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단식을 한다고? (마태9,14-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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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1-03-11 | 조회수515 | 추천수14 | 반대(0) 신고 |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마태9,14-15)
단식을 한다고? 지구모임이 있었습니다. 사순절을 맞이하며 신부님들도 하나씩 결심을 하였습니다. 술을 좋아하시는 분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셨고, 외출을 좋아하시던 분은 외출을 자제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성경을 읽을 시간이 많아지더라! 무겁게 지내지 말고 일상 안에서 더 많이 사랑하자고 결심하신 분도 있습니다. 한 신부님은 텔레비전을 보지 않으니 기도할 시간이 확보되었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사순절은 정말 은혜의 때입니다.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면서 지낸다는 것 자체가 은총입니다 저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늘 단식을 하는 것이고 따라서 재의 수요일이나 성 금요일에 지켜야 하는 단식재를 별도로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나를 정화하고 절제와 희생, 그리고 보속의 마음으로 매일 아침을 먹지 않고 그것으로 이웃과 나눌 수 있다면 단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귀찮아서,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먹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단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단식은 단지 굶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아서 가보니 금요일이고 고기국이 준비가 되어서 곤란했다고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심지어 마음에 걸려서 고기는 먹지 않고 국물만 마셨다고 하시며 고해성사를 보시는 분이 계시고 손님이 와서 음식점에 가서 불고기를 맛있게 먹고 보니 금요일이기에 성사 보러 왔다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럴 때 성사를 봐야 하나요?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그것에 죄책감을 갖지 않고 다른 날을 정해서 금육재를 지킵니다.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어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행으로 몰라서 궐했으니 죄를 모면 했다고 좋아하고 넘어가는 신자라면 미성숙한 신자입니다.(정하권) 진정 깨어 있는 사람은 그 법의 의미를 생각하고 알맹이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을 하지 않습니까?”(마태9,14)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서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슬퍼할 수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9,15) 하셨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혼인 잔치에 온 친구들이고 신랑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는 즐겁고 기쁘게 지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과 직면하게 될 때 단식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단식은 단순히 밥을 굶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맹이와 껍데기를 구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법의 내용을 지킬 수 있는 성숙함에 머물러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외적인 단식을 통하여 내면의 성숙을 가져와야 합니다. 마리아 사제운동에서는 “마음의 단식은 너희 자신과 재물과 피조물에 대한 무질서한 애착에 대해 마음을 닫아걸고 경계함을 뜻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도 “빵과 물만 먹고 단식하기보다 혀를 억제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하고 영적인 단식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단식을 통하여 영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기쁨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위대한 인물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40일간을 단식하였고, 그는 계약의 말씀,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습니다.(탈출34,28) 엘리야나 다니엘 예언자도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 단식을 하였는데 재를 뒤집어쓴 채 몇 주간씩 맛있는 음식, 고기와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엄격하게 지켰습니다.(다니엘10,2-3)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주님께 예배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바르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선택하셨고 사도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습니다.(사도13,1-3)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서 40주야를 광야에서 단식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루카4,1-2) 단식과 금육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이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자신을 정화하며 이웃을 돕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단식은 우리를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에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식을 통하여 모아진 정성은 반드시 이웃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 맺는 단식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랑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기회를 놓치지 말고 많이 많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기회 있을 때 잘해!” 사랑합니다. 감곡성당 반영억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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