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1년 4월 22일 성주간 금요일 - 송영진 모세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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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4-22 | 조회수706 | 추천수18 | 반대(0) 신고 |
2011년 4월 22일 성주간 금요일
<성금요일>
해마다 성금요일이 되면 생각하는 것인데, 부활절 준비를 하느라고 성금요일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활절 성가 연습을 하기에 바쁜 성가대는 성금요일에도 기쁨에 가득 찬 노래를 부르고 있고, 어떤 이는 부활절 달걀을 준비하느라고 바쁘고, 어떤 이는 부활절 축하카드를 쓰느라고 바쁘고, 기타 등등... 그래서 성금요일에도 성당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 즐거워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직 예수님의 죽음의 시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죽으신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카드가 벌써부터 배달되고 있습니다.)
성금요일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한다고 엄숙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금육재도 지키고 단식재도 지키긴 하지만, 그런 일들은 그냥 다 형식으로 흐르고, 부활절 준비 때문에 성금요일이 묻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성금요일이 지나고 나면 성토요일이 온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부활절 행사를 토요일 하루에 다 준비하기에는 너무 벅차다는 것만 생각하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 사순절 전체 기간을 너무 무겁게 지낼 필요가 없고 성금요일도 마냥 슬퍼하기만 할 날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부활을 너무 당연한 일로만 생각하는 것이나 성금요일을 무슨 통과의례처럼 대충 지나가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부활도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이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때가 성금요일입니다. 그런데 그때 너무나도 놀라운 반전이 이루어졌다는 것, 그것이 부활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성금요일 하루만이라도 당시의 절망적이었던 제자들의 심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잊어버리면 성금요일뿐만 아니라 부활절의 의미마저도 퇴색됩니다.
우리의 인생살이가 이렇게 잘 짜인 전례처럼 착착 진행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목요일 다음에는 성금요일이고, 하루 지나면 성토요일이고 부활절이고...
지금 회사가 부도나서 쫄딱 망했지만, 조금 지나면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고 더 큰 회사로 성장할 것이고... 지금은 시험에 떨어져서 낙방생이 되어 있지만 조금 더 지나면 더 좋은 시험에 당당하게 합격하게 될 것이고... 지금은 병에 걸려서 침대에 누워 있지만 조금 지나면 누구보다 더 건강한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고...
아주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의 시련과 고통을 태연하게 참고 견딜 수만 있다면 얼마나 인생살이가 편하겠습니까? 그게 바로 교리서에서 말하는 믿음이고 희망입니다. 그러나 인생살이가 그렇게 잘 짜인 전례처럼(미리 준비된 프로그램처럼) 착착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성금요일이지만 내일은 부활절이다, 그러니 믿음을 잃지 말고 희망을 가져라, 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일입니까?
지금 절망에 빠져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다시 일어날 희망 없이 누워 있는 병자에게,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할 막다른 길에 몰려 있는 사람에게 가서 오늘은 성금요일이고 내일은 부활절이다, 그러니 참아라, 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그게 자기 자신의 일이 되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하려는 말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무디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부활절만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고통은 너무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성금요일이 지나면 성토요일이 온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자기 인생에서의 고통과 시련도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혹시 다른 사람의 고통은 성금요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의 고통은 종말의 지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것들을 반성해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아주 싫어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자꾸 바리사이들을 닮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인위적으로 시기를 정해놓고 형식적으로 회개를 하는 것 같은 모습도 그렇고, 금요일에 금육재는 잘 지키지만 그 나머지 요일에는 절제도 극기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도 그렇고, 일 년 주기로 반복되는 전례 때문에 예수님의 생애를 너무 당연한, 정해진 시나리오나 프로그램처럼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그러다가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그냥 형식으로 흘러버리는 것은 아닐까...
성금요일이 없었다면 부활절도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죽으셨기 때문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지 않으셨다면 부활도 없었습니다. 성금요일을 무시하고 소홀히 하면서 성토요일로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누구 때문에 죽으셨느냐? 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을 제대로 묵상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도 제대로 묵상할 수 없습니다.
성금요일은 성금요일답게 지내야 합니다.
-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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