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속지주의와 공동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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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희경 | 작성일2011-04-20 | 조회수515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공동체안에서 깊은 상처를 받았을 때
자연스레 떠나고 싶은 욕망이 생깁니다. 이꼴저꼴 안보고 싶은 마음...
더우기 한 공동체에 적응 하지 못하고 이웃과의 관계형성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의 상처는 사람을 떠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물에 기름뜨듯 둥둥 떠다니는 느낌 어떻게 <나>라는 사람을 <우리>라는 단어로 개념화 시켜야 하는지...
신앙을 하러와서 목적은 상실되고 이웃의 말한마디 표정하나 행동하나에 민감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럴 때 생각해 봅니다. 왜 속지주의인지... 상처받은 자들에게 굳이 떠나지 말고 그자리를 지키며 그자리에서 상처를 치유할 것을 강조하는지를..
한 울타리안에서 아웅다웅 물고 뜯다가 어찌 서로를 바라보며 치유가 가능하겠는지...
공동체 울타리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듯 합니다. 그것은 회피이며 도피이기에 ...
신앙공동체란 상처를 주고 받았을 때 분노와 아프고 쓰린마음을 용서가 될 때까지 기도해 주며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상처의 근본 원인과 방법을 하느님께 구해야 함을 ...
용서는 결론이고 결론을 내기 위한 과정이 필요한데 무조건 나를 용서라는 인식의 방에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장과정과 태어나서 받은 무의식과 의식속에 존재하는 상처의 컴플렉스를 찾아 나의 미성숙한 꼬마를 먼저 위로해 주는 일입니다.
부모로 인해, 형제로 인해, 주변 사람들로 인해... 무의식과 인식속에 자리잡은 죄의 부끄러움, 컴플렉스... 그로인한 나의 위축된 마음 한자리를 들여다 보는, 나를 직시하는 작업을 통해 나라는 아이..꼬마의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그래..힘들었을거야. 누구라도 힘든 것이지.."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는 내꼬마를 웃게 해야 합니다.
꼬마마음을 풀어 놓고 나를 상처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인간인데... 나의마음이해 타인의 마음이해 하루 이틀 걸리는 것이 아니더군요. 그래도 해야 합니다.
이제 한울타리에 쌈박질 하던 양들은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욕이 나오고 오늘도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꼬라지가 눈에 거슬리는데 한대 두들겨 패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러나 두둘겨 패주고 싶다고 행동으로 옴기고 떠나고 싶다고 울타리를 벗어나면 나의 상처는 그대로 유지가 될것 같습니다.
신앙인의 마음이란 이상태부터 비신앙인과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비신앙인은 기다림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더이상 인연없는 곳으로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속지주의에 속한 신앙인, 즉 천주교 신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상처준 자를 위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 참..힘든 과정입니다. 왜 이토록 사람을 힘들게 하는 교회법을 만들어 놓았을까요 결국 힘든 공동체안에서 버티려면, 하느님안에서 살아 남으려면, 떠나지 않으려면.... 미운놈을 위해 기도까지 해 주어야 한다니..
분한 마음 삭히며 나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를 위한 기도는 빼버립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저 멀리 들어 옵니다.
마음안에서 전쟁을 치루며 울타리 안에서 바둥 거리다 보면.. 나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치유가 되는 과정에서 나를 상처 준 이웃의 상처와 컴플렉스가 눈에 들어 옵니다. ***씨도 나만큼 상처가 많았군요....라고.
뒤통수 한대 갈기고 싶고 두들겨 패주고 싶었던 나의 분노의 욕구가 서서히 사라집니다. 분노가 연민으로 바뀌고 측은지심이 생긴다면 이미 용서는 시작된 것 이라 생각합니다. 예수회 송봉모 신부님께서는 여기까지만 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찾아가서 손내밀고 화해의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용서는 이루어 졌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나는 그를 이해하고 측은지심의 마음이 생겼기에.. 섣부른 화해는 또다른 상처를 가져 온다고 하셨지요.
그렇게 측은지심이 생기면서 나는 이미 성숙해져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것 교회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 그것은 공동체안에서 성장하라는 것 떠나지 말고 너의 자리를 지키라는 것.. 그런 메세지로 다가 옵니다.
상처입은 자는 공동체에 상처를 주고 공동체는 상처의 치유자이다. 강론중에 들은 내용을 묵상하면서 마음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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