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의 형제들" - 3.1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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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3-14 | 조회수447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3.14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레위19,1-2.11-18 마태25,31-46
"주님의 형제들"
하느님과 이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웃을, 공동체를 통하지 않고는 하느님께 이르는 길도, 거룩해지는 길도 없습니다. 이래서 공동생활입니다. 그러나 전례공동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전례와 삶이 하나가 된 공동체가 이상이며 바로 이를 목표로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요 우리 교회공동체입니다. 오늘 주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은 물론 우리들이 공동생활 중에 지켜야 할 규범을 주십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는 말씀에 이어 이웃과의 관계에서 “…안 된다.” 라는 부정적 조항이 무려 16회나 나옵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훼손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라 합니다. 말씀이 일단락 될 때 마다 못 박듯이 “나는 주님이다.”로 그 말씀의 진정성을 확보해주십니다. 부정적인 “…안 된다.” 금지조항과 대조적으로 “…한다.”는 2회 나옵니다.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그리고 결론과도 같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입니다.
결국 그 많은 금지 조항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둘로 요약됩니다. 거룩함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납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에 이르는 길은 바로 이웃 사랑의 실천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복음에서 1독서의 내용이 구체화됩니다.
추상적인 주님 사랑이 아니라 보이는 작은이들을 통한 주님 사랑입니다.
전례 안에서 만의 주님 체험이라면 불완전합니다. 환상의 사랑일 수 있습니다. 일상의 보이는 작은 형제들을 통해 주님을 만날 때 전례의 완성이요 신비주의의 실현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잣대 역시 이웃에 대한 사랑 실천임을 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주님은 가난하고 약한 작은이들을 내 형제들 이라하며 자신과 동일시하십니다. 바로 굶주린 이들, 목마른 이들, 나그네들, 헐벗은 이들, 병든 이들, 감옥의 수인들 등 구체적 곤경 중에 있는 이들입니다. 이들을 홀대한 이들에 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매일의 성체성사가 이 신비를 깊이 깨우쳐 줍니다. 주님의 성체를 모심으로 모두가 주님의 살아있는 성체임을, 또 하나의 작은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게 바로 인간신비의 원천이요 인간 존엄과 품위의 기반입니다. 작은이들 하나하나가, 또 내가 또 하나의 그리스도임을 깨달을 때 도저히 무시하여 함부로 남을, 또 나를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작은이들에 대한 모독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모독이요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 근거한 우리 분도회의 병든 형제들에 대한 섬세한 배려와 손님들에 대한 환대입니다.
“모든 것에 앞서 모든 것 위에 병든 형제들을 돌보아야 한다. 참으로 그리스도께 하듯이 그들을 섬길 것이니 이는 그분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는 나를 찾아주었다’하시고 또 ‘너희가 이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은 내게 해 준 것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RB36,13)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장차)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 주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RB53,1).
주님은 매일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당신의 거룩한 몸인 성체를 모심으로 변화되어 당신의 거룩한 현존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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