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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반성하는 교회와 반성 없는 교회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14 조회수409 추천수4 반대(0) 신고
            반성하는 교회와 반성 없는 교회
                 [주장] 환경파괴 문제 등에 대한 안일한 태도 버려야






지난 2000년을 돌아본다. 2000년은 가톨릭교회의 ‘대희년’이었다. 예수 강생 2000년, 세상의 죄를 보속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또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2000년을 기념한 해였다. 더불어 새로운 천년기가 시작된 해였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를 중심으로 세계교회에서 장엄하게 펼쳐진 의미 깊은 행사들은 교회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

2000년 대희년의 ‘용서 청원’에 대한 기억

2000년 대희년의 여러 가지 역사적인 사건들 가운데서도 세계인들에게 가장 깊은 감동을 주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교황의 ‘용서 청원’이었다. 교황은 사순 제1주일인 2000년 3월 12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참회미사’를 거행했다. 하느님과 인류 앞에 과거 2000년 동안의 교회 역사 안에서 교회의 구성원들이 저지른 여러 가지 과오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던 것이다.

교황은 교회 분열, 중세 종교재판, 십자군 원정, 유대인과 타종교인들에 대한 박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원주민들에 대한 폭력,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에 대한 파문, 2차 대전 중 나치에 대한 묵인 등 구체적인 사항들에 대해 용서를 청했는데, 교황이 ‘용서의 날’을 정하고 공개적으로 교회의 과거 잘못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것은 가톨릭교회 2000년 역사상 처음 행해진 일로 새 천년을 여는 가장 획기적이고도 겸허한 자세로 평가되었다.

가톨릭교회는 역사적 과오들에 대한 2000년 대희년의 참회를 바탕으로, 다음해인 2001년 5월 4일 가톨릭 교황으로서는 1291년 만에 처음으로 그리스 땅을 밟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과거 가톨릭 신자들이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공식 사죄를 했고, 6일에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시리아의 이슬람 사원을 방문해 종교 간의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고 평화를 건설하자고 호소했다.

나는 특히 교황이 그리스정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크리스토돌로스 대주교를 만난 자리에서 13세기 십자군 전쟁 당시 가톨릭 신자들이 정교회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을 약탈한 사건에 대해 용서를 청하며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에 대해서도 "제 탓이오"를 고백하는 장면에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바로 2000년 대희년의 그런 스스로의 참회가 있었기에 2001년의 그런 사죄와 화해를 위한 교황의 순방이 이루어질 수 있었고, 평화를 위한 역사적인 진보의 발걸음을 옮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관련 글 : 반성과 참회가 없는 나라(2001년 7월)
                 병원노조에 대한 가톨릭의 태도를 보며(2002년 10월)
 
한국교회 대희년 ‘용서 청원’에 대한 기억

이처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용서 청원’은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왔고, 교회 쇄신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2000년 대희년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용서 청원’의 바람은 한국교회에도 불어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2000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에 각 교구 주교좌 성당에서 ‘참회미사’를 거행하면서 ‘쇄신과 화해’라는 이름의 공식사과문을 발표했다. 일곱 가지로 정리된 교회의 과거 잘못들을 고백하고 하느님과 국민 앞에 용서를 청했던 것이다.

서술 형태로 되어 있는 그 일곱 가지 과오들을 좀 더 간단한 말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세계정세에 어둡던 박해 시대, 외세에 힘입어 신앙의 자유를 얻고 교회를 지키고자 한 점. 서구 문화 유입 과정의 문화적 갈등 속에서 외국의 부당한 압력에 편승한 점.

2. 일제의 식민 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 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제재하기도 한 점.

3. 분단 상황의 극복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홀히 한 점.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방관한 점.

  4. 지역과 계층,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점. 장애인과 외국인 근로자 등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인권과 복지를 증진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점.

5. 집단 이기주의, 도덕적 해이, 부정부패 등이 팽배한 사회 풍조 속에서 올바른 가치관과 사회공동선을 세우는 일에 미흡했던 점. 특히 청소년들을 바르게 계도하지 못한 점.

6.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45)고 하신 예수님의 모범을 그대로 따르지 못한 때가 많았던 점. 성직자들도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귀감이 되지 못하고 권위주의에 빠지거나 외적 성장에 지나친 관심을 두는 등 세상 풍조를 따르는 때가 많았던 점.

  7. 다종교 사회 안에서 다른 종교가 지닌 정신문화적 가치와 사회 윤리적 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점.

‘용서 청원’에서 빠진 환경문제에 대한 예언자적 통찰

일곱 가지 과오 고백이 서술 형태로 되어 있음에도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이며 형식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나는 당시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보았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안겨준 충격적 감동에 이어지는 한국 교회의 ‘쾌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때로부터 11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2000년 대희년을 회억하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대희년을 장식한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과오 인정과 용서 청원은 역사성과 함께 중대한 기록의 가치를 지니는 만큼 우리는 시시때때로 그것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과오 인정과 용서 청원에 힘입어 과연 얼마만큼 교회 쇄신이 이루어지고 ‘화해’의 미덕을 쌓아가고 있는지, 또 어떤 점이 어느 정도의 현재진행형에 속하는지 점검해 보는 것은 2000년 대희년의 과업들에 진정성을 불어넣는 미래지향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인정한 일곱 가지 과오들을 돌아보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생태환경 보존에 대한 통찰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자행된 심각한 환경훼손과 자연유린의 실상들을 놓고 보면 당연히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점에 대해 교회가 예언자적 인식을 갖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뼈아픈 일이다.    

2000년 대희년의 과오 고백과 용서 청원에 환경문제에 대한 통찰이 빠질 정도로 교회의 안일한 태도와 무책임성이 노정되었기에 오늘날 4대강 파괴문제 앞에서도 심각한 인식을 갖지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2000년의 그 중대한 맹점과 공백이 오늘의 현상을 가져왔다고 보는 것이다.  

비록 생태환경 보존에 대한 통찰은 빠졌더라도, 교회가 인정한 일곱 가지 과오들을 면밀히 살피면 간접적으로나마 오늘의 환경문제와 연결되는 부분들이 있다. 인식의 확대와 적극적인 자기반성의 맥락을 대입하면 능히 환경문제를 포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천착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훗날 ‘용서 청원’ 대상이 될 과오를 오늘 만들지 말아야…

하지만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날 처참한 환경훼손, 하느님 창조질서의 극심한 유린 현상을 보면서도 교회가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 시절의 권력자들과 ‘환경파괴론자’들을 위무하고 나서는 것은 ‘목자의 지팡이’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우리는 2000년 대희년을 상기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과오 인정과 용서 청원이 한 시기의 허례허식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 일곱 가지 과오들 안에 환경문제에 대한 예언자적 통찰이 빠졌음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더 나아가 환경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로 11년 전의 그 맹점과 공백을 보완해야 한다.

과오 인정과 용서 청원은 일회적인 것일 수 없다. 자기반성은 명확해야 하며 끊임없는 쇄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세상과의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 교회는 훗날에 가서 과거의 과오를 다시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는 일이 없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오늘 극심한 환경파괴 문제와 물신주의 앞에 직면해 있는 교회가 계속 안일한 자세를 고수한다면 훗날 방관의 과오를 인정하고 하느님과 국민 앞에 용서를 청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은 너무도 명약관화한 일이다. 목자의 지팡이가 도리어 양들을 해치는 이리들을 고무하는 현상은 실로 불행한 일이다.

훗날의 과오 인정과 후회는 버스가 지나고 난 뒤에 손을 흔드는 형국이기 쉽다. 그리고 밑 빠진 독과 엎질러진 물은 당사자들이 세상을 떠난 뒤 아무 죄 없는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유산’으로 남겨질 공산이 크다. (오늘 용서청원 대상이 된 과거 과오들이 만들어질 당시의 당사자들이 훗날의 상황과 수치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것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오늘 한국 교회에 참으로 시급하고도 중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가톨릭뉴스/지금여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11.04.14 11:12 ㅣ최종 업데이트 11.04.14 11:12    지요하 (sim-o)
태그/ 가톨릭교회, 환경 파괴, 용서 청원, 2000 대희년, 요한바오로 2세
출처 : 반성하는 교회와 반성 없는 교회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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