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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 3.2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28 조회수359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3.27 사순 제3주일

탈출17,3-7 로마5,1-2.5-8 요한4,5-42

 

 

 

 

 

 

"주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목말라 하는 사람들입니다.

몸을 지닌 인간의 숙명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생노병사의 네 가지 고통도

결국 몸을 지닌 인간의 현실을 말해 줍니다.

몸을 지탱해 살아나감이 고통이고

늙어가고 병들고 죽는 것 모두 고통이니,

하여 불가에서는 인생고해라고 말합니다.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는 나무들처럼,

삶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몸은 그대로 ‘삶의 역사’라 할 만합니다.

 

중요한 말은 한 자라는 사실이 주목됩니다.

몸, 밥, 물, 돈, 집, 일, 옷 등 끝이 없으며

이 모두가 보이는 대상을 지칭하며

몸에 밀접히 관련된 것임을 깨닫습니다.

작은 몸 하나에 딸린 것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보이는 땅의 것들 모두에 목말라 집착하는 사람들, 이게 사람입니다.

 

바로 여기 몸에 따르는 온갖 고통들임을 깨닫습니다.

몸이 있으니 먹어야 되고 마셔야 되고 써야 되고 입어야 되고

살아야 되고 아파야 되고 늙어야 되고 죽어야 되니

살아있는 한 아무도 몸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이 몸의 현실을 자각할 때 저절로 샘솟는 인간에 대한 연민입니다.

바로 몸을 지닌 인간의 숙명과 같은 목마름입니다.

목마를 ‘갈(渴)’자가 들어가는

갈증, 갈망, 갈구, 갈애, 갈급 의 말이

몸을 지닌 인간의 실상을 잘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야곱의 우물을 찾은 사마리아 여인은

바로 광야인생을 살아가는 목마른 사람들인 우리를 상징합니다.

바로 우리는 이 야곱의 우물 미사잔치에서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실 주님을 만납니다.

 

 

하느님을 갈망하십시오.

 

이래야 절제되는 육적 갈망입니다.

우리의 모든 육적 갈망은 끝이 없습니다.

그 무엇도 몸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습니다.

끝없는 몸의 욕구는 결국 끝없는 마음의 욕구를 반영합니다.

옷이, 돈이, 밥이, 집이, 일이,

마음의 무한한 욕구를 채워줄 수 있겠습니까?

하여 온통 목마른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주님만이, 주님의 성령만이 온갖 갈증을 해갈시켜 줄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물이 상징하는바 바로 주님이요 성령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 안에 부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이 희망의 샘입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사는 사마리아 여자는

그래도 목이 말라 야곱의 우물을 찾았습니다.

수십억, 수백억의 재산가들이 여전히 목말라

재산 불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갈증이 계속되는 한 여전히 지옥인생입니다.

갈증이 해갈될 때 비로소 천국인생이요

바로 주님을 갈망할 때 이루어집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하느님을 목말라할 때 비로소 흡족해지리라는 주님의 약속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참되고 좋고 아름다움을,

정의를, 진리를, 사랑을, 희망을, 목말라 할 때

친히 하느님의 성령으로, 생명과 사랑으로 비로소 해갈되어

충만해 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임종어, ‘목마르다’라는 말씀은

평생 하느님을, 진리를 목말라 했던 주님의 삶을 요약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초대 말씀도 기억합니다.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없이 술과 젖은 사먹어라.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들 하느냐?

  들어라.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리라.”

 

이어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은 물론

주님을 목말라 하는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바로 1독서 탈출기 호렙의 바위에서 터져 나온 물이

목말라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을 살렸듯이

이 성체성사를 통해 구원의 바위이신 주님으로부터 샘솟는 물이, 은총이 우

리를 살립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고백 그대로 주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입니다.

 

“주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주님은 고맙게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생명의 물인 성령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십니다.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십시오.

 

광야인생을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두 번째 말씀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 새로운 세상입니다.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삶이 됩니다.

지상에서 천국의 삶입니다.

허무한 인생은 충만한 인생으로 바뀝니다.

인생고해는 인생축제로 바뀝니다.

사마리야 여자 야곱의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그 운명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 야곱의 우물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우리 역시 지상에서 천국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말씀은 그대로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그렇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요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오늘 지금 여기가

바로 여러분이 하느님을 만나는 성전입니다.

어디 거룩한 성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디나 하느님 계신 성지입니다.

떨기나무에서 주님을 체험했든 모세처럼

어디나 신발을 벗어야 할 거룩한 땅이요,

잠 깬 야곱이 고백했듯이

바로 지금 여기가 하느님을 만나는 하느님의 집이자 하늘 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이들에게 환히 계시되는 진리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영과 진리로 충만한 삶 자체가 최고의 예배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한다.”

 

참 귀한 경신례의 자세를 말해 줍니다.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미사를, 성무일도를 드릴 때 주님을 만납니다.

우리 역시 고양되어 주님을 닮아 갑니다.

영과 진리를 떠난 모든 예배는 공허할 뿐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십시오.

 

바로 이게 우리의 진짜 양식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신 주님의 뜻이 하늘 양식입니다.

이래야 밥의 욕구에서 많이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하늘 양식을 추구하는 삶일 때 채워지는 영적 굶주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통해 참 귀한 말씀을 주십니다.

주님과 제자들의 동문서답 같은 대화가 의미심장합니다.

제자들의 관심이 땅에 있다면 주님의 관심은 하늘에 있습니다.

 

“스승님, 잡수십시오.”

 

제자들이 스승 예수님에게 땅의 음식을 권하자

예수님의 뜬 금 없는 대답이 참 당혹스럽습니다.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대답하시자 땅의 현실에 밀착되어 있는 제자들의 사고는

도저히 이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누가 스승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리기라도 하였다는 말인가?”

 

다음 주님의 대답이 참 통쾌하고 시원합니다.

우리의 눈길을 하늘로 향하게 합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의 양식 또한 그러합니다.

이 하느님의 뜻을 찾지 못해, 살지 못해 나를 잃고 방황이요 굶주림입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 역시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두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히브리서 주님의 고백도 기억합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삶의 의미를 몰라

답답하고 목마르고 배고픈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깨달아 실천할 때

참 나의 실현에 참 행복이요 바로 이게 구원입니다.

주님을 보내신 분의 뜻은 막연하지 않습니다.

복음 선포의 사명입니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

  이미 수확하는 이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알곡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씨 뿌리는 이도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

 

주님과 함께 복음 선포의 삶에 매진할 때

참 기쁨이요 참 나의 실현에 참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미사가 끝나면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라는

주님의 말씀과 더불어 세상에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좋으신 주님은 광야의 사순시기

야곱의 우물 같은 미사에 참석한 목마른 우리들을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시며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갈망하십시오.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십시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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