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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전례를 살다: 제대와 감실의 관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21 조회수9,398 추천수1

[전례를 살다] 제대와 감실의 관계 (1)

 

 

제대는 교회의 원천이요 머리요 중심이신 그리스도 신비의 표지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그리스도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제대 없이 그리스도를 언급할 수 없다”라고 데살로니카의 시메온은 말했습니다. 이처럼 제대는 전례 거행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신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1코린 10장 21절에서 사도 바오로가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도교의 제대는 ‘주님의 식탁’입니다. 제대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제직을 통하여 인간 구원과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이루는 데 필요한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식탁인 것입니다. 

 

따라서 제대는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사이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중심점이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놀라운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도 제대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전례 거행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제대이며, 그리스도인의 삶과 예배에 있어 그 중심이 됩니다. 이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서 제대에 대해 깊은 존경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대가 중요하다면, 우리는 당연히 제대의 변화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제대 :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곳 

 

우리 신앙의 중심을 이루면서 모든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 되는 미사 곧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해서 신자들은 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박해 시대에는 신자 가정집에 모였고 종교 자유를 얻고 나서는 교인들 모임을 위한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곧 성당입니다. 성당은 전적으로 예수님을 기리는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한 공간이었기에 당연히 제대가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대 위에서 성찬 전례가 거행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제대가 차지하는 자리가 각별하였기에 교회는 예로부터 제대에 특별한 존경심을 드러내 왔습니다. 

 

처음에는 나무로 만든 식탁과 같은 형태였으나 점차 돌로 만들어 그 품위를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즉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 생명의 물이 솟아나오는 바위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기에는 돌제단이 적합하였고, 이에 따라 제대에 대한 신자들의 공경심도 커졌기 때문에 항구적인 제대를 선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정으로 돌 대신 나무로 만들 경우에도 축성한, 십자가가 다섯 개 새겨진 돌판을 나무 제대 위 홈에 안치할 정도로 제대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져 왔습니다. 8세기까지 제대의 모양은 아주 단순하였습니다. 하지만 순교자 무덤 위에 성당을 세우고, 그 중심에 제대를 세우면서 순교자의 유해 또는 유품을 제대와 연관시키게 됨에 따라 그 형태가 다양해졌습니다. 

 

제대에 성인의 유해 또는 유물을 모시는 관행은 1596년 교회법으로 확정되었으나, 지금은 성인의 유해와 상관없이 제대를 축성하여 사용합니다. 16세기까지 성체를 모시는 감실은 성당의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자리를 잡았지만, 16세기 이후 제대 위 또는 제대와 가까운 곳에 감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를 장식하기 위한 꽃, 초, 십자가를 위한 자리도 16세기 이후에나 등장합니다. 원래 초는 빛을 밝히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였으며, 11세기 이후 제대 근처에 놓이면서 빛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게 된 것이고, 꽃은 16세기 이후에나 제대에 놓도록 허락되었습니다. 

 

성당이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요, 또 그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곳이 제대인 까닭에 성당의 중심은 언제나 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대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돌로 만든 제대는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는 바위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제대가 그리스도의 무덤을 상징한다거나, 그리스도의 수난을 드러낸다고 말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제대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 성찬례를 거행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이 맺은 구원의 계약을 갱신하는 장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대는 주님의 최후 만찬, 하늘나라의 잔치가 거행되는 식탁이기도 합니다.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먹고 마시는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미리 천상 잔치를 맛보게 만드는 장소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를 드리는 곳이 바로 제대입니다. 이처럼 제대는 그리스도와 함께 온 신도가 같이 친교의 식사를 나누는 곳이며 그리스도의 제사가 바쳐지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성당을 축성하는 예식 때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은 제대 축성입니다. 

 

이처럼 제대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제대에 걸린 그림이나 조각, 그 위에 놓인 초나 제대 주위를 장식한 꽃을 보고 감탄하고, 제대 자체보다 여러 장식들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때가 많습니다. 사실 그런 요소들은 제대로부터 우리 마음을 멀리하게 하는 것으로서 중세 말에나 제대 근처에 등장했던 것들입니다.

 

 

성당의 중심인 감실? 

 

성당의 중심은 제대이므로 성당 안에 들어설 때 제대를 향해 인사하는 것이 옳다고 교회의 공식적 가르침을 일깨우지만 실제 많은 본당에서는 제대가 아닌 감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전례 중에는 제대가 중심이 되는 것이지만 전례를 드리지 않을 때에는 감실이 중심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성당의 중심이 때에 따라 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우리나라 성당들 구조는 대부분 비슷합니다. 즉, 감실이 제대 뒤 성당 벽 중앙에 놓여 있거나 아니면 제대 왼쪽이나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제대와 감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서로 다투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닐진대, 오늘날 각 성당에서는 신자들이 제대와 감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일을 자주 볼 수 있음은 무슨 까닭일까요?

 

 

감실에 관한 간단한 역사 

 

제대와 감실 사이에 쓸데없는 오해가 생겨난 까닭을 알려면 먼저 감실의 존재이유와 그 역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생겨난 아주 이른 때부터 미사 중에 축성한 빵을 보존하는 관습이 존재했습니다.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들이나 병에 걸려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에게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이때는 지금처럼 성당이 있던 것은 아니고 예배드리기에 적당한 가정집에서 미사를 거행하였기 때문에 성당 안에 성체를 보존하는 장소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제의 집에 성체를 보관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종교 자유를 누리게 됨에 따라 성당이 건축되었으나 성체를 보관하는 장소는 여전히 성당 안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7~8세기의 문헌에는 성체가 제의방에 보관되어 있음이 나타납니다. 미사 중에 축성한 빵을 쉽게 보존하고 미사 밖에서 사용될 성체를 보관하기 위해서 아마도 제의방이 가장 적합한 장소였던가 봅니다. 

 

그러나 중세에 접어들면서 신자들의 신심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천사주의” 또는 “윤리적 엄격주의”라 불릴 수 있는 것으로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인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죄인의 마음으로 어찌 성체를 모시겠는가 하는 생각이 널리 퍼져서 미사 중에 영성체를 멀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미사는 라틴어로 바쳤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드려지는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성찬례 자체보다는 대중 신심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미사 중에 축성된 빵은 예수님의 몸이라는 믿음이 더욱 구체화되면서 성체 안에 예수님이 현존해 계시다는, 성체는 그 자체로 예수님의 몸이라는 믿음이 신자들의 마음을 잡아 당겼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영성체는 하지 않고 대신 성체를 “바라보는” 영광을 갖고자 열망했습니다. 이러한 신자들의 열망은 결국 성찬 전례 때 사제가 빵과 포도주의 축성 후 신자들이 볼 수 있게 받들어 올리는 예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신 성체를 성당의 가장 고귀한 자리에 모시고 싶어 하여 그때까지 성당의 중심 자리에 놓여 있던 제대 위에 감실을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감실은 신자들의 열망에 부응하여 제대를 물리치고 성당의 중앙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감실에는 화려한 장식이 따름은 물론, 예수님이 계심을 알리기 위해 언제나 빨간 등을 켜두는 관행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월간빛, 2015년 1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전례를 살다] 제대와 감실의 관계 (2)

 

 

무엇이 문제인가?

 

성당은 하나의 건축물이기도 하지만, 그 구조나 장식은 언제나 그 시대의 신학과 신심을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고딕식 건축 양식은 전적으로 하느님께로 눈길을 돌리고 그분만을 중심으로 삼았던 중세에 꽃핀 양식입니다, 화려한 장식이 주를 이루는 로코코, 바로크 양식의 성당은 신앙생활이 내적으로보다는 외양적인 데로 흐른 중세 후기에 발달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성당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신앙의 자리를 어느 정도나마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지어진 성당은 과장된 성체신심으로 인해 감실이 성당의 중심인 양 배치되고 장식되었으며, 대부분 제대 위나 제대 바로 뒤 성당 중앙 벽에 자리 잡았습니다. 영성체보다는 성체공경을 더 좋아하던, 신앙생활의 실천보다는 미사의 의무를 더 강조하던, 말씀에 따라 사는 삶보다 정적인 성체조배를 더 강조하던 당시의 신앙인의 모습이 이렇듯 감실이 중심이 되는 성당 구조를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잘못된 신심을 일소하고 말씀이 중심이 되는 신앙, 성찬례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 행동하는 신앙을 강조하면서 전례도 이에 맞추어 개혁되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회 이후에 지은 소위 현대식 성당은 외양이나 내부 장식에서 변화가 있을 뿐, 여전히 감실이 중심이 되는 옛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여 공의회 이전의 왜곡된 신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성당 구조가 이러하니 신자들은 여전히 성찬례 자체보다는 감실 안에 모셔진 성체를 공경하는데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성당 안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감실과 그 옆에 켜둔 감실등이니, 자연히 거기에 신경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아무리 말로는 말씀이 우리의 중심이다, 성찬례가 우리 신앙의 원천이다 해보았자 정작 신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감실과 그 안에 모셔진 성체입니다. 말씀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고는 하나 우리 신자들의 성경에 대한 관심은 어떠합니까? 미사에 참석하는 것은 단지 주일 의무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화려한 장식으로 이루어진 감실에 비해 말씀이 선포되는 독서대는 사정이 어떠합니까? 감실 안에 책이나 잡동사니를 넣어둔다면 펄쩍 뛸 우리들이 독서대는 어떤 식으로 관리하고 있습니까? 심지어 제대마저도 소홀히 취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 신앙의 원천이자 정점인 성찬례

 

우리가 미사(성찬례)를 지내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신 것은 제자들이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당신을 기념하는 가운데 죽기까지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고 실천한 주님의 모습을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찬례의 핵심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성변화(聖變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체와 성혈로 드러나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 즉 파스카 신비에 있습니다. 따라서 성찬례를 지내는 우리는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실 때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묵상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실천적인 삶을 사는데 있습니다. 내어주고 나누고 헌신하는, 한마디로 ‘위하는 삶’을 사는데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먹고 마심으로써 우리 자신이 바로 살아있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 봉사하고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중심인 성찬례(미사)의 본뜻이라 하겠습니다.

 

 

감실과 제대의 관계

 

감실은 성체를 모셔두는 자리입니다. 성체를 따로 모시는 까닭은 병자를 위해서, 어떤 사정으로 인해 미사에 참여하지를 못하는 신자에게 또는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나아가 미사 때 신자들을 위해 충분한 제병을 준비하지 못한 경우를 대비하여, 또한 미사 때 남은 성체를 보관하기 위해서도 감실은 이용됩니다. 물론 중세 이후 내려온 관습에 따라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흠숭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미사성제로서의 성체성사야말로 미사 없이 성체께 바쳐지는 경신례의 원천이요 목적이다.” 「성체공경 훈령」 3항과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신심 예식서」 2항에 나오는 이 선언은 성찬례로 대표되는 제대와 성체신심으로 대표되는 감실과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즉 감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 위에서 거행되는 성찬례와 그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파스카 신비를 신자들에게 상기시키는데 그 본래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달리 하면, 제대와 연계되지 않은 감실, 성찬례와 상관없는 감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감실이 신자들의 눈을 제대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감실의 본래 존재 목적에도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당 안에서 감실의 위치는?

 

교도권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지극히 거룩한 성체는 각 성당의 구조와 적법한 지역 풍습을 고려하여 성당의 한 부분에 감실을 만들어 모셔 둔다. 감실은 참으로 고상하고, 잘 드러나고, 잘 보이며, 아름답게 꾸민 곳에, 또한 기도하기에 알맞은 곳에 마련하여야 한다.”(미사경본 총지침 314항)

 

“표지라는 뜻에서 볼 때 미사가 거행되는 제대에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가 보존되는 감실을 두지 않는 것이 더 맞다. 그러므로 교구장 주교의 판단에 따라 감실은 아래와 같이 만드는 것이 좋다.

 

ㄱ) 거행에 쓰는 제대 위가 아닌 곳, 그리고 가장 알맞은 형태와 장소를 선택하여 제단 안에 설치한다. 더 이상 거행에 쓰지 않는 옛 제대 위에 설치할 수도 있다.(미사경본 총지침 303항 참조)

 

ㄴ) 또는 성당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그리스도 신자들의 눈에 잘 띄며 개인으로 조배하고 기도하기에 알맞은 경당에 설치한다.”(미사경본 총지침 315항)

 

“신자들이 사사로이 성체께 조배를 드리며 기도를 바치기에 알맞은 경당에 성체 모시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각 성당의 구조와 지역 풍습을 감안해서 성체는 제단에 모시든지 혹 성당의 뛰어난 자리에 적절한 장식을 갖추어 모신다.”(미사경본 총지침 276항, 1969년)

 

1969년의 총지침 276항에 따르면 감실은 사사로이 조배 기도를 할 수 있도록 경당에 모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유하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에 제단에 모시든지 성당의 뛰어난 장소에 설치하도록 권고한 반면, 2002년의 총지침 314항 시작에 감실을 성당의 한 부분에 모시길 권합니다. 이어오는 315항은 먼저 미사가 거행되는 제대에는 감실을 두지 않는 것이 더 맞다고 밝히면서 설치 장소를 ㄱ)에서 제대 위가 아니고, 그러면서 제단 안에 설치하기를 권합니다. ㄴ)에서는 구체적으로 개인적으로 조배하고 기도하기에 알맞은 경당에 설치하도록 지시합니다. 감실의 자리에 관하여 미사경본 총지침 초판(1969년)과 수정본(2002년)은 이미 1967년의 성체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 “성체의 신비”와 1964년의 예부성성의 “훈령”, “세계공의회”에 나오는 “중앙 제대” 또는 “주 제대 중간”이란 표현을 삭제하였습니다.

 

그러면 성당의 한 부분 또는 성당의 뛰어난 자리는 어디를 의미합니까? 원칙적으로 제대와 분리된 장소를 의미합니다. 감실은 상존하는 제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미사 밖에서가 아니라 제대 위에서 거행하는 성찬례 안에서 희생 제사를 봉헌하기 때문입니다. 감실은 더 이상 미사거행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적합한 성당의 중심 자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이후 제사의 우위가 조배나 경배에 앞서 공간 안에서 풍부하게 표시되어야 합니다. ‘성사적인 표지들’은 분명하게, 그리고 쉽게 볼 수 있고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의 원리의 새로운 성과입니다. 성사적인 표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보여줍니다. 중세에 지어진 오래된 성당은 제단 가까운 측면 공간에 별도의 작은 제대 위나 제대 가까이에 감실함이나 감실벽에 성체를 모시게 하여 신자들이 사적으로 조용히 기도하고 조배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성당 지하에는 항상 성체조배를 할 수 있도록 경당을 만들었는데 제대 옆에 감실함을 세워 두었습니다. 기도의 내밀함과 안정함은 이러한 형태의 경당에서 가장 잘 이루어지고 보장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당은 조용히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장소가 됩니다. 이는 총지침 315항 나)의 지침에 구체적으로 부합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제단과 가까이에 위치하여 성체를 모시고 움직이는데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신자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 성당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을 할 경우에는 제단에서 떨어진 좌측 또는 우측 전면이나 측면에 작은 감실을 모신 경당을 세우는 방법 또한 문헌이 제시하는 지침을 따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성체를 모셔두는 곳은 참으로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곳은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조배하고 기도하기에 알맞아야 한다. 곧 신자들이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께 혼자서도 쉽게 다가가 공경을 드리며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당 중심 부분이 아닌 곳에 경당을 마련하는 것이 더 좋다.”(미사 밖에서 하는 영성체와 성체신비 공경예식 9항 1973년) [월간빛, 2015년 2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전례를 살다] 제대와 감실의 관계 (3)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개혁을 열망하는 사람들도 있고 과거의 전통에 매달리는 “전통주의자”도 존재합니다. 이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에 따라 개혁된 전례서들 안에도 개혁주의자와 전통주의자들 사이의 갈등과 타협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서 앞서 소개한 두 문헌의 선언 내용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중세 이래의 전통은 예수님의 현존인 성체가 모셔진 곳이라 해서 감실을 특별한 자리에 마련하여 왔습니다. 이 때문에 이미 앞에서 말한 바대로 감실은 제대를 밀어내고 성당의 중심 자리인 양 인식되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조가 대부분의 성직자, 수도자들을 위시하여 신자들의 마음 안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이때, 위의 교도권의 가르침은 대단히 용기있는 선언이라 할 것입니다. 가능하면 성당 안이 아니라 따로 경당을 만들어 거기에 감실을 설치하라고 권고합니다. 파스카 신비의 장소인 제대는 감정보다는 이성에 호소하는데 반해 감실은 예수님의 현존이라는 감상적 정서에 호소하므로 신자들의 시선을 더 끌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당 안에 감실이 있을 때 신자들의 마음은 제대를 향하지 않습니다.

 

공간 확보가 어렵다거나 어떤 특별한 사정으로 경당을 마련할 수 없을 때 차선책으로 성당 안의 뛰어난 자리에 모시라고 교도권은 말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자리”가 성당의 중앙 위치, 즉 제대의 존엄성을 해치는 자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제대의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해 성체를 모실 경당을 따로 마련하라고 요청하던 교도권이, 제대의 위치를 위협(?)할만 한 중요한 자리에 감실을 배치하도록 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뛰어난 자리”란 성당의 제대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성체의 존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용하면서 기도 분위기를 돋울 수 있는 자리, 성당의 한 모퉁이 자리와 같은 곳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위의 문헌에서 소성당 또는 경당의 제대 위에 성체를 모시라는 권고는 중세 이래 내려온 관습을 인정한 것으로써 전통주의자들과의 타협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로마에 있는 4대(大) 성당(성 베드로, 성 바오로, 라테란, 성모 대성당)을 위시한 대부분의 고·중세 전통적 양식의 성당에 들어가 보면 제대 외에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빨간 감실등은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성당 측면 한쪽에 작은 경당을 만들어 거기에 성체를 모신 감실을 마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로마 옛 성당들의 구조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습니까?

 

전례의 중심이 제대인 것은 인정하면서도 전례를 하지 않을 때는 감실이 성당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실 안에 예수님의 몸인 성체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 역시 성당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왜 교도권이 감실을 가능한 한 경당에 따로 모시라고 권고하는지 생각한다면 별로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감실 앞에 앉아 기도하는 것은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기 위함인데, 제대는 바로 그러한 파스카 신비의 상징 자체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제대가 언제나 우리 신앙의 중심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감실 자체를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감실 안에 모셔진 성체를 통해 우리는 여전히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감실 때문에 제대의 중요성이 감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감실의 위치를 현명하게 배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당 건축의 책임자들에게 드리는 제언

 

성당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과 신학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당을 건축하는 데 있어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은 성당의 구조가 신자들의 신앙을 올바로 이끌 수 있도록 잘 준비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찬 전례가 이루어지는 제대와 말씀이 선포되는 독서대의 중요성이 부각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감실을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공간에 배치할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제대와 감실 사이에서 혼동을 겪지 않도록 감실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감실을 성당과 통하는 다른 공간, 말하자면 지하나 성당 밖의 별도의 장소에 마련할 수 없다면 성당 안의 다른 장소, 제대 근처에 감실을 마련하여 사제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미사 중 성체를 가지러 가거나 남은 성체를 다시 갖다놓을 때 불편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신자들은 성당 안의 넓은 공간보다는 아늑한 분위기의 경당에서 더 쉽게 성체조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성당은 감실이 모셔진 이상적인 경당 자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대구대교구 안에서는 죽전성당을 대표적인 범례로 들 수 있습니다.

 

성당을 지을 때 감실을 위한 경당을 마련하지 못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상당수의 회의실과 각종 목적의 공간들을 확보하는데 쓰는 신경을 감실 경당 마련에 약간만 기울인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좀 더 균형 잡힌 것이 되지 않을까요?

 

 

마무리

 

이 땅에 세워진 대부분의 성당들이 비록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에 지어졌다하더라도 전례 헌장의 정신과 교회의 규범을 우선적으로, 그리고 원칙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성당은 전례를 거행하는 장소이며 하느님의 백성이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기도의 집입니다. 전례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가 드러나고 특별히 성찬례를 통하여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며 성사를 통하여 구원을 선사하시는 하느님의 집입니다.

 

성당의 중심이 제대냐 감실이냐 하는 문제로 신자들 사이에서 긴장을 가지거나 사목자들 사이에서도 성당을 신축 또는 개축하거나 새롭게 리모델링할 때 이를 위한 가톨릭교회의 오랜 신학적 숙고와 연구를 바탕으로 규정한 규범과 지침들을 고려하지 않고, 잘못 전해져 내려오는 옛 관행이나 기존 관념이나 자신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주요 사항들을 임의로 결정하는 현실은 무척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이 반포된 지 50년이 지났음에도 이 땅의 교회에서는 아직도 감실의 위치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신앙의 원천과 뿌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구현하는 성찬례에 두기보다는 신심을, 그중에서도 성체공경 신심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신앙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전례헌장」은 48항에서 이를 명백하게 가르칩니다.

 

“신자들은 하느님 말씀으로 교육을 받고, 주님 몸의 식탁에서 기운을 차리고, 하느님께 감사하고, 사제의 손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사제와 하나 되어 흠 없는 제물을 봉헌하면서 자기 자신을 봉헌 하는 법을 배우고, 중개자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이 갈수록 하느님과 일치하고 또 서로서로 일치하여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도록 하여야 한다.”

 

* “전례를 살다”는 이번 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유익한 글을 써 주신 최창덕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월간빛, 2015년 3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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