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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의 숲: 성령 청원 기도(에피클레시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05 조회수9,172 추천수0

[전례의 숲] 성령 청원 기도(에피클레시스)

 

 

감사기도는 미사의 심장입니다. 그런데 감사기도문 안에서 뛰고 있는 맥박은 크게 보아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기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 무엇을 청원하는 것입니다. 이 두 맥박은 매우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기억의 결과로 청원이 나타나고, 청원을 할 때에는 기억이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청원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거룩하게 하는 일은 성령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령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라고도 부릅니다.

 

성령께서는 교회 생활과 전례, 특히 미사 안에서 거룩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감사기도에서 아버지께 성령을 보내주시라는 기도를 바칩니다. 이 특별한 기도를 “성령 청원”이라고 부르는데, 그리스어로는 “에피클레시스”(epiclesis)라고 합니다. “위”와 “부르다”가 합쳐 생긴 말입니다.

 

성령 청원 기도의 목적은 예물의 축성과 신자들의 구원입니다(미사경본 총지침 79). 이렇게 서방 교회의 감사기도문들에는 두 개의 “성령 청원” 기도가 있습니다. 이 기도들을 각각 “축성을 위한 성령 청원”(축성 에페클레시스), “일치를 위한 성령 청원”(일치 에피클레시스)라고 부릅니다.

 

동방 전례에서는 서방 교회의 두 “성령 청원 기도”를 흔히 하나로 결합하여 바칩니다. 성 바실리오 감사기도(아나포라)에서는 이렇게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주님의 종 저희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이 예물 위에 성령께서 오시게 하소서.

 

성령께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성도들을 위하여 마련되는 거룩한 음식이 되게 하소서.

 

하느님, 이 빵이 우리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시어, 이것을 받아 모시는 이들에게 죄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이 되게 하소서.

 

하느님, 이 잔이 우리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새 계약의 귀중한 피가 되게 하시어, 이것을 받아 모시는 이들에게 죄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이 되게 하소서.

 

“축성을 위한 성령 청원” 기도는 “성사 제정과 축성문” 앞에 오며, 아버지께 빵과 포도주 위에 성령을 내리시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감사기도 1양식의 축성 기원에서는 성령이라는 말이 없지만, 새로 만든 감사기도문들에는 모두 명백하게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 청원 기도의 목적은 예물 축성과 신자들의 구원

 

2양식의 이 기도에서는 “성령의 이슬로”(Spiritus tui rore)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성령의 이슬을 내리시어” 또는 “성령을 이슬처럼 내리시어”(영어 미사경본)이라는 뜻입니다(우리말로는 “성령의 힘으로”라고 옮김). “성령의 이슬”이란 표현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성경과 전례에서는 낯익은 표현입니다.

 

이슬이 지닌 자연적인 뜻을 시적으로 활용하여 성령과 연결시킨 것입니다. 이슬에는 여러 뜻이 담겨 있습니다. 신선함, 새로운 시작, 물(= 생명), 아름다움, 위에서 내림(= 강복), 만나(= 미사)를 가리킵니다.

 

3양식과 4양식에서는 “같은 성령”이라는 표현으로 예물 축성을 하시는 성령은 바로 위에서 기억한 성령과 같은 분이심을 밝힙니다(우리말에서는 “같은”을 생략).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동정 마리아에게 보내셔서 예수님의 몸이 잉태되게 하신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아버지께서는 공동체의 예물 위에 당신의 성령을 보내시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라고 주격으로 표현하여(4양식) 성령의 주도권을 강조합니다. 우리말로는 “성령으로”로 옮겨 성령의 주도권과 활동이 덜 두드러집니다.

 

한편, 이 기도를 바칠 때 사제는 첫 부분, 곧 “성령”을 말하는 부분에서는 빵과 포도주 예물 위에 안수하고, 마지막 부분,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에서는 예물 위에 십자 표시로 합니다(1양식은 예외로 다른 데서 함). 안수와 십자 표시는 기도의 말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이 순간에 종을 쳐서 신자들이 마음을 모아 거룩한 순간에 들어가도록 합니다. 종소리는 성령의 내리심에 대하여 기쁨 또는 환영을 표시할 수도 있습니다. 종치는 것은 의무는 아닙니다.

 

축성을 위한 성령 청원 기도는 엘리야 예언자 이야기를 기억시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 주 하느님을 참된 하느님이심을 보여주기 위하여 제단을 쌓고 기도를 바치며 주님의 불을 예물에 불러 내렸습니다(1열왕 18, 1-40). 위대한 이 예언자가 했던 것처럼 사제는 거룩한 제대에 있는 예물 위에 주님의 불을 - 성령 - 불러 내립니다.

 

한편, “일치를 위한 성령 청원 기도”는 “성사 제정과 축성”, “기념”과 “봉헌” 뒤에 옵니다. 이 기도에는 축성을 위한 성령 청원과는 달리 안수나 십자 표시가 없습니다. 다만, 예외로 1양식에서 사제는 자신에게 성호를 긋습니다.

 

이 기도는 신자들, 곧 영성체 하는 이들 위에 기도하며,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게 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 밖에 영성체하는 이들이 하느님 영광을 위하여 살아 있는 찬양 제물이 되기를(4양식), 또는 “영원히 주님 자녀가” 되기를(기원 감사기도) 기원합니다.

 

 

“성령 청원” 기도를 하는 주체는 회중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은 모두 함께 주님의 몸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모심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몸으로 변하고, 또 변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은 교회가 자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이 되는 것은 겉으로 보이게 단체를 이루는 것에 그치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치, 성령 안에서 이루는 일치는 인류 전체를 포옹하여 새로운 가족으로 보게 합니다. 나아가 인류 전체가 모든 종류의 인간적인 소속을 완전히 넘어서는 “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 13)을 보도록 이끕니다. 이것이 이 기도가 청하는 구원, 곧 우리 희망의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가 “성령 청원”의 기도를 바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사제가 바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사제의 말에서 마술적인 힘을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문에 있는 “저희가 비오니”, “저희가 간절히 청하오니”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도하는 주체는 회중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제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공동체를 대표하여 아버지께 성령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양식의 “아버지께 바치려고 저희가 가져온 이 예물”(ut haec munera, quae tibi sacranda detulimus)이란 표현은 이 사실을 두드러지게 드러냅니다(우리말로는 단순하게 “아버지께 봉헌하는 이 예물을”로 옮김).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5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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