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의 교회읽기] 교회 축일과 접목된 이교도 풍습 200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때 발목을 잡은 몇 가지 요인들 중 하나는 조상 제사였다. 전에는 필수적이고 당연한 의례요 미풍양속으로 여겼던 일이 그리스도교를 선택하는 기로에서는 생사가 달린 걸림돌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를 하나의 학문 또는 생활 지침으로 여기고 받아들일 때와 신앙으로 받아들일 때의 강도는 그렇게 사뭇 달랐다. 교도권의 해석과 지침은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를 금지했고, 신앙 선조들은 전통과 효심의 표현으로서 지내오던 제사를 결연히 포기했다. 그리고 이 포기는 엄청난 핍박과 탄압의 명분이 되었다. 그런데 서양의 교회 역사를 훑어보면, 교회는 복음을 전하면서 그곳에 이미 존재하던 전통적인 의식이나 행사를 무조건 배제하고 거부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옛날의 일이지만, 그 시절의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는 한편으로 복음이 기존의 문화와 만나는 접목을 꾀했다. 그러한 자취 하나를 오늘날 11월 벽두에 기념하는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과 위령의 날에 앞서 10월 마지막 날 지내는 핼러윈(halloween)에서 볼 수 있다. 핼러윈, 모든 성인의 날 전야 핼러윈의 유래는 켈트 족의 이교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켈트 족은 독일에서 시작하여 기원전 6~4세기에 프랑스와 영국 등지로 진출하여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삼하인(samhain)이라는 축제가 있었다. 그들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축제를 지내며 죽음의 신 삼하인을 찬양하며 새해와 겨울을 맞이했다. 켈트 족 농부들은 해마다 이 무렵에 2,3일 동안 이 세상과 영들의 세계 사이에 있는 문이 열리고, 죽은 이들의 혼령이 자기가 살던 이승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리고 요정, 마녀, 악마 들을 비롯한 외계 존재들에게 사로잡힌 그 기괴한 세력들이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아이들을 유괴하고, 농작물을 마르게 만들고, 우물에 독을 집어넣고, 역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불길한 일들에 대응해서 이승의 사람들은 사악한 영들처럼 분장해서 그들을 속이려 했다. 어쩌면 그들을 달래려고, 심지어는 조롱하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 차츰 유럽 대륙이 그리스도교화했고, 그러면서 그들의 지역에도 복음이 전해졌다. 그런데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은 그곳의 토착 문화를 존중하고 잔존시켰다. 새 개종자들이 옛 전통을 유지하는 것을 허용하되, 무조건 용인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옛 전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리스도교와 접목을 꾀했다. 그러한 흐름에서 삼하인 축제는 그리스도교의 전파와 함께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11월 1일) 전날 밤의 축제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전야, 곧 ‘핼러윈’이라 불리게 되었다(앵글로색슨어로 ‘성인’을 hallow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전야’는 All Hallows’ Eve라고 하는데, 이것이 줄어서 Halloween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핼러윈이 좀처럼 교회 안의 축제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이들의 축제가 되고 말았다는 느낌이 든다. 학교에서는 가장 파티를 열고, 어린이들은 밤이 되면 괴물, 마녀, 해적 등 무서운 복장이나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이웃집들을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것을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면 이웃집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 한편, 어느 면에서는 핼러윈이 미국 등지에서 지나치게 상업화한 측면이 다분하다. 유명한 팝 가수나 배우의 분장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분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성인들의 통공’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는 교회의 축제가 아니게 된 셈이다. 이러한 시류에 반발하여 모든 성인의 날 전야를 지내기를 아예 그만두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선대에서 이교 사상의 좋은 요소들을 활용해서 어렵사리 실행해 온 것을 너무 쉽게 단념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핼러윈의 감초, 잭-오-랜턴 이야기 ‘핼로윈’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호박으로 만드는 등(燈)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날 으레 큰 호박 속을 파내고 표면에 악마의 눈 코 입 등 얼굴을 새기고 그 안에 초를 장치하여 창가에 둔다. 핼러윈 때 이 등을 만들게 된 유래를 아일랜드의 설화는 이렇게 전한다. 인색한 사람 잭이 있었다. 하루는 잭이 함께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악마를 초대했다. 그렇지만 인색한 잭은 악마를 위해 술값을 낼 생각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었다. 잭은 악마를 꼬드겼다. 악마가 동전으로 변신한다면, 그 동전으로 술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악마가 동전으로 변신하자, 잭은 그 동전을 집어서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그 주머니에는 은 십자가가 들어 있었다. 십자가 때문에 악마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잭은 악마에게서 두 가지 다짐을 받아내고서야 악마를 풀어 주었다. 그 다짐은 앞으로 1년 동안 잭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것과 잭이 죽은 다음에 잭의 영혼에게 해코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1년 뒤, 잭은 또 다시 악마를 꾀어서 나무에 올라가 열매 하나를 따오게 했다. 그러고는 악마가 나무에 올라간 틈을 타서 나무 둥치에 십자가를 새겼다. 그래서 악마는 앞으로 10년 동안 잭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다음에야 겨우 나무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얼마 후 잭이 죽었다. 하느님은 그런 고약한 사람이 천당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악마 또한 잭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서 잭의 영혼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한 것에 화가 나서 잭이 지옥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늘 깜깜한 곳으로 내쫓았다. 그래도 불붙은 석탄을 주어 길을 밝힐 수 있게는 해 주었다. 잭은 순무를 파내고 그 안에 불붙은 석탄을 집어넣어 등을 만들어서는 손에 들고 세상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마지막 심판 날까지 등을 들고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이 유령 같은 잭의 등을 ‘잭-오-랜턴’(등을 든 잭이라는 뜻)이라 불렀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잭-오-랜턴을 순무 또는 감자로 만들었는데, 표면에는 무서운 얼굴을 새겼다. 이 등을 창문이나 출입문 근처에 놓아두면 인색한 잭과 다른 떠돌이 악령들이 무서운 얼굴을 보고는 놀라서 달아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잉글랜드에서는 커다란 사탕무를 사용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뒤로는 미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작물인 호박으로 잭-오-랜턴을 만들게 되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0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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