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4월 16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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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4-16 | 조회수627 | 추천수14 | 반대(0) 신고 |
4월 16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요한 11장 45-56절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더 큰 가치의 획득을 위해>
우리에게 언젠가 다가올 죽음이란 것, 난 데 없이 다가오는 고통이란 것이 예고 없이 다가온다는 것,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예고된 수난을 묵상하다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이 일 년 뒤, 육 개월 뒤, 3개월 뒤, 사흘 뒤...이렇게 하루하루 다가와 보십시오.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이 되겠는지, 얼마나 좌불안석, 안절부절, 전전긍긍하겠는지.
그러나 예수님께는 정말 다가오지 말았으면 하는 순간, 아버지께서 정하신 끔찍한 순간이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이 다가옴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이 예수님은 공공연한 표적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과 표징을 바라본 몇몇 사람이 대사제에게 일렀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자질한 것입니다. 당혹스러웠던 대사제는 임시 의회를 소집하여 대책 마련에 고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일으키셨던 놀라운 기적과 표징 앞에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는데,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크게 4부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징과 베풀어주신 은총을 통해 예수님을 메시아, 주님으로 고백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주류에 끼지 못한 소외된 사람들이었고,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사랑들이었습니다.
그런 반면 의회에 참석했던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을 한번 보십시오. 그들의 걱정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위축될 자신들의 입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오랜 습관에 따라 정치적 득실만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 추종자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 세가 커진 민중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폭동을 일으키게 되고, 로마의 강경한 진압은 불을 보듯이 당연한 것이며, 이를 통해 쥐꼬리만큼이나마 확보하고 있던 사제들의 권위가 실추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걱정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해의 대사제였던 가야파는 아주 특별한 발언을 합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의 앞날에 대해 정확한 예언을 하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고 가느냐, 무죄를 선고하느냐 보다도 유다 전체를 위해 예수님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편 유다인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그들은 철저하게도 방관자로서 ‘예수님 사태’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대단한 호기심거리일 뿐입니다. 마치 내기라도 걸 태도입니다.
인류 최대의 선물이자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참으로 야박하고 대하는 인간들이 모습이 표독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감사와 보답과 찬미는커녕 무시하고, 시험하고, 놀려대는 사람들입니다. 극진히 정성껏 모시기는커녕 문전박대하고, 그를 향해 돌을 들고,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가는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그 모든 모욕적인 언사와 배은망덕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길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더 큰 사랑의 실천을 위해, 더 큰 가치의 획득을 위해, 사사로운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는 예수님의 큰 걸음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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