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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못 먹어야 잘 사는 신세... 그래도 '내 몫의 삶'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04 조회수387 추천수4 반대(0) 신고
          못 먹어야 잘 사는 신세... 그래도 '내 몫의 삶'
                      성인병 '3종 세트'에 신장까지... 절제와 극기의 투병기






우리 집 주방 냉장고 문에는 음식에 관한 인쇄물이 두 장 붙어 있다. 주방 냉장고 문에 음식 관련 프린트가 부착되어 있는 집들은 많겠지만, 우리 집의 경우는 색다르다. 요리법이라든가, 단순한 식단표가 아닌 까닭이다.

한 장은 신장 치료 중인 내가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물 목록이 적힌 인쇄물이다. 또 한 장은 갖가지 음식물들의 칼륨 성분 함유량이 표시된 인쇄물이다. 신장환자에게는 칼륨이 가장 문제가 되므로, 칼륨 섭취량을 효과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방책이다.

하지만 그 프린트들은 이제 냉장고 문에 반드시 붙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가족 모두 그 내용을 잘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음식 조리를 할 때마다, 또 식사를 하면서도 그 프린트들을 참고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가족 모두 음식물들의 칼륨 유무와 함유량 정도를 대략 알게 되었지만, 간혹 확인을 해야 할 필요도 있고, 또 내가 아직은 신장 환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냉장고 문에 그것을 붙여 놓고 있는 것이다.


▲ 병상생활 / 태안 앞바다 원유유출사고로 인한 '기름과의 전쟁' 중 과로로 병을 얻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 세균감염으로 인한 종격동과 사지 농양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 후인 2008년 6월 8일의 모습이다.  
ⓒ 지요하 - 세균 감염

옛날에는 통풍환자에게 필요한 프린트가 붙어 있었다. 몸 안에서 요산을 만들어내는 ‘퓨린’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 단백질 음식 목록이었다. 그러나 가족 모두 그 내용을 훤히 알게 되어서 별로 필요가 없게 되었다. 또 만성 통풍환자인 내가 오랜 투병 끝에(갖가지 방책을 섭렵한 후) 이제는 안정적으로 관리를 할 수 있게 되어 통풍 쪽으로는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또 얼마 전에는 노친을 위한 식이요법 식단표가 냉장고 문에 부착되어 있었다. 2009년 6월 노친이 서울 성모병원에서 말기 폐암 진단을 받고 난 후에 마련하게 된 식단표였다. 좀 더 자세히 소개하자면, 그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을 때 <오마이뉴스>에 올린 내 추모 글을 읽으신 중국 복건성에서 사시는 어떤 분이 내 건강을 물어온 것이 계기가 되어 노친의 폐암 치료에 필요한 대체의학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 그분에게서 입수한 식단표를 한동안 냉장고 문에 붙여놓고 있었던 것이다.

노친은 폐암을 극복했고, 골반으로 전이된 암세포가 확장되면서 골절되어 8개월 동안 병상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 뒤로 엉덩이뼈도 아물어서 당신의 두 다리로 걷게 되어 지난해 7월 퇴원 이후 집에서 별 불편 없이 생활하신다. 따라서 폐암 투병 때 사용했던 식단표는 이제 내 컴퓨터 안에만 보관되어 있을 뿐이다.

냉장고 문에 현재 남아 있는 음식물 관련 프린트는 2008년 여름에 부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베트남 전쟁 고엽제 후유증과 관련하여 당뇨와 고혈압, 그리고 통풍 등 ‘성인병백화점’ 신세인 내가 종국엔 신장 치료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냉장고 문에다 칼륨 섭취를 피하기 위한 인쇄물을 부착한 것이었다.      
  

▲ 노친 간병 / 말기 폐암과 암세포에 의한 골반 골절로 8개월 동안 병원 생활을 하신 노친을 하루 세 번씩 병원에 다니며 돌보는 것도 중요한 일과였다. 드디어 병을 이기고 걷게 되신 노친이 보조기구를 이용하여 걷기 운동을 할 때의 기쁨은 참으로 컸다. 2010년 3월 29일의 모습이다.  
ⓒ 지요하 - 노친 암 극복


태안 원유유출사고 때문에 119 신세까지

그러니까 나는 심각한 건강문제에 직면한 상황 속에서 노친의 병구완을 위해 양수겸장으로 동분서주를 한 셈이다. 그리고 노력한 만큼 보람을 얻어 노친의 병은 완치되었고, 내 건강 문제도 호전의 길로 들어섰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독자들과의 ‘정보 공유’를 위해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내가 가진 질병들은 모두 신장을 압박하는 병이다. 당뇨, 고혈압, 통풍은 하나같이 종국에는 신장을 망가뜨리는 병인 것이다. 그런 병을 세 가지씩이나 지니고 사니, 말년이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자연 내 신장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다.

일찍부터 내 건강문제를 자각하고, 건강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오전에만 글 짓는 일을 하고, 점심식사 후에는 무조건 묵주를 들고 두 시간 이상 걷기 운동을 했다. 저녁에는 성당에 가거나 읽는 일을 했다. 그것이 전반적인 생활 리듬이었다.


▲ 오체투지 순례기도 참여 / 신장 치료를 하는 중에도 여러 번 오체투지 순례기도에 참여하곤 했다. 2009년 4월 23일 오체투지 순례기도 중 잠시 휴식할 때 문규현 신부님과 함께.  
ⓒ 지요하 - 오체투지 순례기도

고장의 산길 들길 해변 길을 거의 모두 걸었다. 하루 20리가 기본이었고, 묵주기도는 40단 이상이었다. 길에 대한 호기심과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처음 밟을 때의 감회는 언제가 신선하고 흐벅졌다. 고장의 거의 모든 길을 걸어보는 데서 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다가 2007년 12월 7일 발생한 태안 앞바다 유조선 원유유출 사고는 내 일상을 앗아가 버렸다. 거의 매일 해변을 가야 했다. 2008년 1월 1일부터 천주교 태안성당 총회장을 맡게 된 나는 ‘기름과의 전쟁’에 몰두해야 했다. 연일 전국 각지에서 오는 천주교 신자 자원봉사자들을 작업 현장으로 안내하고, 작업 요령을 설명하고, 작업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떡국을 끓여 점심 제공을 한 후에도 계속 현장에 남아 뒷마무리까지 하고 일일이 배웅을 한 다음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거의 하루 종일 해변에서 기름 냄새를 맡으며 생활하고는 밤에는 원고 작업을 해야 했다.                      
                
생활 리듬이 깨진 상황에서 자연 과로가 누적되었고, 면역력이 급속히 저하되어 그만 세균 감염에 걸려들고 말았다. 세균 증식에 의한 종격동(심장과 폐와 식도 사이) 농양 발생으로, 또 전신으로 농양이 전이된 상태에서 온몸을 꼼짝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 119구급차 신세를 지게 되고 말았다.  

서울성모병원에서 정밀 검사 후 수술을 받았다. 흉부외과 팀이 4시간 동안 수술을 했고, 이어서 정형외과 팀이 4시간 30분 동안 수술을 했다. 9시간 만에 수술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면역 항체가 생겨나지 않아 의료진이 긴장한 가운데 도합 44일 동안 입원 생활을 했다.

그때 신장을 많이 다쳤다. 가뜩이나 신장을 압박하는 세 가지 성인병을 지니고 살아온 처지에서 고단위 항생제를 계속 투여하고 갖가지 다량의 약물을 복용하니, 신장이 많이 손상될 것은 당연지사였다. 병원의 주치의(흉부외과 과장)는 내가 퇴원할 때쯤 내 신장 걱정을 했다. 신장내과 선생님을 꼭 만나보라는 권유였다.

1년 내내 사순절처럼... 하지만 천행이다

한때 내 신장수치(Creatinine)는 2.5까지 올라갔다. 3.0에 이르면 혈액투석 단계라고 했다. 그러니까 신장이 80% 정도 망가진 상태라는 얘기였고, 나머지 20%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두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신장도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다”는 말 앞에서도 낙담하지 않았다. 동네 의사는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라는 사려 깊지 못한 말도 했지만, 나는 ‘누가 이기나 보자’하는 오기를 머금었다. 현상 유지, 또는 최악으로 가는 것을 지연시키는 것이 고작인 치료법을 피하고 한방 치료를 선택했다. 정상 회복에 대한 희망을 품은 것이었다.

병의 50% 정도를 의사가 고치고 50% 이상을 환자 본인이 고치는 법이라는 한의사의 말을 명심했다. 음식을 가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매일의 걷기운동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자연 신장 환자에게는 칼륨 섭취를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통풍을 일으키는 요산도 방지해야 한다. 요산을 만들어내는 퓨린 성분이 들어 있는 음식도 제한해야 하고, 신장의 적인 칼륨이 들어 있는 음식도 피해야 한다. 이미 만성 상태가 되어 버린 통풍은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서 음식 조절을 하는 외로도 내 나름의 방법으로 관리를 함으로 1년 전부터는 통풍 재발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

당뇨와 고혈압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아직은 지속적으로 걷기 운동도 할 수 있고, 내 나름의 방법으로 관리를 잘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현재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신장이다. 한 2년 정도 한방치료를 하다가 약값이 좀 부담스러워 지금은 자가 치료만을 하고 있는데, 신장 기능이 많이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최근의 혈액검사 결과 신장수치는 1.7을 기록하고 있다. 70% 정도 회복되었다는 얘기다.


▲ 여의도 '거리미사' 참례 / 건강문제를 안고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서울에 간다. 매주 월요일 저녁의 여의도 '거리미사' 참례가 내게는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지난 3월 7일 저녁의 모습이다.  
ⓒ 지요하 - 여의도 거리미사

갖가지 음식들의 칼륨 유무와 함유량을 대체로 꿰고 있으므로 음식을 가리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다. 처음에는 먹고 싶은 음식, 군침을 돌게 하는 음식을 피해야 하는 것이 적잖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별로 어렵지 않다. 눈으로만 즐기는 것도 좋고, 남들 모두 맛있게 먹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때로는 재미있기도 하다.

어느 자리에서든지 와인이나 소주 한 잔으로 버티는 것도 재미있고, 천주교 신자로서 요즘의 사순절은 물론이고 일 년 열두 달을 사순절(부활 주일 전 40일 동안의 기간. 이 기간 동안 교인들은 단식과 자선, 속죄를 행한다)처럼 지낼 수 있는 것도 특별한 은총이지 싶다. 때로는 10여 년 전 사제 피정 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평생 동안 먹지 않는 극기와 희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결심한 이후 줄기차게 해산물 음식을 일체 들지 않고 사시는 경기도 안성 유무상통마을 방구들장 신부님(관련 기사 : ‘신부님은 왜 본적을 전라도로 옮겼을까?’)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위안하기도 한다.  

가족들은 모두 내 음식에 신경을 쓰지만, 그렇다고 나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지는 않는다. 나는 가족에게 나와 상관하지 말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으라고 하면서 음식거리들을 직접 사다 주기도 하고, 앞장서 외식 행사를 갖기도 한다. 나는 먹지 않으면서(또는 조금 맛만 보면서) 가족들이 내게 미안해하기도 하며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건강한 사람이 절제를 하고 극기를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겠지만, 나 역시 평생 동안 절제와 극기 속에서 살게 된 것을 차라리 천행으로 여긴다. 잘 먹고 잘 사는 시절 속에서 절제와 극기를 생활화하며, 질병과 기아 속에서 살아가는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도 하느님의 배려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치르고 감내하는 질병과의 싸움 역시 ‘내 몫의 삶’인 셈이다.  
          

11.04.04 14:28 ㅣ최종 업데이트 11.04.04 14:28  지요하 (sim-o)
태그/ 성인병, 신장수치, 통풍
출처 : 못 먹어야 잘 사는 신세... 그래도 '내 몫의 삶' - 오마이뉴스
ⓒ 201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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