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4월 7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
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4-07 | 조회수1,004 | 추천수21 | 반대(0) 신고 |
4월 7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요한 5장 31-47절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고편 모세, ‘본방’ 예수님>
‘월화 드라마’ 혹은 ‘수목 드라마’ 그날 치가 끝나갈 무렵의 극중 전개 상황은 늘 흥미진진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까 궁금증 역시 증폭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슬아슬한 장면에서 아쉽게도 당일분이 끝나면 다음 편에서 어떻게 스토리가 전개될 것인가를 요약한 ‘예고편’이 방영됩니다.
그런데 이 '예고편'이란 것, 백번 봐도 감질만 날뿐이지 속이 시원하지 않습니다. ‘예고편’만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예고편은 오직 본방송을 소개하고 본방송에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구약시대의 성조 아브라함을 비롯한 야곱, 요셉과 같은 큰 인물들, 이스라엘 민족의 대영도자였던 모세, 대 예언자였던 이사야, 예레미야, 그의 생애가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던 마지막 대예언자 세례자 요한은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인물들이었고, 자신들의 전 생애를 바쳐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그저 예수님을 위한 예고편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여겨볼만한 인생 역시 단지 예수님 인생을 위한 예고방송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 먼 곳, 특별한 곳에 두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크고 귀한 귀빈이 우리 집에 도착하셔서 벌써 응접실에 앉아계시는데, 대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길을 청소한다든지, 유리창을 닦는다든지 하는 행동은 너무나 우스운 일이 되겠지요.
그 순간 중요한 것은 그토록 기다려왔던 귀빈 앞에 가족들이 집합하는 일입니다. 그분께 인사를 드리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다과를 나누며, 그분을 바라보고 행복해하는 일입니다.
이제 구약의 시대가 종결되고 신약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구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예언자들의 시대가 지나가고 그토록 기다려왔던 예수님의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예수님 앞으로 다가서는 일입니다.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분께서 건네시는 말씀을 귀담아 듣는 일입니다. 그분 앞에서 활짝 웃으며 행복해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은 곧 하느님 아버지를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복음)을 듣는 일은 곧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일은 하느님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쓸 데 없는 자만심, 우월감으로 가득 차 마음이 완고해질 데로 완고해진 유다인들의 눈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예수님 안에 담겨진 신비스런 보물과 메시아성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철저하게도 눈먼 사람이 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의 신앙이 본래의 순수성을 잃고 아주 천박하게 퇴색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그들이 예배는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들이 일거수일투족은 위선과 사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의 내면은 어떤지, 우리의 신앙은 어떤지, 우리의 하느님상은 어떤지 진지하게 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