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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3일 야곱의 우물- 요한 9,1-41/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03 조회수313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1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2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 3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4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5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6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7“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8이웃 사람들이, 그리고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온 이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 9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 그와 닮은 사람이오.” 하였다.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0그들이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 하고 묻자, 11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2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 있소 ?” 하고 물으니, 그가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3그들은 전에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14그런데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15그래서 바리사이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그분이 제 눈에 진흙을 붙여주신 다음, 제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17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18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그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
 
20그의 부모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21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 26“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소 ? 그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소 ?” 하고 그들이 물으니, 27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 ?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 28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그자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29우리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오. 그러나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 30그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31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주십니다. 32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33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34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35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 하고 물으셨다. 36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37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38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39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40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 하고 말하였다. 41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우리 눈을 뜨게 해주신 주님에 대한 참된 앎에 도달하도록 우리 마음을 밝히시어 이끌어주십시오.

세밀한 독서 (Lectio)
오늘 복음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던 사람과 예수님의 만남을 전해 줍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이 처한 상황이 죄의 결과라는 것만 생각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은 인간의 질병과 한계상황 앞에서 인간의 구원자인 당신이 해야 할 ‘하느님의 일’ 을 떠올립니다. 소경이 지나가는 순간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일을 드러낼’ 기회입니다. 오직 “세상의 빛”이신 분 (8, 12), 하느님이 보내신 하느님의 아들만이 어둠 안에 있는 사람한테 빛을 줄 수 있습니다. 수난의 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예수님은 지금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이 ‘하느님의 일’ 은 제자들이 할 수 없고 오직 예수님 혼자만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은 당신 정체를 계시하는 것과 관련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파견한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침을 사용해 곧바로 소경을 치유합니다. (마르 8, 23 참조) 이런 행위는 고대에 잘 알려진 치유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창세 2, 6 이하에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신 것과 똑같은 행위를 하십니다. 치유는 창조 행위입니다. ‘시력’ 이라는 선물은 세상을 창조하는 계시의 빛과 마찬가지입니다. 실로암으로 가서 씻은 소경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게 되고,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증언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체험해 본 사람만이 그 사람이 자신한테 무엇을 해주었는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증언할 수 있습니다. 체험 없는 지식에서 나온 바리사이들의 판단 앞에서 배움 없는 소경이 끈질기게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을 바꾼 이 체험 덕분입니다. “나의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은 ‘예수님이라는 분’ (11절), ‘예언자’ (17절),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 (33절 참조) 입니다. 나는 그분에 대한 신앙의 빛으로 내 인생과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결국 마지막까지 믿기를 거부하고 이 소경을 밖으로 쫓아버립니다. (34절) 예수님이 세상을 비추는 빛임을 알지 못하게 하는 배타적인 종교 준수야말로 진정한 ‘눈 멂’ 입니다. 결국 그들의 태도는 예수님한테서 “눈먼 자요 죄인” (41절)이라는 심판을 받습니다.
 
끝까지 ‘하느님의 일’ 을 하려는 예수님의 일관된 자세는 바리사이들이 쫓아낸 소경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그분은 먼저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 라고 질문합니다. (35절) ‘사람의 아들’ 이라는 칭호는 예수님이 수난당하기 전 마지막 밤에 제자들 앞에서 하신 장엄한 선포를 연상시킵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13, 31) ‘사람의 아들’ 에 대한 신앙고백은 인간이 되신 예수님의 삶 안에서 신적인 영광이 드러난다는 요한신학이라는 문맥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경은 곧바로 예수님 앞에서 스승을 따르는 제자의 자세를 취합니다.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9, 36) 이 사람은 아직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그의 시력을 되찾게 해주신 것 자체가 바로 당신의 정체를 알린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37절) 예수님이 삼인칭을 사용해 거리감을 두고 하시는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한테 하신 것처럼 장엄하게 당신을 계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 4, 26 참조) 이 계시로 예수님과 소경의 대화는 신앙고백에 머물지 않고, 예수님에 대한 경배로 이어집니다. (38절; 4, 20 – 24 참조) ‘어둠’ 에서 ‘빛’ 으로 건너간 이 사람은 깊은 체험을 했기에 사회적 소외나 개인적 모욕과 박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길을 충실하게 갈 것입니다. 신앙의 빛으로 세상을 다르게 보고, 인간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제1독서 참조) 시편 23편은 예수님이 치유하신 소경이 부르는 찬미가입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 (시편 23, 4ㄱ)

묵상 (Meditatio)
초대교회에서 세례는 ‘조명’ 이라고 불렸습니다. 오늘 제2독서 (에페 5, 8 – 14)에서 바오로는 세례를 통해 빛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칩니다. 세례 받은 사람은 “빛의 자녀”(8절) 입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생명의 빛’ 의 인도에 내맡기고 선행과 의로움과 진리로 열매를 맺으며 항상 모든 일에서 자신의 유익을 찾기보다는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길을 찾을 것입니다.

기도 (Oratio)
정녕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 (시편 36, 10)

 

임숙희(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성서영성 신학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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