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인 미사 참여와 전례 활성화를 위한 나눔] '인생'이라는 전례 어떻게 하면 기쁨의 잔치인 전례에 ‘방관자’가 아닌 ‘주인공’으로 참례할 수 있을까요? 주님 공현 대축일에 묵상하는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마태 2,1-12)가 그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듯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전례임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동방의 박사들, 그들은 누구였나요? 그들은 ‘별’을 좇아 길을 나선 순례자들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을 찾아 경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앞서 가던 별이 사라져버리자 그들은 길을 잃고 헤매고 맙니다. 그들이 다다른 곳은 예루살렘의 왕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찾던 분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들에게 길을 안내해준 이는 악한 헤로데 임금이었습니다. 다시 길을 떠난 그들 앞에 별이 나타나 아기가 있는 곳 위에 멈추었습니다. 그들은 더없이 기뻐하며 집에 들어가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엎드려 경배한 후 준비한 예물을 드렸다고 합니다. 주일미사 전례에 참례하는 우리들 역시 주님을 경배하고 예물을 봉헌하기 위해 공동체를 이루며 모였습니다. 그런데 박사들의 이야기에서 ‘더없이 기뻐하였다.’는 대목이 왠지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쩌면 박사들이 겪어야 했던 영적 여정을 우리가 걷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사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 듯합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길을 떠난 ‘순례자’들인가, 아니면 아직 안락한 집을 떠나지 못한 채 안주하고 있는가? 아울러 이 이야기는 박사들이 여정 중에 터득한 신앙의 지혜를 배우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들은 시련을 통해 자신의 능력(점성술)에 의지하기를 포기하고, 하느님의 손길에 알 수 없는 미래를 맡겨드리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구세주 예수님이라는 놀랍고도 기쁜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전례에 참례하는 우리의 마음이 기쁘지 못한 이유는 아직 주님께 포기하고 맡겨드리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모든 것이 그분의 크신 계획 안에서 잘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마음을 주님께 열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나의 뜻대로 해결하려는 ‘완고함’ 때문은 아닌지요? 박사들의 이야기는 모든 역경과 시련에는 끝이 있다는 것, 그리고 주님을 믿는 우리의 삶은 기쁨의 잔치임을 말해줍니다. 전례에 참례하는 우리의 온 삶이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경배와 예물이 될 수 있도록 포기할 수 있는 마음, 미래를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릴 수 있는 마음을 청해봅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기쁨의 잔치일 수 있도록 시련 속에서도 믿음으로 꿋꿋이 버텨낼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의 힘을 청해봅시다. [2017년 1월 8일 주님 공현 대축일 수원주보 3면, 한민택 바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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