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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4주간 금요일> 그분의 때(?) -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08 조회수534 추천수8 반대(0) 신고
<사순 제4주간 금요일>(2011. 4. 8. 금)(요한 7,1-2.10.25-30)

 

<그분의 때(?)>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표현만 보면 마치 정해진 시간표가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시간표가 실제로 있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정해 놓으신 시간표일 것이고,

하느님께서 정해 놓으신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서 저자가 나중에 해석한 것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제자들은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했고, 당황했고, 불안해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자신은? 하느님이신 그리스도 말고, 인간 예수는?)

 

사실 성경을 읽다보면,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하나의 거대한 시나리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도

하느님의 계획대로 진행된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인간은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연기자로 전락하고,

범죄에 대한 책임도 없어지고, 선행에 대한 공로도 없어져버립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배반자 유다의 이야기입니다.

유다의 배반이 하느님의 계획이었을까? 우발적인 사건이었을까?

유다의 이야기는 영원한 수수께끼(mystery)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대표적인 예는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노예로 팔려가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게 된 것은

모두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한 하느님의 섭리였고 계획이었다고......

요셉 자신이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잘 생각해보면,

그건 일이 다 잘된 다음에 요셉 자신이 해석한 것입니다.

온갖 고초를 겪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하느님의 섭리인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지시대로 움직입니다.

어떤 지역으로 가라고 하면 가고,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갑니다.

그런데 막판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는 동안에 만난 에페소 신자들에게 유언과 같은 작별 인사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아무도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사도 20,25).”

“그들은 모두 흐느껴 울면서 바오로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오로의 말에

마음이 매우 아팠던 것이다(사도 20,37-38).”

바오로 사도는 그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당하지 않았고, 체포되어서 로마로 끌려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로마에서 사형을 당한 것은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에서 석방되었고,

다시는 볼 수 없다고 말했던 에페소의 신자들을 다시 만났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위대한 사도 바오로도 하느님의 계획을 미리 다 알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그건 항상 일이 다 끝난 다음에 해석할 때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을 모릅니다.

모르니까 함부로 예단할 수 없습니다.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함부로 ‘하느님의 섭리...’ 운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이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라

악마의 도발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악마의 도발로 인한 고통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실 하느님이라고 믿지만,

고통도 섭리이고 은총이라는 말은 남발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고통은 악(惡)입니다. 악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악에서 구하소서.’ 라고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하여간에 우리가 하느님의 계획을 모른다는 것은

하느님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모른다는 것이고,

그걸 아무도 모르니까 그런 것은 ‘우리에게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는 정해져 있는 운명 같은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인생이 정해진 운명대로 진행되는 것이라면 기도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운명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고,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인간 예수님도 올리브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선(善)입니다. 사랑입니다.

선과 사랑에서 고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선과 사랑은 악과 고통을 극복하는 힘입니다.

그것을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바로 믿음이고 희망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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