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숲] 제대 준비와 장식 집에 손님을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할 때 집안 청소도 깨끗이 하고 정성껏 음식을 마련합니다. 식탁 준비(세팅)에도 마음을 씁니다. 식탁보도 새로 깔고, 그릇도 특별한 것으로 꺼내고, 꽃과 초도 어울리게 놓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도 준비부터 큰 정성을 들입니다. 이 모든 것은 손님 또는 조상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드러내는 표시입니다. 미사 때 제대 준비도 비슷합니다. 제대 미사 전체, 특히 성찬 전례의 중심은 제대입니다. 원칙으로 미사는 성당이나 경당 같은 거룩한 장소 안에 있는 제대 위에서 거행해야 합니다. 예외로 다른 곳에서 미사를 드릴 때는 “이동 제대”(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제대)를 쓸 수 있습니다. 성당에는 보통 “고정 제대”를 설치합니다. 제대는 한 때 제대를 벽에 붙여 만들었지만 지금은 떨어져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고정 제대는 보통 돌로 만듭니다. 다른 재료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대 아래에는 전통에 따라 순교자나 성인 유해를 넣을 수 있습니다. 의무는 아닙니다. 또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성당을 지을 때에는 제대는 하나만 만들어야 합니다. 성당 안에 제대가 있는데 임시 제대를 만드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보기를 들어, 첫영성체 예식을 위해 성당 안에 임시 제대를 만드는 것은 안 됩니다. 하나의 제대로 미사도 하나이고 그리스도께서 한 분이심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모든 미사에서 제대에는 제대포와 십자가와 초가 있어야 합니다(미사경본 총지침 296-308). 제대포는 미사가 거룩한 식사임을, 십자가는 제대 위에서 그리스도의 제사를 바친다는 것을, 촛불은 주님의 현존과 활동을 나타냅니다. 제대포와 십자가와 초는 제대에 담겨 있는 뜻을 풀이하는 “표지판”이며, 보이지 않게 미사를 주례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이콘”입니다. 제대포 미사에서 제대는 제대포로 덮어야 합니다. 제대를 존경한다는 표시로 정성껏 장식한다는 뜻입니다. 초 세기부터 미사를 드릴 때 제대에 보를 하나 펼쳐 놓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미 2~3세기에 제대를 “아마포로 덮고”라는 표현이 나옵니다(성 토마스 행전). 라벤나의 성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에(6세기) 제대가 천으로 덮여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중세에는 미사 거행의 여러 순간을 예수님의 수난의 단계로 보면서 제대포를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수의와 관련시켰습니다. 중세에 세 개의 제대포를 쓰는 관습도 생겼습니다. 이 관습은 16세기 이후에 보편 규범으로 변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뒤에는 보통 하나의 제대포를 씁니다(미사경본 총지침은 “적어도 하나의 제대포”라고 말함). 색은 언제나 흰색이어야 하지만, 모양이나 크기나 장식은 제대에 맞추어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미사 밖에서도 늘 제대포를 제대에 펼쳐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사 바로 앞에 제대포를 펴놓을 수 있습니다. 다만 성목요일부터 성금요일 영성체까지 제대를 벗겨 두어야 합니다. 벗겨진 제대는 교회의 기초이며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제대포는 제대가 식탁임을 드러냅니다. 제대 위에서 “너희는 모두 받아먹어라. 너희는 모두 받아 마셔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식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제대 둘레에 함께 앉아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영적인 음식을 받습니다. 이제는 “수의”의 상징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한편, 성찬전례를 위해서 성체포도 준비합니다. 성찬전례의 실제적인 동작은 모두 성체포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성체포에 관하여 고대 문헌은 천에 초를 먹인 관습을 싣고 있습니다. 이제는 필요에 따라 풀을 먹여 사용합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 성작덮개도 쓸 수 있습니다. 성작을 덮어 그 안에 든 포도주 또는 성혈을 보호하기 위하여 씁니다. 보통 작은 사각형 천에 풀을 먹여 만듭니다. 천 안에 딱딱한 재료를 넣어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수상에 성작을 놓아 둘 때는 그날 전례 색이나 흰색의 보로 씌워 놓을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미사 제대에는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제대에 십자가를 놓는 관습은 12세기에 널리 퍼졌습니다. 제대 십자가는 미사를 시작하기 전에 놓아 둘 수 있고 입당 행렬 때 들고 갈 수 있습니다. 제대 위나 그 둘레에 둘 수 있습니다. 제대 십자가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형상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없이 앉거나 서 계신 예수님의 상이나 그림은 안 됩니다. 아무 표시도 없는 민 십자가도 제대 십자가로 쓸 수 없습니다. 제대 십자가는 예수님께 바치신 십자가 제사를 제대 위에서 재현하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때처럼 똑같이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죄를 사하려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전통적으로 제대 위에 놓습니다. 보통 제대 앞쪽 가운데 십자가를 놓고 양쪽으로는 촛불(들)을 놓습니다. 그러나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에 따라 제대 둘레에도 둘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중이 잘 볼 수 있고 제대와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제 혼자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아도 안 됩니다. 또 제대에서 멀리 떨어져 제대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됩니다. 그리고 너무 큰 십자가는 제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한편, 전례를 거행하지 않을 때에도 제대 가까이 십자가를 두어야 합니다. 신자들은 십자가를 보며 언제나 예수님의 복된 수난과 부활을 기억합니다. 초 미사 때 제대에는 촛대와 함께 초를 놓아야 합니다. 제대 초는 로마 제국의 관습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 궁정이나 법정에서 두 개의 촛불을 사용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국의 장엄한 행사 때에는 최고 권위자 앞에는 일곱 개의 불이 앞서 갔습니다. 이 관습이 교황 미사로 도입되었고, 그 뒤 교구 주교들의 미사에도 퍼졌습니다.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초도 미사를 시작하면서 켜 둘 수 있고, 입당 행렬에서 들고 가서 제대에 놓을 수 있습니다. 어떤 미사에서나 의무적으로 적어도 두 개는 놓아야 합니다. 주일이나 의무 축일 미사에서는 네 개 또는 여섯 개, 교구장 주교가 주례하는 “순회 미사”에서는 일곱 개를 놓습니다(의무는 아님). 제대에 켜놓은 촛불은 존경과 축제의 표시로서 주님의 실제 현존을 기억시킵니다. 이 현존은 예수님께서 하신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말씀에서 더욱더 두드러집니다. 흥미롭게 묵시록은 일곱 개의 황금 등잔대 통하여 미사가 천상 전례이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례하신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묵시 1, 12-13, 20; 2, 1). 참고로, 유다교 회당 전례에서는 계약의 궤 앞에 놓은 일곱 개의 초(=메노라)로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냅니다. 제대 초는 십자가처럼 제대 위나 제대 둘레에 놓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대와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촛대를 제대와 떨어진 곳에 두어 초가 제대에 속하지 않은 것 같은 인상을 주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제대 위에 한쪽에는 초를 놓고 한 쪽에는 꽃들을 놓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일반 식탁이라는 느낌을 주어 제대의 특성이 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가 식탁인 것은 맞지만 여느 식탁이 아니라 “주님의 식탁”입니다. 따라서 제대 초는 연회에서 갖춰놓는 것 같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지금 여기 계신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참석자들이 존경의 마음을 갖도록 도와야 합니다. 꽃과 다른 장식 제대는 꽃으로 장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순시기에는 꽃 장식이 금지됩니다(사순 4주일과 대축일과 축일은 예외). 대림시기에는 할 수 있지만 소박하게 해야 합니다. 어느 때라도 꽃은 절제 있게, 그리고 제대 위가 아니라 둘레에 놓습니다. 꽃은 신자들이 제대에 더 잘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제대 가까이 성상이나 다른 장식물을 놓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특별한 전례 시기나 전례일에는 더 그렇습니다. 보기를 들면, 대림초나 성탄 구유는 제대 아래가 아닌 다른 데 만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제대를 가릴 수 있고 신자들의 눈길과 마음을 흐트러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는 교리교육이나 신심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제대에 눈과 마음을 모아 전례 예식을 정성껏 거행하는 것이 최고의 교리교육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3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