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펀(FunFun) 전례] (45) 고해성사, 사제와 꼭 만나야만 하나요?
사제 통해 주님의 자비로움 느낄 수 있어야 세라: 신부님, 개신교 신자인 친구가 고해성사를 왜 보는지를 묻더라고요. 죄를 지었으면 하느님께 직접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되지, 왜 사제라는 ‘사람’에게 죄를 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냐고요. ‘당연히 고해성사를 봐야지’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질문을 받으니 말문이 막혔어요. 티모: 자매님,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다면 ‘주님께서 사제에게 죄를 사하는 권한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면 어떨까 해요. 성경에 고해성사를 제정하셨다는 직접적인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 죄를 사하셨고, 그러한 당신의 죄 사함의 권한을 제자들에게 주셨다는 내용은 곳곳에 등장한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가 대표적 예죠. 오늘날의 고해성사는 주님의 ‘화해시키는 임무’(2코린 5,18)가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발전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답니다. 민이: 화해시키는 임무요? 티모: 네, 형제님. 많은 신자분들이 고해를 자신의 죄에 대해서 판단 받고 벌을 받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고해성사는 하느님 그리고 이웃들과의 어긋난 관계를 회복하는 ‘화해의 성사’입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고 받아들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세라: 신부님, 고해성사의 핵심이 죄의 고백과 사함이라면 사제와 대화가 가능한 매체인 전화나 인터넷 이메일을 통해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티모: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화나 인터넷은 다른 사람들이 엿듣거나 해킹할 수 있기 때문에 고해성사의 매개체로 사용될 수 없어요. 또한 참회자가 하느님의 용서와 위로를 느껴야 하는 고해성사의 참뜻을 알기 위해서도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 필요하지요. 민이: 예전에는 참회자 전체의 죄를 사해주는 ‘일괄사죄’ 같은 것도 있었다던데 지금은 없어진 건가요? 티모: 고해성사 자체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답니다. 첫째가 개별 참회자들이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보는,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고요. 두 번째가 여러 참회자들이 참회 예식을 다함께 하고 개별 고백과 개별 사죄를 받는 형태인데 판공성사가 이에 해당합니다. 세 번째는 여러 참회자가 일괄 고백하고 일괄 사죄를 받는 형태입니다. 일괄 고백과 일괄 사죄는 흔한 형태는 아니며 다음의 두 가지 경우에 진행할 수 있지요. 하나는 죽을 위험이 임박하여 사제들에게 각자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또 다른 하나는 참회자들의 개별 고백을 들을 만큼 충분한 사제들이 없어서, 참회자들이 ‘자기 탓 없이’ 오랫동안 성사 은총과 영성체를 받지 못한 경우입니다(고해성사 지침, 31항). 교회법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전시나 천재지변, 또는 많은 사람이 갑자기 동시에 죽을 위험이 있는 경우에 일괄적으로 죄를 사할 수 있다”(제961조 참조)고 밝히고 있고, 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에서는 “그 밖의 경우에는 교구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제96조)고 하여 예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답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1월 20일, 지도 윤종식 신부(가톨릭대 전례학 교수), 정리 우세민 · 이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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