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ever drinks the water I shall give will never thirst;
the water I shall give will become in hi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Jn.4.14)
제1독서 출애17,3-7
저녁에 붉게 물든 태양과 한 낮의 밝음을 전해 주는 태양은 색깔이나 또 모양도 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일몰 직전의 태양은 가짜고 한 낮의 태양만이 진짜 태양일까요?
또 가을이 되면 숲은 고운 단풍으로 물들게 됩니다. 그나마도 좀 더 지나면 볼품없이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게 되지요. 그렇다면 봄날의 푸름과 여름의 무성한 나뭇잎을 가지고 있는 나무만 진짜 나무고, 고운 단풍으로 물든 나뭇잎과 나뭇잎이 떨어진 나뭇가지만 남은 나무는 가짜 나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또 다른 한 가지 예를 들어보지요. 여기에 시든 꽃이 한 송이 있습니다. 이미 시들었다고 해서 이 꽃에게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처럼 지금의 겉모습만으로 ‘진짜다, 가짜다’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지금의 겉모습으로만 쉽게 판단하고 단죄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과정 안에서 아픔과 상처를 안고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금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 민족은 남북으로 분열되어서 남쪽에는 유다 왕국이 섰고 북쪽에는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남 유다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었고, 북 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였지요. 이렇게 서로 반목하면서 살다가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 후 남 유다는 북 이스라엘이 이방인과 이방신을 받아들여서 혈통과 순수성을 잃었다고 하면서 배격을 하지요. 그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름길인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고 요르단강 동쪽으로 돌아서 다녔던 것이지요.
따라서 사마리아 지방으로 들어선 예수님의 행동도 이해할 수가 없으며, 사마리아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자도 아닌 여자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깜짝 놀랄만한 큰 사건이 아닐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이 여인은 말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큰 스캔들을 일으킬만한 행동을 하실까요? 바로 예수님께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 그 자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문화적 요소와 규칙만을 중요하게 여겼지요. 그러다보니 세상의 기준인 돈과 명예에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 그 자체가 중요하기에 겉으로 보이는 관습과 규칙에서 자유로우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이 여인에게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바로 예수님께 드리는 호칭의 변화로 드러나지요. 처음에는 ‘선생님’으로 불리다가 ‘예언자’로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메시아’로, 결국 예수님 앞에 ‘세상의 구세주’라는 호칭으로 확대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알아가는 여인이었습니다. 율법에는 세 번까지 재혼할 수 있다고 되어있기에, 남편을 다섯이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죄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정오에나 물을 길을 만큼 숨어 지내던 여인이었지요.
사실 자신의 죄를 숨기려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이 여인은 변화되어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들을 이끌어 그들도 예수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고백하게끔 만듭니다.
겉모습이 우리에게 참된 삶을 건네주지는 않습니다. 진짜라고 생각되는 그것이 바로 거짓 그 자체일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알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들 역시 사마리아의 이 여인처럼 세상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기분좋은 선택(조명연‘희망가게’ 중에서)
며칠 전, 같은 강화에 있는 바다의 별 청소년 수련원에 방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오랫동안 수련원에 가 보지를 않았고 얼마전 모든 공사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축하도 겸해서 찾아 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선 전화를 걸었고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가겠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역시 그 수련원에는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피자'였지요. 수련원은 제가 있는 곳보다 더 시골로, 피자집을 찾기가 쉽지 았았거든요.
아무튼 저는 피자 두판을 들고서 수련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계시는 수녀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새로 입주한 곳을 둘러 보았지요. 그런데 그 수녀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신부님, 신부님한테는 지금처럼 긴머리가 어울리는 것 같아요. 상당히 부드러워 보여요."
저를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항상 짧은 스포츠형의 머리를 하고 다닙니다. 우선 머리숱이 많아서 짧게 자르지 않으면 너무나 덥고 머리카락의 힘도 너무 세서 짧게 자르지 않으면 옆머리가 붕 뜨거든요. 이러하다 보니 관리하기 쉬운 짧은 스포츠형의 머리를 항상 선호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서 수련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서 이발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에서 수녀님의 '부드러워 보인다'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수련원을 방문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면서 계속 고민을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발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집으로 그냥 들어가는가?
결국 저는 그냥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비록 머리카락이 붕 뜨고 또 긴 머리카락으로 인해서 덥다 하더라도 '부드러워 보인다'는 그 수녀님의 말씀으로 인해 미용실이 아닌 집으로 선택하게끔 했던 것이지요.
이 새벽, 길어서 불편한 저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의 이목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즉 겉모습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모습은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마음으로 우러난 모습이 진정 자신의 모습이라는 생각으로 자기자신에게 먼저 당당해 진다면 오늘 한 선택이 기분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내 모습 그대로를 예쁘게 사랑하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는 연습만 하더라도 겉모습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거울을 보며 미소를 띄워 보는 것이 어떨까요?
Lovers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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