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산책2] (18) ‘미사보’를 쓰지 않으면 영성체를 못하나요? 미사 중, 성체를 나누어 주고 있을 때였다. 성체를 받으러 줄을 서서 걸어오던 한 자매님이 오는 도중에 옆에 앉은 어느 자매님에게 미사보를 빌려 쓴 후 앞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성체를 모신 후에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빌린 미사보를 되돌려 주며 감사의 마음으로 환히 웃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자매님은 성체를 받아 모시려면 반드시 미사보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듯 세례를 받은 자매님들은 미사보를 꼭 써야만 영성체할 수 있는 것일까? 미사보의 의미는 무엇일까? 미사보(또는 미사포(-布); veil)는 “미사를 비롯한 교회 예식에서 여성 신자들이 머리에 쓰는 수건”(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천주교 용어집」)을 뜻한다. 반원 모양의 천으로 흰 색과 검은 색 두 가지가 있는데, 예전에는 대개의 경우 흰 색 미사보를 쓰고 장례 미사의 경우 검은 색을 썼으나, 요즘은 일반적으로 부활의 새 생명을 상징하는 흰 색을 사용하고 있다. 일찍이 유다인들과 유다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공적 모임과 전례에서는 여성 신자들이 머리를 가리는 관습이 있었는데,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통해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도 이 관습을 따를 것을 권고하고 있다(1코린 11,2-16 참조). 실제로 여성들이 자신을 꾸밀 때 머리 모양에 신경을 쓰며 화려하게 치장을 하는 경우가 있기에, 공동체 모두의 경건한 전례 참여를 도와주기 위해서도 머리를 가리는 것이 권고되었던 것이다. 이후 교회에서는 여성 신자들이 미사보(베일)을 머리에 써서 머리를 가리는 것을 통해 단정하고 소박한 태도로 전례에 임할 것을 권고해 왔다. 즉 여성 신자들이 ‘미사보를 쓰는 것’은 의무사항이 아니라 권고사항인 것이다. 또한 ‘미사보를 쓰는 것’이 단지 2,000년 전 유다인들의 관습을 우리가 단순히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전례에 참여하는 이들의 정숙함과 겸손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요즘에 와서는 미사 중에 미사보를 쓰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때로는 남녀평등 사상이 강조되면서, 여자들에게만 미사보를 쓰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란이 일기도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자매님들은 미사보를 쓰지 않아도 영성체를 할 수 있으며, 미사와 기타 전례, 성사에도 미사보를 쓰지 않고 참례할 수 있다. 그러나 ‘미사 중에는 반드시 미사보를 써야 한다’라는 형식을 뛰어넘어, 미사보가 전례 안에서 드러내는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과 낮추임’, ‘단정함과 경건함’이라는 의미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또한 지나치게 값비싸고 화려한 문양의 미사보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미사보를 쓰며 그 의미를 되새기며 전례에 경건하게 참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미사보’는 형식의 의무가 아니라, 하느님께 자신의 겸손한 마음을 드러내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18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청주주보 4면, 김대섭 바오로 신부(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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