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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섬김의 공동체 - 3.2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28 조회수291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3.23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예레18,18-20 마태20,17-28

 

 

 

 

섬김의 공동체

 

 

 

오늘은 주로 공동체에 대해 묵상했고,

강론의 주제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아무도 공동체를 떠나 혼자서는 살 수 없고

공동체의 관계를 떠나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이기주의라는 고질적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길도 공동생활뿐입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공동체에 대한 묵상 중

문득 떠오른 얼마 전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에 대한

어느 분의 통찰이었습니다.

 

“나는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된 활(活)단층의 작용을 보면서

  우리 사회 내부를 생각했다.

  땅속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도 단층이 있고

  그 중에서도 사회의 근본을 뒤흔들 수 있는 활단층,

  즉 단층화를 주도해 급기야 지진을 일으키는 단층이 있다고 본다.

  이 사회 기득권층이다.”

 

살아있는 활물인 지구에만 지진과 쓰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활물인 사람이나 공동체에도 지진과 쓰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개인이나 공동체가 스트레스가 쌓였다 폭발할 때

그대로 지진이 일어나듯

주변을 뒤집어엎고 분위기를 쓰나미처럼 혼란으로 휩쓸어 버리는 경우

종종 세상에서 목격하지 않습니까?

시한폭탄 같기도 하고 활화산 같은 개인이요 공동체 같기도 합니다.

 

 

“그분은 예측이 가능한 분이시다.

  그분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양이 잘 되어 자기 관리가 철저하여

주변에 안정감과 신뢰를 주는 사람이 예측가능한 사람입니다.

반면 언제 내적 화산이 터질지 모르는 정서불안에

변덕이 심한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라면 참 불안하고 불편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공동체가 끊임없이 바치는 공동전례기도입니다.

수도원의 규칙적인 일과가 우리를 예측 가능한 사람으로 만들고,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음으로

내적지진이나 쓰나미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공동체의 지진과 쓰나미의 예방에 필요한 지혜를 배웁니다.

 

첫째는

공동체내에서 겪는 서운함이나 어려움을

직접 공동체의 형제에게 쏟아 놓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쏟아 놓는 것입니다.

 

이래서 매일 적절한 시간마다 배치되어 있는 미사와 성무일도 시간입니다.

정제되지 않은 거칠고 험한 감정을 쏟아놓았다간

개인은 물론 공동체가 지진처럼 요동칠 수 있고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오늘 1독서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억울한 울분을

적대적인 사람들에게 쏟아내지 않고 하느님께 기도로 폭발하지 않습니까?

 

“주님, 제 말씀을 귀담아 들어 주시고, 제 원수들의 말을 들어 보소서.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

 

만일 예레미야가 분별없이 이 기도 내용 그대로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쏟아 놓았다면

그 공동체는 지진과 쓰나미로 혹독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예레미야도 온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둘째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처럼

공동체의 현실을 환상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지혜입니다.

공동체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이상적인 유토피아 공동체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제자공동체를 보십시오.

완전히 동상이몽의 오합지졸의 공동체입니다.

최고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공동체의 수준이 이 정도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제자공동체를 대하는 주님의 태도입니다.

수난 예고에 동문서답 식으로

예수님 곁자리를 요구하는 제베대오의 두 아들과 그 어머니입니다.

주님은 이들의 요구에 좌절함이나 화냄이 없이 침착히 대응하시며

그 자리는 당신 소관이 아니라 아버지의 소관이라 밝히십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매사 주님의 잔을 마시는 순종의 과정에 충실할 뿐

결과는 하느님 처분에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제자들의 몰이해에 경솔히 화를 내며 불만을 쏟아냈다면

허약한 공동체는 큰 지진과 쓰나미의 상처를 겪었을 것입니다.

 

이어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기는 열 제자에 대한 주님의 처신도

참 지혜롭습니다.

열 제자의 마음의 현실을 직시한 주님은

이들을 꾸짖거나 화냄이 없이

조용히 타이르시며 섬김의 공동체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킵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공동체 한가운데 계신 섬기러 오신 주님을 본받아

섬김과 종의 영성을 충실히 살아갈 때

개인이나 공동체의 지진이나 쓰나미도 줄어들 것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말씀과 성체로 우리를 섬기시며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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