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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허윤석신부님]
작성자이순정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16 조회수410 추천수7 반대(0) 신고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5-56

그때에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4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5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56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그럴싸한 말이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그러나 불쌍한 착각이다.

 

 

 

 

 

아전인수(我田引水)의 해석이다.

 

 

 왜 이런 해석과 걱정이 드는 것일까?

 

 

 

 

교만 때문이다.

 

 

그리고 거짓 두려움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도 믿어야 합니다.

 

로마인들이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으려 해도

 

하느님은 우리를 에집트에서 불러내신 것처럼 구원하실 것이요

 

 이것이 구원의 표징의 목적이 아니겠오?”

 

 

 

 

 

위와 같이 말해야 옳다.

 

 

 

 

 

우리의 우리 삶의 표징을 기억하지 못한다.

 

 

 

 

전례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표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의식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오늘 복음은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와의 만남사건에 비취어 볼때

 

너무나 대조적인 양상을 보인다.

 

 

그 많은 표징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세속적인

 

정치적인 교만에 빠져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는

 

이들을 모습!

 

 

정말 중요한 것은 표징이 아니라

 

표징을 알아보는 신앙의 눈이다.

 

 

성모님에게 표징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셨다.

 

 

천사의 아룀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즉시 응답화는 것이

 

우리 구원사에 가장 큰 표징이 되었다.

 

 

성모님은 그 어떤 표징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표징이 되셨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는 겻이 가장 좋은 표징이다.

 

 

복음에서 예수님의 30년동안의 삶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너무나 평범하셨기 때문이다.

 

 

그 평범함

 

그 일상의 평범함때문에

 

복음서는 공생활만을 적었다.

 

 

이것이 큰 기적이다.

 

 

이 평범함은 성모님의 평범함과 함께 이루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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