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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13일 야곱의 우물- 마태4,1-11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13 조회수405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3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5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6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7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8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9“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10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11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일상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선택과 결단으로 나갈 굳센 믿음을 더해 주소서 !

세밀한 독서 (Lectio)
절제와 희생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수난과 죽음은 고통과 절망을 불러오며, 그것 자체로 어두움이고 메마른 광야와 사막이 되어 우리 내면에 펼쳐집니다. 그러나 광야는 하느님을 향한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며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희망을 불러옵니다. (묵시 21, 1 참조)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의 인도로 광야” (마태 4, 1) 에 나가십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당신의 신원과 직무에 공적인 확신을 불러왔습니다. 성령은 ‘광야’ 라는 거칠고 황량하며 고독한 장소로 예수님을 인도하며 ‘하느님 아들’ 로서 직무를 어떻게 수행해 갈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십 년간의 광야생활에서 유혹을 받았듯이 예수님께서도 “사십 일간 밤낮으로 단식” (2절) 을 하신 다음 악마의 유혹을 받습니다. 악마는 하느님 뜻을 거슬러 세상을 따르도록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유혹자” (3ㄱ절) 입니다. 유혹자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계시된 말씀으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3, 17; 4, 3. 6), 돌들에게 빵이 되게 하라고, 성전 꼭대기에서 몸을 던져보라고 합니다.
 
빵은 생명 보존을 위한 생활필수품입니다. 악마는 예수님께 현세의 목적을 위해 메시아의 영적 능력을 이용하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 유혹은 예수님만 받았던 것이 아닙니다.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끊임없이 받는 유혹입니다. 거룩한 것까지 육신을 위해 쓰도록 충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때 ‘모든 의로움’ 을 이루기 위해 (3, 15) 하느님의 뜻을 따랐던 것처럼, 현세의 메시아가 되라는 유혹을 물리칩니다. 그리고 “빵이 아닌 하느님의 모든 말씀” (4, 4ㄷ) 으로 살아가며 그분만을 섬기겠다고 하십니다. (10절)
 
“몸을 던져보라.” (6ㄱ절)는 것은 하느님의 선하심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정하고 떠보라는 유혹입니다. 시편 91, 11 – 12을 글자 그대로 인용하는 악마한테 예수님은 성경의 근본 의미를 들어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7절) 하고 단호히 거절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느님께 불순종하고 그분을 시험했지만 (1코린 10, 9 참조),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하느님을 시험하기보다 끝까지 신뢰하고 순종하겠다는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표명하십니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보여주며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4, 9) 하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악마의 약속은 이미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이신 메시아한테 하셨던 말씀을 이용한 것입니다. 세상은 악마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한테서 예수님께 위임된 것입니다. (시편 2, 8; 72, 8; 마태 28, 18) 또한 ‘경배하다’ 라는 동사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완전한 복종을 뜻합니다. (마태 2, 2; 2, 11; 8, 2; 9, 18; 창세 37, 7 – 10 참조)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빠졌던 최초의 유혹 (창세 3, 1 – 7) 으로 제1계명을 거슬러 한 분이신 하느님께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10ㄴ절) 하시고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10ㄷ절) 하며 물리치는 동시에, 예수님의 승리와 하느님 아들로서 권위를 확고히 하십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고 하느님 뜻에 순종하심으로써 충실한 새 이스라엘이 되십니다. 유혹을 물리칠 때 “악마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11절) 이렇듯 유혹을 물리친 광야는 하느님 사랑의 손길을 체험하고 그분을 만나는 장소가 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세례 사건과 이어진 유혹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시련과 유혹 속에서도 주님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의 뜻에 충실한 자기희생의 삶을 살아야 하며, 하느님의 자녀는 어떤 유혹에서도 승리할 것을 보여줍니다.

묵상 (Meditatio)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 (마태 4, 3) 이 얼마나 크고 위험한 유혹입니까 ?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처참한 상황에서, 그럴 수 없다고 단언하는 나의 관념 앞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못할 것이 무엇이며 왜 당장 행동하지 않으시는가 하며 수없이 되뇌던 저한테 다가온 유혹이기도 합니다. 저의 믿음을 땅에 묶어놓은 채 예수께서 현세적 욕구를 채워주는 메시아로 오시기를 원하지만, 예수님은 왕좌가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영원한 것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구원은 ‘돌이 빵이 되는 것’ 에 있지 않으며, 참된 믿음은 몸을 던져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졌을 때 나를 받쳐주는 기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악마한테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더 큰 권력을 얻기도 하지만, 그 대가로 자유와 사랑을 잃게 됩니다.

기도(Oratio)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시편 95, 8)



반명순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로마 5, 17 – 19 )

 

반명순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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