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숲] 거룩하시도다 후 기도 동방과 서방 교회들은 미사에서 자신들이 물려받은 전통에 따라 다양한 감사기도문들을 사용합니다. 모두 모아 놓으면 감사와 찬양의 아름다운 꽃밭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미사의 감사기도문은 정밀하고 잘 짜인 수준 높은 기도문입니다. 불순물이 빠진 순도 높은 금에 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이 긴 역사를 거쳐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감사기도들에는 전례 전통에 따라 공통으로 들어 있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로마 미사경본은 여덟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미사경본 총지침 79) 1) 감사(감사송) 2) 환호(거룩하시도다) 3) 성령 청원(성령의 힘을 내려 주시기를 기원하는 기도로서, 예물이 축성되도록,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도록 간구하고, 또 영성체로 신자들이 일치하도록 간구) 4) 성찬 제정과 축성문(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에서 직접 하신 말씀) 5) 기념(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하늘에 오르심을 기억) 6) 봉헌(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제물로 아버지께 봉헌) 7) 전구(성인을 기억하고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 8) 마침 영광송과 회중의 아멘. 이것들은 빠뜨릴 수 없는 것으로 모든 감사기도문들에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기능으로 보아 중요한 요소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거룩하시도다 후 기도”(Post Sanctus)입니다. 이 기도는 “거룩하시도다” 환호와 예물 축성을 위한 “성령(의 힘)으로… 거룩하게 하시어”의 기도 사이에 있습니다. 두 부분을 이어주기 때문에 보통 “연결 기도”, 또는 “고리 기도”라고도 부릅니다. 감사기도 1양식(로마 전문)에는 그 독특한 구조 때문에 이 기도문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뒤에 생긴 다른 감사 기도들에는 “거룩하시도다 후 기도”를 도입하였습니다. 두 부분 사이에 고리 또는 다리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기도는 동방 전례에서는 매우 낯익은 기도였습니다. “거룩하시도다 후 기도”의 내용은 다양합니다. 일반적으로 방금 노래한 “거룩하시도다”의 주제를 되풀이하여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말하고, 마지막에는 예물 축성을 위한 기도를 준비하며 제사의 주제를 알립니다. “거룩하시도다” 환호와 예물 축성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 기도’ 감사기도 2양식에서 이 기도는 매우 짧고 간결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앞 뒤 두 부분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만, 라틴어로는 “주님께서는 참으로 거룩하시며” 또는 “주님께서는 참으로 거룩하신 분”으로 선언하며 이러한 연결 기능을 더 잘 살리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세상의 거룩한 무엇은 모두 하느님께 연결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한편 거룩하신 분께서 지으신 것은 다 거룩하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구상 시인의 “오늘”이라는 시가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한편 프랑스어 미사경본은 선택할 수 있는 “거룩하시도다 후 기도”를 넣어 풍요롭게 하였습니다. 보기를 들면, 부활 팔일 축제에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아래 갈색 글자 부분은 이 미사경본에서 보탠 부분입니다). “주님께서는 참으로 거룩하시며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저희는 여기 주님 앞에 모여 전체 교회와 친교를 이루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부활하신 그 거룩한 날을 경축하나이다. 하느님 저희 아버지, 아버지 오른쪽에 앉게 하신 그분을 통하여 간구하오니…” 3양식의 “연결 기도”는 일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모든 감사송과 어느 정도 어울립니다. 맨 먼저, 2양식처럼 하느님을 “주님께서는 참으로 거룩하시다”고 선언하며 “거룩하시도다”와 연결시킵니다(우리말 미사 경본에서는, 2양식처럼, “거룩하신 아버지”로 옮김). 이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 모든 피조물의 고유하고 본질적인 의무임을 밝힙니다(우리말 미사경본에는 “마땅히”를 생략). 찬미하는 것이 청원을 하는 것보다 은총을 더 잘 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청원은 찬미의 특별한 형태에 속합니다. 하느님의 능력과 호의에 관한 고백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기도는 교우들에게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힘으로 만물을 살리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백성을 모으시어 제사를 바치게 하심을 일깨웁니다. 짧은 본문에 창조, 찬미, 삼위일체, 전례 특히 미사 제사와 같은 여러 주제가 들어 있습니다. “해돋이에서 해넘이까지 깨끗한 제물을 바치게 하신다.”는 아름다운 표현은 말라키 예언서 1장 11절에서 가져왔습니다.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 곳곳에서 내 이름에 향과 정결한 제물이 바쳐진다.” 동쪽에서 서쪽, 세상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 곧 온 세상에서 제사를 바친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영원에서 영원까지”로 넓혀 새길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말 경본에서 “해돋이”와 “해넘이”라는 낱말을 사용하여 시간 개념을 더 생각한 것 같습니다. “주님 이름께”도 생략하였습니다. 주님을 현양하고 그분 사랑을 기억해 4양식에서는 “연결 기도”가 꽤 깁니다. 동방 전례(서 시리아) 전통에 따라 구약과 신약의 구원 역사에 따라 찬양의 주제를 펼칩니다. “둘째 감사송”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맨 먼저 앞의 감사송에서 밝힌 동기인 거룩함과 창조와 강복의 주제를 되풀이하며 주님의 위대하심을 현양합니다. 이어서 죄의 아픈 역사를 말하면서 계약과 예언자들의 활동을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결정적으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파견을 기억합니다. 이제부터 동정 마리아에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역사가 펼쳐지는데, 그분의 구원 활동은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성령 보냄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에 관해서는 “믿는 이들 보내신 첫 열매(=선물)로서, 세상에서 성자의 구원 사업을 계속하시며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며 성령 청원 기도를 준비합니다. 기원미사 감사기도의 “고리 기도”는 2. 3양식과 비슷하게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거룩하신 분”으로 선언하면서 주님을 현양하고 그분 사랑을 기억합니다. 둘째 부분에서는 성자를 “참으로 찬미받으시는 분”(우리말 미사경본에서는 “참으로 복되신”으로 옮김)이라 부르며 “거룩하시도다” 둘째 부분과 균형을 맞추는 맛을 줍니다. 이어서 부활하신 그분께서 나타나시어 “이미 제자들에게 하셨듯이” 지금 우리에게도 “성경의 말씀을 밝혀주시고 빵을 나누어 주신다”는 표현으로 성찬례의 시작을 기억하며 예물 축성 기원으로 이끕니다. 화해 미사 감사기도 첫째 양식은 인간의 역사를 하느님께서 인류를 당신 본성에 따라 “거룩하게 하시려는” 구원의 역사로 제시합니다. 둘째 양식에서는 하느님의 모든 거룩한 구원 활동을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시키면서, 그분을 “사람을 구원하시는 말씀”, “죄인들에게 펼쳐지는 손”, “평화로 이끄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4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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