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하기 때문에 - 송영진 모세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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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4-18 | 조회수665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성주간 월요일>(2011. 4. 18. 월)(요한 12,1-11)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예감했을 때, 그때의 두려움과 슬픔과 아픔을 겪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죽음이 일 초, 일 초 다가오고 있는데,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 울고만 있을 수도 없고, 그를 위해서라면 대신 죽어도 좋다는 심정, 뭐라도 하고 싶고, 해야만 한다는 심정, 까마득한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심정,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사랑이 너무 슬프고, 아프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주간 월요일의 복음 말씀에서 마리아의 그런 사랑을 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한 행동은 ‘사랑’ 말고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분의 죽음을 예감한 마리아는 자기가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사랑 표현을 자기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행동은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하신 것도 아니고, 사실 돌발 행동이었습니다. 또 당시의 관습이나 예절에도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보통 신학적으로는(성서학적으로는) 마리아의 행동은 예수님의 장례식을 미리 거행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말씀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그러나 만일에 마리아에게 사랑이 없었다면, 그 행동은 불경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분의 장례식을 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행동을 막지 않으신 것은 그 사랑을 보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 사랑이 없어도 얼마든지 품위 있고 성대하게 장례식을 거행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어도 슬퍼할 수 있고, 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미사 전례를 장엄하고 품위 있게 거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배반자 유다가 장례 위원장을 맡아서 예수님의 장례식을 지휘하게 되었다면? (자신의 배반 사실을 감춘 채로...) 아마도 유다는 최대한 품위 있고 장엄하게 장례식을 거행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속아 넘어갔을 것이고... 성주간 전례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만 생각하고, 전례에만 집착하다가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물론 전례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빠진 전례는 가치가 없습니다. 똑같이 품위 있고 엄숙한 전례라고 해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과,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은 다릅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쪽입니까? - 송영진 모세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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