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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21 조회수960 추천수1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4월 21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Master, are you going to wash my feet?"
If I, therefore, the master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ought to wash one another's feet.
I have given you a model to follow,
(Jn.13.6,14)
 
제1독서 탈출기 12,1-8.11-14
제2독서 1코린토 11,23-26
복음 요한 13,1-15

오늘부터 드디어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더욱 더 깊이 묵상하는 성삼일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있을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전례 때에는 대영광송을 시작으로 부활 성야 전까지 종소리 그리고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되지요. 또한 미사 이후 감실도 비워지고 제대포도 벗겨지며 십자가도 가려지면서 예수님의 죽음에 더 깊이 동참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사실 본당신부님들은 오늘부터 시작하는 이 성삼일 전례를 가장 힘들어합니다. 준비할 것도 많지만, 전례 상으로도 어려운 부분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특히 어려운 노래를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워하십니다. 저 역시 작년 본당신부로 있을 때, 성삼일 전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맡고 있는 본당이 없기 때문이지요. 즉, 전례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며, 특히 노래에 대한 부담도 없이 관람자의 입장에서 성삼일 전례에 참여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무척 편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3자의 입장에서만 전례에 참여하다보니 다가오는 부활에 대한 설렘이 부족한 것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서 부활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성삼일 전례에 집중하고 기도도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교구청에서 제가 맡은 일에 더 큰 신경을 쓰면서 정작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성삼일 전례에는 소홀하게 됩니다.

편한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절대로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도 편한 것만을 쫓으셨다면 그리고 사람들에게 섬김 받는 것만을 찾았다면, 절대로 십자가 죽음의 주인공이 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편한 것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데 더 주목하셨기에 죽음의 고통을 피하지 않으시지요.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늘 우리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당시 노예들이나 하는 행동, 즉 겉옷을 벗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른 다음 무릎을 굽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가장 낮은 모습을 취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주님을 따르고 믿는다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내가 대접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정작 내 이웃을 대접하는 데에는 너무나도 인색하지 않았을까요? 또한 주님께서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에 반해 우리들은 주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불만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편하고 대접 받으려는 마음에서 자유롭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이 들 때 우리가 떠올려야 할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내 이웃의 발을 씻어 주려는 자세로, 겸손하고 사랑 가득한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진정한 주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고 함께 사랑하는 가운데 자라간다(헨리 나우웬).




부활의 기쁨은?
 
 
어느 수녀님께 받은 부활 선물. 병아리가 귀엽죠?
 
오늘 부활선물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활계란은 물론 위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는 자그마한 부활 조형물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물을 받으면서 ‘내 자신은 얼마나 부활을 준비하고 있었는가?’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특별히 부활계란을 보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몇 년 전, 부활을 맞이해서 부활계란을 바로 근처에 있는 개신교회에 선물로 드렸지요. 그런데 그 선물을 받으신 교회 목사님께서 한 달 뒤, 제가 있는 본당에 닭을 들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신부님께서 주신 계란이 이렇게 부화를 했네요. 그래서 치킨으로 가져왔습니다.”

계란 몇 개 주고서 그 숫자만큼 치킨을 받았으니 얼마나 남는 장사입니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데 주저하지 마시고, 그들과도 부활의 기쁨을 나눠보십시오. 부활의 기쁨은 나 혼자만이 아닌,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Your Beautiful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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