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행복은 발견(發見)이자 선택(選擇)이다." - 4.1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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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4-12 | 조회수461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4.12 사순 제5주간 화요일 민수21,4-9 요한8,21-30
"행복은 발견(發見)이자 선택(選擇)이다."
행복은 발견입니다. 눈뜨면 행복이요 눈감으면 불행입니다. 미사 중 문득 떠오른 생각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행복을 잊어 모르고 죄 속에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몰라서 불행이지 알면 행복이요 이를 깨달아 앎이 구원입니다. 왕자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을 이를 잊고 몰라서 거지처럼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저는 ‘행복’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사람 누구나의 소망은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삶의 질 역시 행복 지수가 말해 줍니다. 과연 여러분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됩니까? 유교의 행복인 오복에 대해 사전을 찾아 봤더니 1수(壽) 2부(富) 3강령(康寧) 4유호덕(攸好德:도덕을 지키기를 낙으로 삼는 일) 5고종명(考終命:제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음)이라 소개 되어있었습니다. 공감이 갑니다만 세상에서 이런 오복을 갖춘 이들 몇이나 될까요. 또 이런 오복이 우리 영혼 깊이 까지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참 행복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위에서 나시고 세상에 속하지 않은 주님을 닮아 죄 속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참 행복입니다.
“주님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나의 주님, 당신만이 나의 행복이십니다.”
“주님 곁에 있는 것이 내게는 행복, 이 몸둘 곳 주님뿐이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등 시편의 고백은 그대로 우리의 고백입니다. 행복나무, 생명나무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주님을 모시는 참 행복한 미사시간, 참 행복한 우리들입니다. 행복의 원천인 주님을 잊어 몰라 마음 무디어져 죄 속의 불행한 삶입니다. 하여 사순시기 계속되는 초대 송 후렴이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는 후렴입니다. 시편 저자는 끊임없이 ‘주님께 받은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촉구하십니다. 1독서 민수기의 광야여정 중의 이스라엘 백성들 구원의 하느님을 잊었을 때 터져 나오는 불평입니다.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 것 없는 양식은 진저리가 나오.”'
완전히 감사의 실종입니다. ‘그리하여’ 불평과 원망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찬미여야 축복입니다. 하여 하느님은 불 뱀들을 보내셨고,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백성이 죽습니다. 광야인생, 광야수도생활에 불평은 금물입니다. 분도 성인이 극도로 혐오한 것 역시 불평의 악이었습니다.
“불평쟁이가 되지 마라.”
“마음속으로 불평한다면 비록 명령을 완수했다 하더라도, 불평하는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시는 하느님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먼저, 어떠한 이유로든지, 어떤 말이나 혹은 표시로라도 불평의 악을 드러내지 말 것이며, 만일 이런 자가 있거든 더욱 엄한 벌을 내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점을 권하는 바이나, 불평이 없도록 할 것이다.”
불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불평의 소재도 없애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성인의 지혜로운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행복의 원천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행복을 발견할 때 감사와 기쁨, 빛과 생명이지만 행복을 발견하지 못할 때 불평과 불만, 어둠과 죽음의 죄입니다. 불평하다가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 기둥 위에 달아놓은 구리 뱀을 바라보는 순간 살아납니다. 생명과 행복의 샘인 주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기둥 위의 구리 뱀은 그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예표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입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십자가의 달리신 신적 계시자인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의 하느님’을 깨달을 때 비로소 구원의 행복입니다. 주님의 신원과 사명이 그대로 우리의 신원과 사명이 될 때 비로소 참 행복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 역시 우리를 보내신 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혼자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주님께 파견 받은 자로서의 투철한 신원의식에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여 사명을 다할 때 참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참 행복은 발견이요 선택입니다. 주님을 또 주님 안에서 내 신원을, 사명을 발견, 선택하여 살 때 참 행복입니다. 여기서 샘솟는 빛과 생명, 감사와 찬미, 평화와 기쁨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어 행복의 원천인 당신을 뵙게 하시고,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나 천상선물을 갈망하며 날로 주님께 가까이 가게 하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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