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5일 사순 제5주간 금요일
If I do not perform my Father's works, do not believe me;
but if I perform them, even if you do not believe me,
believe the works, so that you may realize and understand
that the Father is in me and I am in the Father."
(Jn.10.37-38)
제1독서 예레미야 20,10-13
복음 요한 20,31-42
얼마 전에 아끼던 술잔 하나를 실수로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선물로 받은 것으로,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것은 물론이고 선물 주신 분과의 추억이 깃들어 했던 술잔이었지요. 저의 실수로 깨트리는 순간 너무 속상해서 이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하필이면 이 자리에 술잔이 있어서 깨트리게 만든 거야?’
술잔이 깨짐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상처를 준 것은 산산 조각난 술잔일까요?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깨진 술잔이 내게 상처를 입힌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보다는 내 자신을 술잔과 동일시하여 깨져서는 안 된다고 집착했기 때문에 상처를 입은 것이지요. 이러한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잃어버렸습니다. 기분이 좋을까요?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지요. 너무나도 속상할 것입니다. 그 돈이 또 적은 액수가 아니라면 더더욱 큰 상처를 입었겠지요. 그렇다면 돈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돈의 표상, 즉 돈은 꼭 필요하며 돈 없이 살 수 없다는 마음속의 집착 때문에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내가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고 종종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정작 상처를 입힌 주범은 바로 ‘나’였습니다. 내 안에서 집착하고 있는 그 마음이 내게 상처를 가져다 준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대며 책임전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돌을 집어 던지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스스로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지요.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들이 이렇게 하는 행동을 스스로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예수님 때문에 상처를 받은 것일까요?
단지 자신이 생각했던 하느님과 다르게 이야기하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생각에 대해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사실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자신들이 이제까지 가졌던 가치 판단이 흔들리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라는 이유를 들어 돌을 집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게 상처를 입혔던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정말로 내게 상처를 입힌 것일까요? 그보다는 나의 좁은 마음이, 나의 욕심 가득한 마음이, 나의 쓸데없는 집착이 정작 내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부족하고 나약한 저희인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힘센 용사처럼 지켜주신다고 예레미야 예언자는 제1독서를 통해 우리들에게 전해줍니다. 이러한 사랑 가득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이제는 ‘다른 무엇 때문’이라는 책임전가의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한 말을 많이 할수록 사랑이신 주님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재능은 사람들 머릿속에 기억되지만, 당신의 배려와 인간적인 여백은 사람들 가슴속에 기억됩니다. 가슴으로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 모두 당신 편입니다(이철환).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아 감사한 세상
어제는 수원교구 인덕원 성당에서 사순 특강을 했습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인천교구에 위치하고 있는 성당이 아니기에 우선 지도를 살펴보았습니다. 거리가 꽤 됩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특강을 다녀온 성당과 그리 차이가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일찍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교통체증으로 인해 지난 번 사순 특강을 가는데 약속 시간을 못 맞출 뻔했거든요. 즉, 8시부터 강의인데, 5시 30분에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7시 50분에 간신히 도착했지요.
그 성당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에 저는 5시에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참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쎄 5시 40분에 도착했거든요. ‘조금 더 늦게 출발할 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된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는 시간이 없어서 저녁식사도 하지 못하고 강의를 하느라 너무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많아서 맛있는 식사를 오랫동안 천천히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여유 있게 마시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지요.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신나는 세상이 아닐까요? 만약 내 생각대로만 돌아가는 세상이면 어떨까요? 사는 재미가 없을 겁니다.
오늘도 내 뜻과는 다르게 돌아갈 세상. 그래서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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