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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28 조회수855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3월 28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No prophet is accepted in his own native place. 
(Lk.4.24)
 
 
제1독서 2열왕5,1-15
복음 루가4,24-30

미국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생님이 교실 복도를 걷다가 얼굴이 갈색인 동양계 학생이 흑인 학생에게 '초콜릿!'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신체적인 약점을 꼬집어 별명을 일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흑인 아이를 초콜릿이라 부른 아이를 불러 세운 후 엄한 표정으로 그 아이에게 물었어요

" 그 아이에게 초콜릿이라 부르는 이유가 뭐지?"

그러자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어요

" 그 애는 제 친구거든요, 그 아이와 얼굴색이 흰 토니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을 다른 아이들이 삼총사라 부르지요."

선생님은 맹랑하게 대답하는 아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네 친구들은 너를 뭐라고 부르지?"

아이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코코아요"

선생님은 피부색에 빗대어 부르는 별명이 듣기에 거북하지 않느냐고 묻자 아이가 대답합니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제 얼굴색은 코코아 색과 정말로 비슷한걸요!"

선생님은 자기의 얼굴색이 코코아색이라고 태연히 말하는 아이가 의아스러웠어요. 그는 아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너희들은 토니를 무어라고 부르지?"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답해요

"눈송이요"

선생님은 처음에 아이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었지요 신체적인 약점을 가지고 별명을 붙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떤 편견없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편견 때문에 그런 별명을 불렀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별명을 자신있게 불렀던 것이지요

결국 아이들이 편견을 가진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눈과 마음속에 편견의 씨앗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이런 편견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학력이 높아야 하고 능력와 재주가 많아야 인정을 해 주지요.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 정치, 경제 , 문화등 모든 부분의 지도계층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소위 엘리트라고 하는 일류 학교 츌신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신문 지면을 채우고 있는 각종 비리, 불법거래, 뇌물수수와 호화사치, 벤처 사기, 온갖 부도덕과 부패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 마음속에 있는 편견의 그물들을 걷어 내어야 할때입니다. 그런 다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 들이는 넓은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편견은 세상을 참 슬프게 하지요. 우리의 생각은 자주 그리고 많은 부분이 옳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편리한대로 생각합니다. 이제 더이상 보이는 것에 현옥되지 맙시다. 그렇게 하면 세상이 더욱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본성이 평온하고 행복한 사람은 나이 드는 것에 결코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 성격의 소유자에게는 젊음도 늙음도 똑같은 짐이다.(플라톤)



 

 

어제 새벽 4시 30분쯤이었습니다. 성당 문을 열고, 불을 켜놓기 위해서 문을 나서자마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성당과 밖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의 잠금 장치가 부서져 있었고요. 저는 순간적으로 지지난달에 찾아왔던 도선생님이 또 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약간의 긴장이 생깁니다. 성당에서 사무실 쪽으로 내려가는데, 사무실 앞의 쓰레기통이 쓰러져 있고 뚜껑은 부서져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저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도둑이 들었구나.’

이제는 긴장감을 넘어서 두려움이 생깁니다.

‘혹시 저 구석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덮치면 어떻게 하지?’

‘몽둥이라도 하나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누구 있어요?”

사실 도둑이 들었다면, 도둑도 누군가 나타나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그래서 저의 목소리를 듣고서 스스로 도망가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큰 소리로 말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성당은 너무나도 조용했습니다. 저는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성당 문과 쓰레기통 외에는 전혀 이상이 없고 깨끗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요? 낮에 강제로 문을 열려는 사람에 의해서 성당 문의 잠금 장치가 부서진 것이고, 쓰레기통 역시 어떤 사람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도둑의 소행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단순히 문과 쓰레기통을 보고서 도둑이 들어왔다고 생각을 했고 또한 두려움도 함께 간직하고 있었지요.

이러한 지레짐작의 모습들. 어쩌면 우리들이 자주 행하는 커다란 잘못의 시작이었습니다. 지레짐작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할 때가 너무나 많았거든요.

오늘 복음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예수님을 지레짐작합니다. ‘저 사람은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 구세주가 아니다.’라고 그들은 지레짐작을 했고, 또한 단정 지었습니다. 즉,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이야기만을 하지 않는 예수님을 그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서 떨어뜨리려는 악행을 행하려고까지 했습니다.

우리 역시 지레짐작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할 때, 이렇게 엄청난 악행을 저지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또 다른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노력을 하셨으면 합니다. 그러한 노력이 지레짐작하여 예수님을 거부하는 행동들을 하나씩 없애도록 할 것입니다. 
 
 
 
 
You Raise M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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