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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를 지켜보시는 눈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03 조회수329 추천수3 반대(0) 신고
 
 

 

나를 지켜보시는 눈 - 윤경재

 

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요한 9,35-41)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태생 소경을 고쳐주시는 표징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 줍니다.

인간은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눈, 귀, 코, 혀, 피부가 그것입니다. 이들 기관은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알아채고 그에 알맞은 반응을 나타내는 일을 합니다. 그중에 눈의 역할은 나머지 감각 기관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모든 정보의 90% 가량을 눈이 처리한다고 합니다. 나머지 10% 정도를 귀, 코, 혀, 피부가 맡아서 처리합니다. 

눈의 역할은 그 비중이 높다는 특징뿐만 아니라 나머지 기관과 전혀 다른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귀, 코, 혀, 피부는 모두 대상과 가까이 다가가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대상과 직접 마주쳐야 그 기능을 더 잘 발휘합니다. 손으로 부여잡고 피부를 비벼야 촉감은 더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혀는 음식에 직접 대봐야 맛을 느낍니다. 코와 귀도 멀어지면 감각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눈은 이와 다릅니다. 어느 정도 거리와 분리를 요구합니다. 대상을 더 분명히 보기 위해서는 거리와 분리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숲을 보려면 숲에서 나와야 합니다.

태생 소경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체험을 합니다. 그는 여태 대상을 만지고 끌어안아서 파악했습니다. 그러기 전에는 대상을 안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눈을 뜨게 되자 비로소 거리를 두고 대상을 통찰하게 되었습니다. 나와 다른 그 무엇이 내 주위에 엄연히 존재했으면서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으나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기쁨에 주님의 발을 끌어안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님께서는 더는 잡지마라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거리를 두고 분리됨의 의미를 찾으라는 명령입니다. 

태생 소경은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시는 분이 나와는 다른 분으로 자리하고 계시다는 자각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곁에 있던 몇몇 바리사이는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시는 분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분을 자신이나 여타의 사람들과 동일한 부류로 여겼습니다. 그분의 특별함과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눈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육신의 눈을 달고 다니더라도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눈먼 자였습니다.

자기들이 만든 하느님 나라를 쥐고 놓지 않으려는 순간 그들의 눈은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깨달을 때, 내가 바라보는 대상도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나아가 우리 주위에서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나를 기다리는 눈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거리와 분리가 필요하다는 눈의 기능을 제대로 회복한 태생 소경은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게 되었습니다.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이 말씀 속에 깃들인 진, 선, 미의 예수님 모습을 태생 소경은 일시에 알아보고 일생일대의 고백을 외쳤습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여기서 경배라는 말의 의미는 거리와 차이를 인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언제나 지켜보고 계셨다는 깊은 자각을 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감사의 언행입니다.

오늘 우리도 태생 소경처럼 “주님, 저는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려면, 먼저 나를 지켜보시는 그분의 눈을 깨달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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