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4.1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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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4-13 | 조회수523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4.13 사순 제5주간 수요일 다니3,14-20.91-92.95 요한8,31-42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어제는 행복에 대한 묵상을 나누었고 오늘은 자유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누구나 자유롭고 싶은 갈망입니다. 자유로워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자유 없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 역시 자유롭고 싶은 욕망을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행복 역시 자유와 함께 갑니다. 참으로 자유로울 때 행복하고 행복할 때 자유롭습니다.
온통 우리를 부자유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몸을 지니고 있다는 자체가 자유의 족쇄 같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 배가 고파 평소보다 많이 먹었는데 문득 떠오른 것이 ‘빵과 자유’였습니다. 과연 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우선 먹어야 자유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살아야 하기에 빵을 얻으려고 자유를 팔기도 합니다. 하여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도 있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도 있습니다. ‘빵과 자유’는 ‘돈과 하느님’ 만큼이나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재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겹겹이 사로잡혀 사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 같습니다. 결국은 몸을 지닌 ‘나’로부터 자유롭기 참 힘들다는 결론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자유롭습니까? ‘참 자유롭다.’라는 체험은 있습니까?
오늘 고맙게도 주님은 참 자유의 비결을 알려줍니다. 이 자유만이 우리를 모든 질곡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쟁취하는 자유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되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 자유만이 우리를 모두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대자유인으로 살게 합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자유도 능력임을 깨닫습니다. 누구나 똑같은 자유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유 역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수도생활을 자유의 여정이라 하는데, 어찌 수도생활뿐이겠습니까. 믿는 이들 모두가 자유의 여정입니다. 그렇다면 살아갈수록 자유로워지는 삶입니까?
이래서 주님 말씀 안에 머물러 주님의 제자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늘 주님의 제자 되어 말씀 안에 살 때 진리를 깨닫게 되고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주님과 관계가 깊어지면서 진리의 깨달음도 깊어지고 이와 더불어 자유의 능력도 신장됩니다. 계속 성장해야 하는 자유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시편 말씀대로 늘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물러 말씀에 젖어 살면서 진리의 말씀을 온 몸과 마음으로 흡수할 때 우리는 진리가 되어가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갑니다. 이래서 렉시오 디비나의 생활화가 그리도 중요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과연 여러분은 죄의 종입니까, 진리의 자유인입니까? 세상에 본의 아니게 죄의 종이 되어 사는 사람들 참 많을 것입니다. 아드님의 말씀 안에 살 때 진리자체이신 아드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나(ego)로부터, 죽음으로부터, 탐욕으로부터 아니 세상 모두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바로 이런 자유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타오르는 불가마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1독서의 세 청년입니다.
타오르는 불가마가 상징하는 바, 때로 죄악으로, 탐욕으로, 유무형의 폭력으로, 온갖 근심, 걱정으로, 불안과 두려움으로 타오르는 세상이요 공동체요 내 마음입니다. 타오르는 불가마 속에서 거니는 세 청년과 더불어 또 한사람을 발견한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의 탄성입니다.
“우리가 묶어서 불속으로 던진 사람은 세 명이 아니더냐?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 결박이 풀렸을 뿐 아니라, 다친 곳 하나 없이 불속을 거닐고 있다. 그리고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 같구나.”
위의 말씀처럼, 진리이신 주님과 함께 살 때 그 누구, 그 무엇도 다치지 못하는 자유인의 삶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세 청년들처럼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기도하기에 세상의 불가마, 공동체의 불가마, 내면의 불가마 속에서 다치지 않는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이어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의 하느님 찬미와 고백이 뒤따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시어, 자기들의 하느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도 섬기거나 절하지 않은 당신의 종들을 구해 주셨다.”
'죄의 종'으로 살 때 세상의 노예이지만 '하느님의 종'으로 살 때 참 자유인입니다. 진리자체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고 자유롭게 해주기에 안팎의 그 어떤 불길도 그를 다치지 못합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자유롭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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