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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26일 야곱의 우물- 루카15,1-3.11ㄴ-32 묵상/ 회개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26 조회수324 추천수5 반대(0) 신고
회개

그때에 1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1“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주십시오.′’ 20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주시는군요.’ 31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 작은아들은 방황이라는 상표가 붙은 샌들을 신고 자유를 찾아갑니다. 그의 가출은 자기 탐닉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방황과 유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세상은 그에게 삶의 실상을 냉혹하게 가르쳤습니다. 큰아들은 안정이라는 상표가 붙은 구두를 신고 일상을 맴돌았습니다. 그의 일상적인 성실 또한 자기 탐닉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도 실패했습니다. 늘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도 아버지를 알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두 아들 모두 해결해야 할 삶의 문제가 있습니다. 작은아들은 좌절이라는 마구간에서, 큰아들은 소외라는 안방에서 살아온 자신의 실상을 돌아보고 고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마구간에서든 안방에서든 스스로 자신의 실상을 제대로 깨닫고 고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은 선을 추구하면서도 악으로 기울어지므로 회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일면에서는 타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 는 아버지의 존재 없이는 쓰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는 회개란 의지적 노력으로 나를 변화시키거나 성숙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임을 일러줍니다.
큰아들은 아버지를 떠난 적이 없었음에도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라는 아버지 말씀을 납득하지 못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람이 아니었기에 초조함과 분노를 감춘 채 살아온 것입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를 떠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아버지의 사람임을 뼈아프게 깨닫습니다.


윤인규 신부(대전교구 버드내천주교회)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로마 5, 5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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