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숲] 예물 준비 신자들의 기도를 마치면 말씀 전례는 끝나고 성찬 전례로 넘어갑니다. 미사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성찬 전례는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손에 빵과 포도주 잔을 들고 찬양기도와 감사기도를 바치신 뒤에 그것들을 제자들에게 당신 몸과 당신 피로 내어 주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동작에 맞추어 성찬 전례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서 거행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찬 전례는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 예물 준비 예식으로 빵과 포도주와 물, 곧 그리스도께서 당신 손에 드셨던 똑같은 재료들을 가져가 제대에 놓습니다. 둘째 부분은 감사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신 구원의 업적 전체에 감사드립니다. 이때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합니다. 셋째는 영성체 예식입니다. 빵 쪼갬과 영성체 예식을 통하여 주님의 몸을 받아먹고 주님의 피를 받아 마십니다. 예물 준비는 성찬 전례에 앞서 거룩한 식탁을 준비하는 행위입니다. 복음서에는 예물 준비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당신 수난이 다가오자 제자들에게 파스카를 준비하라고 이르시는 장면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파스카 식탁을 준비하였습니다. 성찬례를 제정하신 만찬 식탁을 준비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빵을 많게 하신 기적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함께 있는 군중을 가엾이 여기시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제자들에게 일렀습니다. 제자들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루신 기적으로 군중은 배불리 먹었습니다. 예물 준비는 성찬 전례에 앞서 거룩한 식탁을 준비하는 행위 어느 문화에서나 제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유교 문화에서도 제사 음식은 특별한 정성을 들여 마련하고, 시간이 되면 정해진 법도와 격식을 따라 제상을 차립니다(진설). 보기를 들면 신위를 기준으로 과일은 붉은 색은 동쪽에 흰 색은 서쪽에 놓는다고 합니다. 번거로움이 있겠지만 정성을 들인다는 뜻은 새길만한 합니다. 다시 말하여 “진설”은 제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이미 제사의 한 부분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미사의 예물 준비 예식은 어떤 면에서는 제사의 진설에 비할 수 있습니다. 예물 준비 예식은 처음에는 매우 단순했습니다. 감사기도를 바치기 전에 사제나 다른 봉사자가 제대 위에 필요한 것들을 실제로 준비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동작이나 기도는 없었습니다. 예물 준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2세기 중반에 남긴 순교자 유스티노의 증언입니다(호교론). 신자들의 기도가 끝난 뒤에 빵과 포도주와 물을 주례에게 가져간다고 말합니다. 누가 미사에 예물을 가져왔는지, 누가 주례에게 가져가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아마 신자들이 가져 온 것을 부제가 가져갔을 것입니다. 3세기 초 “사도전승”에는 평화의 인사 뒤에 부제가 예물을 제대로 가져간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나옵니다. 한편, 서방 전례와 달리 동방 전례에서는 대부분 미사를 시작할 때 예물을 준비하였습니다. 미사를 시작하기 전에 사제는 부제의 도움을 받아 보조 제대 또는 다른 곳에서 성경 단락과 기도문들을 낭송하면서 성찬전례에서 쓸 빵과 포도주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예비자 전례”, 곧 말씀의 전례가 끝난 뒤에 준비된 예물을 성대한 예식으로(= “대 입장”) 제대에 가져갔습니다. 후대에 발전된 예식을 보면 예비자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나서 대 입장을 시작합니다. 여러 기도를 바친 뒤에 케루빔 찬미가를 노래하는 동안 예물 행렬을 합니다. 사제는 기도를 바치고 나서 부제들이 가져온 예물을 받습니다. 이어서 여러 기도를 바치고 평화 예식과 신경으로 대 입장은 끝납니다. 봉헌 기도는 없습니다. 로마 전례를 보면 4세기 이후 많은 발전을 이룹니다. 고대 로마 전례 문헌을 보면 성가대가 시편 노래를 하는 동안 성찬례에 쓸 예물을 모읍니다. 교황은 백성에게 인사하고 “기도합시다”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다른 이들과 함께 예물을 받고, 그 뒤에 손을 씻습니다. 그 다음 대부제는 제대 위에 모든 빵을 늘어놓고 포도주 잔을 놓습니다(잔에 물은 앞서 제대 밖에서 넣었습니다). 그는 예물을 올려드는 동작을 하거나 기도문을 바치지 않습니다. 교황도 제대에서 자기 예물을 놓지만, 마찬가지로 아무런 동작이나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예물 기도”를 바치며 이 예식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10세기 이후에는 로마 전례에서도 프랑크-게르만 지역에서 사용하던 여러 동작과 기도문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렇게 십자성호와 분향 그리고 여러 기도문들이 들어왔습니다. 중세의 “봉헌 예식”은 밖에 있는 예쁜 꽃들을 옮겨 심어 놓은 꽃밭 비길 수 있습니다 (L. Deiss). 그런데 꽃들이 피었으나 거의 제자리에 있지 않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오직 한가지 제물과 제사 구약이나 이교도 제사와는 달리 그리스도교에서는 오직 한 가지 제물과 제사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몸과 피입니다. 그런데 중세 봉헌 예식에서는 아직 축성되지 않는 빵을 들고 이 “흠 없는 제물”을 받아주시도록 하느님께 간청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 허물, 과실들”에 대한 용서를 청하고 “둘레에 있는 모든 이들과 또한 살아 있거나 세상을 떠난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을 청하였습니다. 또한 잔을 바치며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이 잔이 저희와 세상 전체의 구원을 위하여 달콤한 향기와 함께 주님의 거룩하고 위엄에 찬 얼굴 앞으로 오르게 하소서.” 그러나 그 잔은 아직 포도주와 물밖에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감사기도의 핵심인 성령청원(에피클레시스)과 기념(아남네시스)을 연상하게 하는 기도를 바쳤습니다. 빵과 잔에 하는 “오소서, 축성하시는 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그리하여 당신의 거룩한 이름으로 준비한 이 제물에 강복하소서.” 기도와, 손을 씻은 뒤에 제대 가운데서 바치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시여, 저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승천을 기념하며 당신께 바치는 이 제물을 받아주소서.”는 기도가 그렇습니다. 또한 감사기도의 전구와 비슷하게 “평생 동정이신 복되신 마리아, 복된 세자 요한, 거룩한 사도들과 모든 성인들”에게 천상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봉헌 예식”이라는 이름과 여기에 들어 있는 기도들과 동작들은 예물(빵과 포도주)이 벌써 제물 또는 제사(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인상을 주고 감사기도와 혼동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꽃은 많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이상한 꽃밭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을 통하여 꽃밭을 깨끗이 다듬었습니다. 현행 미사 경본은 무엇보다 “봉헌 예식”에서 “예물 준비 예식”으로 이름을 바꾸어 빵과 포도주가 자동적으로 제물이라는 인상을 갖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개혁의 중요한 열매로서 올바른 이름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반과 성작을 “봉헌하며” 대신에 성반과 성작을 “조금 높이 받쳐 들고”로 바꾸었습니다. 한편, 복잡했던 과거 예식에 견주어 단순하게 다듬었습니다. 기도문들을 줄였고 분향도 간소하게 정리했습니다. 십자성호는 없앴습니다. 그리고 옛 전통에 따라 신자들의 참여를 강조하였습니다. 신자들이 성가를 부르며 예물 행렬을 하도록 배려하였습니다. 그러나 빵과 포도주에 바치는 기도, 환호 또는 봉헌성가 (“봉헌”이라는 용어가 아직 남아 있는 부분임), 기도와 분향, 손 씻음, 예물 기도와 같은 여러 예식들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2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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