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사랑의 영으로 부활을 .
지금 여기에서 사순의 막바지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의 말씀을 오늘 듣게 됩니다.
기원전 587년 바빌론에 의해 멸망한 남유다 왕국이 유배에 끌려가 모진 고통을 겪게 되더라도 다시 무덤을 열어 살려 주시겠다는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이나, 우리 모두가 죄 때문에 죽지만 그 죽을 몸을 그리스도의 영께서 다시 살리시리라는 바오로 사도의 희망의 말씀이나,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예수님 기적의 말씀이나 모두 다시 살아남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결국 살아있을 때 거듭되는 부활의 체험이 죽음 뒤에도 부활을 가능케 함을 배우게 됩니다. 지금 여기, 살아있는 현재의 자리에서 체험 되어지는 부활의 반복된 삶이 끝 날에도 부활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연쇄 살인범 유영철에게 아무 이유도 원한도 없이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4대 독자인 아들까지 잃은 고정원 루치아노 형제님은 살인범 유영철을 용서합니다. 용서를 넘어 그를 양아들로 삼아 때때로 유치장에 면회를 가 위로하고 감옥 안에서 필요한 것을 사라고 영치금까지 넣어 줍니다. 살인마 유영철도 다시 살았고, 용서해준 고정원 형제님도 깊은 원한으로부터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부활은 무덤에 묻힌 썩은 뼈에 살이 붙어 걸어 나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내 자신의 아집과 고집과 이기심의 껍질을 깨뜨릴 때, 진정한 부활이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분노와 울분과 체념의 나락에서 다시 일어나 믿음의 희망으로 살아갈 때에 부활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의 크고 작은 도움으로 쓰러진 형제들이 기쁨으로 다시 일어설 때 그도 나도 부활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신앙생활을 바꾸고 열정적인 기쁨으로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부활을 사는 것입니다. 그 같은 부활이 현재의 삶 안에서 거듭될 때 끝 날에 반드시 부활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시작은 여기에서부터입니다. 부활은 죽은 뒤에야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현재를 부활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부활의 삶인 것입니다.
‘채근담’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새벽 꿈에 갓 깨어 세상 만물 조용한 시간, 우리들 깨어날 때이다. 이때를 타서 잠시 자신의 내면을 살피시라. 그러면 비로소 깨달으리니, 이목구비 모두가 내 마음을 얽어매는 장애물이요, 정욕, 욕심 전부가 내 본심을 해치는 방해물임을.”
이기심과 욕심의 세상적 미몽에서 깨어남이 진정한 부활의 삶인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시편의 옛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사람이란 그 세월 풀과 같아/ 들의 꽃처럼 피어나지만 / 바람이 그를 스치면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에 머무르고/ 당신의 의로움은 대대에 이르리라”(시편 103, 15~17).
우리의 죽을 육신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이같이 끝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자들이 부활을 살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성경 전반에서 거듭 확인되고 우리에게 ‘들으라’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은, 고달픈 우리 인생의 여정에 결코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함께 동행 하시겠노라는 희망과 위로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저 유명한 ‘임마누엘’ 하느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약속인 것입니다. 그 같은 희망과 사랑 안에 사는 삶이 부활의 시작입니다. 때문에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부활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 8, 11).
결국 사도의 말씀은, 우리 안에 사랑의 영께서 계셔야 우리 또한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 26).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 주님의 현존을 믿고 그 사랑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 부활을 살 수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헨리 데이벗 소로우’는 신학자 ‘해리슨 블레이크’에게 이런 글을 썼습니다.
“우리가 생의 이 짧은 시간을 긴 시간의 법칙, 영원의 법칙에 따라 살지 않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영원의 시간 속에 살아야 하는 부활의 참된 법칙은 하느님 사랑 안에 사는 것입니다. 세상 것에 의지하는 삶은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사랑이신 주님께 의지하는 믿음으로 사는 삶은 부활의 영원한 삶으로 연결됩니다...............◆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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