태어났고 자라났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유다교 문화에서 태어나시고 그 안에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회당 예배에 참석하셨으며, 예루살렘 성전을 “하느님 집”(마태 21, 17)이라고 일컬으셨습니다. 유다교 회당, 곧 “시나고가”(“함께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그리스말)의 기원은 바빌론 유배 시대로(기원전 597-537) 거슬러 올라갑니다. 귀양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계속하여 회당 예배를 하였습니다. 회당 예배 때문에 유다인들은 이제 희생제사보다는 성경의 독서와 공부 그리고 묵상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회당은 예배의 장소일 뿐 아니라, 학교, 도서관 기능도 가졌고,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로도 활용되었습니다. 이렇게 회당에서 종교 생활과 사회 활동이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에 공동체의 중심으로 여겼습니다. 유다인들에게는 회당 없는 도시에 사는 것이 금지되기도 하였습니다. 말씀 전례는 회당 전례의 영향 받아 미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신 마지막 만찬을 기억하는 예식입니다. 이 파스카 저녁 식사는 안식일에 전통적으로 유다인 가정에서 지키던 예식적 식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식은 회당 예배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사의 말씀 전례는 회당 예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도들과 초대 교회 신자들은 기도하고 하느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유다교 회당에 모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무너진 다음에도 이 현상은 한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회당에서 멀리해야 한다는 의무나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아가 사도들은 팔레스티나와 다른 지역에서 능동적으로 회당 예배에 참여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바오로 사도는 전교 여행 때 자주 회당에 모인 공동체서 설교하였습니다. 바오로는 회중에게 권면하고 구원의 역사를 간단하게 말하며 수난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에 관하여 설교하였던 것입니다(사도 13, 14이하; 16, 13 참조). 회당 예배는 본질적으로 하느님 말씀 전달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미사의 첫 부분은 말씀 전례입니다. 물론 회당에서는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을 희망하지만, 교회 전례에서는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선포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러나 말씀 전례는 회당 전례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합니다. 실제로 안식일(토요일)의 회당 예배와 미사의 말씀 전례 요소를 비교해 보면 비슷한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회당 전례는 저녁과 오전 오후 하루 세 번 이루어집니다. 성경 구절과(신명 6,4-9) 찬양 기도문들로 이루어진 “쉐마”(아침 저녁), 그리고 “18개의 찬양 기도문”으로 이루어진 “트필라”가 중요합니다. 또한 성경 독서와 설교가 있고, 노래들도 있습니다. 전례의 주례자는 “하잔”(노래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꼭 랍비일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155년 무렵 순교자 유스티노는 미사를 묘사하는 증언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비록 순서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회당 예배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스티노는 “태양의 날”, 곧 주일에 함께 모인다고 말하며 자신의 증언을 시작한다. 이어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사도들의 기억과 예언자들의 글을 읽습니다. 그 뒤에 독서자가 독서를 마치면, 주례는 참석자들을 권고하고 들은 훌륭한 교훈을 본받으라고 충고하는 말을 합니다. 이어서 우리는 모두 일어서서 기도를 바칩니다.” 성찬 전례가 뒤따르고 미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모금으로 마칩니다. 미사 뒤에는 부제가 병자들이나 불참자들에게 봉성체를 합니다. 회당 예배와 말씀 전례는 다음과 같이 표를 만들어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회당 예배 말씀 전례 신앙 서약 (쉐마) - 시편 시편 ( ? ) 독서 (율법서, 예언서) 독서 (율법서, 예언서, 복음) 강론 강론 18개 찬양 기도문 청원기도 강복 - 가난한 이를 위한 모금 가난한 이를 위한 모금 유스티노가 말하는 말씀 전례에는 회당 예배의 쉐마(신앙고백)와 강복을 제외하고 다른 요소들은 모두 다 있습니다. 유스티노가 말하는 “기도들”은 “신자들의 기도” 또는 “보편 지향 기도”라고 부르는 기도로서 유다교의 대표적 기도인 “18 축복 기도문”에 해당합니다. 회당 전례에 속하는 이 기도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부분은 찬양의 특징, 마지막 부분은 감사의 특징을 지닌다. 중심 부분은 축제에 따라 바뀌는데 그 이유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청원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기도는 “신자들의 기도”의 특징을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유스티노가 말하는 “기도들”에는 시편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회당 전례에서는 성경 독서 전에 시편을 선택하여 낭송하였는데, 초기 교회에서도 시편은 매우 친숙한 기도였습니다. 회당에서 “베마”라는 독서단이 매우 중요 보통 그리스도교 성당 기원을 이교도 공회당(바실리카)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성당의 기원과 발전은 팔레스티나 지방의 가정 집, 그리고 유다교 회당과도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회당과 성당의 건축 구조가 비슷한 것은 두 전례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회당에서 보통 예루살렘을 향한다고 합니다. 유다교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다니 6, 11)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를 바쳤기 때문입니다. 회당에서 중요한 것은 성경(율법서, 곧 모세 5경) 두루마리를 담고 있는 “거룩한 궤”, 곧 “율법서 책장”으로 예루살렘을 향한 벽 쪽에 있습니다. 후대 관습이지만 그 위에는 늘 불이 켜져 있는 등불이 예루살렘 성전, 특히 주님 현존을 나타내는 “메노라”(일곱 촛대)를 기억시킵니다. 또한 회당에서 “베마”라고 하는 독서단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베마는 본디 그리스말로 법정에서 고발인과 변호인이 연설을 하는 조금 높은 곳을 가리켰습니다. 또한 율법학자 에즈라가 백성들에게 율법서를 읽어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나무 단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느헤 8, 3). 회당의 베마는 회중이 하느님 말씀을 잘 듣게 하기 위하여 조금 높여 만들어졌습니다. 독서자는 여기서 성경을 읽고 풀이하였습니다. 베마는 그리스도교는 물론 이슬람교 성전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방 교회는 조금 넓어진 뜻이지만(서방의 제단) 지금도 “베마”라는 이름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참회자들, 성당 문 앞에서 자루 옷 입고 머리에 재 뿌려 또 다른 요소는 복음서에서 말하고 있는 “모세의 자리”(마태 23, 2)입니다. 회당 주임 자리인지 아니면 독서를 하던 사람 자리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공동체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사용한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성당의 경우 주교좌(카테드라), 곧 주례석은 반원 부분 안쪽에 있습니다. 여기서 주교는 자기의 “감독” 임무, 곧 공동체를 살펴보고 자기 백성의 스승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한편, 성당과 회당에는 모두 보통 주랑이 받치고 있는 “안뜰”이 있습니다. 고대 성당의 “안뜰” 가운데에 작은 동산(낙원)과 성수대가 있고, 여기서 현관방(참회자실)을 통하여 성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고대 교회에서 공적 참회의 관습을 보면 참회자들은 성당 문 앞에서 자루 옷을 입고, 머리에 재를 뿌렸습니다. 회당의 안뜰에도 비슷한 예식이 있었습니다. 단식 날에는 “거룩한 궤”를 안뜰에 꺼내 놓고 재를 발랐고, 참석자들도 재를 바르고 원로가 하는 참회의 권고를 들었습니다. “우리 형제들이여, 주님께서는 니느베 사람들이 한 참회의 자루 옷과 단식을 보시지 않고 그들이 한 행실은 보십니다. 그들은 악행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너희 옷이 아니라 심장을 찢어라.’하고 말합니다.” 오늘날도 교회는 참회의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얹으며 독서에서 요엘 예언자의 똑같은 권고를 듣습니다.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2,13).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5월호, 심규재 실베스텔(신부, 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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