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 이 책은 중심인물의 이름을 따서 다니엘서라고 부른다. ‘다니엘’이란 이름은 ‘하느님’을 지칭하는 명사 ‘엘’과 ‘심판자’라는 의미의 명사 ‘다얀’이 합쳐진 것으로 ‘하느님은 나의 심판자시다’ 라는 뜻이다.
히브리 경전에 다니엘서는 히브리어(1,1-2,4; 8-12장)와 아람어(2,4-7,28)로 기록되었다. 가톨릭 경정은 히브리 경전의 다니엘서뿐 아니라 70인역이 첨가한 아자르야의 노래(3,24-50)와 세 젊은이들의 찬미(3,51-90), 그리고 수산나 이야기(13,1-64)와 벨 신상과 큰 뱀 이야기(14,1-42)를 제2경전으로 받아들였다.
- 히브리 경전은 이 책을 성문서로 분류하여, 에스테르기와 에즈라기 사이에 배치했고, 70인역은 예언서로 분류하여 에제키엘서 다음에 배치했다. 가톨릭 경전에서는 70인역의 전통에 따라 다니엘서를 이사야, 예레미아, 에제키엘과 함께 4대 예언서로 분류한다. 그러나 현대 성경학자들은 이 책을 예언문학으로 보지 않고 묵시문학으로 분류한다.
- 오늘날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다니엘서의 최종 편집시기를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안티오코스 4세의 종교박해로 고통을 겪는 유대인들을 위로하고 구원의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쓴 것이라고 본다.
- 당시 유다교는 헬레니즘 시대에 주변의 여러 이교적 문화와 대립된다. 그리스-시리아 제국이 강제로 그리스화를 추진한다. 그리하여 유다 땅에 살던 유다인들은 신앙의 갈등으로 곤경에 빠지게 된다. 일부 귀족들은 이미 그리스적 생활방식을 받아들여 익숙해진 터였다.
- 이에 다니엘서는 야훼께서 모든 민족과 모든 백성에게 주권을 행사하는 권능의 하느님이시며, 강자이든 약자이든 모든 인간의 운명이 그분 손에 달려 있다고 확신한다.
- 3,25.34-43; 35절 ‘당신의 벗’을 ‘당신에게서 사랑받는 이’로 표현한 것이다.
- 37절 당신께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바빌론 유배 시대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시대에도 들어맞는다. 1마카1,39: 4,38)
- 40절 당신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온전히 따르다’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끝내다. 이루다. 달성하다.’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뜻이 분명하지 않다.
마태오 ; 마태오 복음이 첫 번째 복음서가 아니지만 신약성경 맨 앞에 배치되어 있다. 그 이유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실현되리라고 구약성경이 예고한 약속을 선포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원후 70년경 로마 황제는 이미 식민지로서 조공을 바치고 있던 팔레스타인을 침공했다. 그리하여 유대인의 혁명운동을 없애고 예루살렘을 함락, 성전을 파괴했다. 이때 유대인은 흩어졌고, 따라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도 떠났다. 어떤 공동체는 요르단 강 동쪽 펠라로, 어떤 공동체는 시리아와 페니키아로, 나머지 공동체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의 공동체와 함께 피난했다. 마태오가 팔레스타인에서 생겨난 유대계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을 위해 복음을 쓴 것은 80년경 안티오키아에서 이다.
- 마태오는 그리스도교로 회개한 유대인의 모습으로 예수라는 인물이 구약성경에서 예고되고 유대인들이 갈구하고 그들에게 약속된 모든 것을 실현했음을 전해주고자 했고, 그리스도교는 공식적으로 유대교와 단절되었음을, 마지막으로 신앙공동체는 자신 안에 폐쇄되거나 경직된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면 안 되고 모든 시대에 모든 장조에 기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그는 왕으로서의 예수, 예언자로서의 예수,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의 모습을 전하면서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예전의 관습과 율법에 얽매인 그들을 다시금 하느님의 원하는 지평으로 이끌고 있다.
18,21-35 : 형제가 죄를 지으면 몇 번을 용서해야 하는가?
- 22절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야 한다. 이 말씀의 배경 창세 4,24의 히브리 말 성경에 “일흔일곱”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70인역에는 “일흔일곱”과 “일흔 번씩 일곱 번” 둘다 가능하다. 아무튼 이 말씀의 뜻은 무한정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횟수를 세지 말라는 것이다.
- 23절 “종”은 노예만이 아니라 때로는 중요한 인물을 가리킬 수도 있다. (마태 13,27 가라지의 비유에서처럼 주인의 말을 거들어 준다거나 잊은 것을 상기시킨다.)
- 24절 그리스 화폐단위인 한 탈렌트는 6,000드라크마이다. 한 드라크마는 로마 화폐단위로 셈하면 한 데나리온으로 일꾼의 하루 품삯이다. “만”은 고대 근동에서 계산 상 가장 높은 단위의 수이고, 탈렌트는 가 장 큰 화폐단위이다. 그래서 “만탈렌트”는 이 만큼 빚을 진 종은 갚을 가망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오로지 주인의 자비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그러하다.
- 26절 “백 데나리온”은 “만 탈렌트”와 비교해 아주 가소로운 액수이다.
- 32절 네가 청하였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이 비유는 마치 “저희에게 잘못한 일을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라는 주님의 기도에서 5째 청원을 상기한다.>
- 33절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어이없이 많은 잘못을 했음에도 우리의 청으로 용서받았듯이 우리에게 보잘것없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용서를 해주어야 한다.>
** 생각 :
- 난 항상 약해 질 때 묵는 내가 올라와 묻는다. 불만족스런 상대와 사건 속에서, 아님 내가 제대로 사랑하지 못할 때 애착을 갖고....
- "왜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가?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가?"
- 사실 올바른 사랑은 몇 번이라는 숫자나 왜 사랑해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 주님은 나에게 몇 번 사랑했는가에 대해 말씀하지 않고 사랑할 뿐이다. 내가 그를 사랑할 때까지...
적어도, 내가 그를 미워한 만큼... 미워하며 생각한 만큼,,,, 아님 하느님이 나를 용서한만큼 ...
용서하고, 축복해 주어야....
*** 실천 :
- 오늘 난 구체적으로 사랑하리라. 온 마음, 온 힘, 온 정성을 다해...
- 그가 나를 사랑할 때까지... 주님의 이름으로...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