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펀(FunFun) 전례] 복사는 어떻게 시작됐나?
미사 진행 원활하도록 제대 옆에서 주례자 도와 민이: 신부님, 오늘 미사를 봉헌하다가 문득 ‘복사는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던 걸까’하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언제 어떤 연유로 복사가 시작됐는지는 모르겠더라고요. 티모: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를 돕는 복사가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은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기원이 언제부터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아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네요. 다만 3세기 말경, 12살의 소년 타르시치오(263~275)가 박해로 인해 감옥에 갇힌 신자들에게 성체를 모셔다줬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아마도 이 소년이 복사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이는데, 교회는 이로 인해 타르시치오 성인을 복사의 주보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죠. 세라: 복사는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 건가요? 티모: 9세기 마인츠공의회는 “모든 성직자는 미사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서간경과 독서를 하거나 미사 화답송을 부를 성직자나 소년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요. 즉 복사는 시종직(侍從職)의 일, 제대 옆에서 주례자를 도와 미사 진행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하지만 지역 상황에 따라 미사 외에 다른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었어요. 민이: 다른 역할이요? 티모: 네, 예를 들면 한국 초대교회의 경우 박해가 심했던 데다 사제들이 대부분 외국인이었죠. 그래서 당시 복사는 외국인 선교사 신부님들의 시중을 들며 전국 어디든지 다녀야 했답니다. 그렇기에 너무 어리거나 나이가 많아도 안 됐고, 통역사 역할을 하거나 사제를 대신해 교리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기에 어느 정도 학식을 갖추어야 했죠. 당시 대표적인 복사가 황석두(루카)성인이에요. 세라: 한국 초대교회 때 복사는 모두 남성이었을 것 같아요. 당시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언제부터 여성이 복사를 설 수 있게 된 건가요? 티모: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는 주로 남성이 복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1983년 발표된 「교회법전」의 제230조 2항 “평신도들은 임시적 위임으로 전례행사에서 독서자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또 모든 평신도들은 해설자나 선창자나 그밖의 임무를 법규범에 따라 수행할 수 있다”고 서술했고, 여기서의 평신도는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포함되는 것이라고 1994년 교황청 경신성사성에서 유권해석을 해줌으로써 여성의 복사 직무가 합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의 미사 복사가 사제 성소의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소년 복사단 지원을 어린이들에게 많이 권하지요. 민이: 어린 소년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복사를 서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자세로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요? 티모: 어린이든 어른이든, 복사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으로서 내외적으로 다른 미사 참례자들과 구별되는 모습이어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전례에 적합한 수단, 예를 들면 장백의 형태로 된 특별한 예복 같은 것이 필요하고, 내적으로는 봉사를 위한 겸손한 마음과 좋은 의향을 지니고 있어야 하겠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성실함과 시간 관념, 그리고 다른 이들 앞에 설 수 있는 용기 등이 필요하겠지요. [가톨릭신문, 2016년 10월 16일, 지도 윤종식 신부(가톨릭대 전례학 교수), 정리 우세민 · 이나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