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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29 조회수963 추천수1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3월 29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Lord, if my brother sins against me,
how often must I forgive him?
As many as seven times?”
“I say to you,
no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
(Mt.18.21-22)
 
 
제1독서 다니엘 3:25, 34-43
복음 마태 18,21-35

어떤 무덤 앞에서 노인 한 분이 목 놓아 울고 있습니다. 며칠 전 아내가 죽어 묘지에 묻으러 온 그 노인은 무덤 앞에 앉아 울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어요.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소.”

주위 사람들은 그 노인의 울부짖음에 시선을 집중했고 무슨 사연이기에 저렇게 슬피 우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사랑하오,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오.”

가족들은 슬프게 울면서 사랑한다는 말만 계속하는 노인을 만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이제 그만하세요. 슬픈 심정 다 이해해요.”

장례식은 계속 되었고 노인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계속 흘러 내렸습니다. 한 사람이 나와서 송별사를 읊으려는 그때 노인은 또 앞으로 갑자기 뛰어 나와 무덤을 부둥켜안고 울면서 또 다시 소리칩니다.

“여보, 난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오.”

사람들은 노인의 그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슬프다 하더라도 저렇게까지 하실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지요.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던 한 사람이 모든 식을 마친 뒤에도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노인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슬픔을 이해합니다. 많이 아쉬우시죠?”

노인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내 아내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사실 나는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말에 대해서 떠올려 봅니다. 과연 사랑이 가득한 말을 하고 있는지, 또한 사랑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지요? 어쩌면 사랑보다는 미움의 말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입 밖으로 내뱉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후회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내가 받고 있는 사랑을 기억한다면 미움이나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 이웃들에게 또한 내 가족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상도 없을 정도로 큰 사랑을 베푸시는 주님께 우리들은 너무나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내가 받은 사랑은 생각하지 않고, 내가 준 사랑만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을 예수님께서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를 꾸짖고 계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용서와 사랑을 간직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지 못할 때, 우리들은 결국 후회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후회할 행동은 하지 맙시다.



 

 

이러한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중년의 여자가 멋있어 보일 때...’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글입니다.

컴퓨터를 어느 정도 만질 줄 알고, 인터넷을 사용해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멋진 카페방을 드나들며 태그 써서 영상시 올리고 음악 올리고 컴퓨터에 자기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여인.

그 깨알 같은 휴대전화, 문자받침 찾아 메시지 띠울 줄 알아서, 남편. 자식. 친구에게 사랑한다고 문자 메시지 날릴 줄 아는 여인.

베스트 드라이버는 아니더라도 운전석에 앉자 선글라스 끼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운전해 가면서 주위의 차 흐름에 잘 따라가, 알짱거린다고 욕 안 먹게 운전을 잘하는 여인.

여자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옅은 화장에 머리도 신경 써서 만질 줄 알고, 멋에 대한 감각도 좀 있어 세련미를 풍기는 여인.

자기관리 잘해서 그렇게 몸이 많이 안 퍼진 여인, 자신을 위해 돈쓸 줄도 알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

자신에게 투자할 줄 알고 책도 좀 읽으며 시도 좋아하고 지적 호기심도 가지고 있고, 길섶에 핀 풀꽃 한 송이에도 눈 맞춤 할 줄 아는 녹슬지 않는 감수성을 가진 여인.

작은 일에도 감동을 잘하는 여인, 하얀 눈을 보고 감동하고 예쁜 꽃을 보고 감동하고, 지는 석양이 아름다워 감동하고, 퇴근 길 남편 손에 들려진 붕어빵 한 봉지에도 감동할 줄 아는 여인.

살아온 연륜이 품위로 들어나는 여인 마음의 욕심을 비워내 표정이 편안하고 그윽하고 우아한 여인.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친구랑 같이 이야기하면서 주위를 의식해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며 그렇게 교양도 좀 있는 여인.

어때요? 지금 중년의 나이를 지니고 계신 자매님들……. 이런 자매님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반대로 이런 생각도 들어요. 중년의 나이를 가진 형제님들도 이럴 것이라는 것이지요. 아니 어쩌면 나이에 상관없이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러 저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소원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원만 가지고 있을 뿐,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한 어떤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노력과 실천 없이는 그 소원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런 노력과 실천 없이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용서의 차원을 말씀하시는데요. 그래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라는 본인의 노력과 사랑의 실천을 먼저 이야기 하시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저절로 용서가 되길 원하고, 저절로 좋은 관계가 이루어지길 바라고, 저절로 내가 행복해지길 원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노력 없이 이루어질까요?

앞선 이야기에 등장하는 멋있는 중년의 여인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멋있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나요? 아직까지도 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When I Fall In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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