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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24일 야곱의 우물- 요한20,1-9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24 조회수395 추천수6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우리 마음 안에 주님 부활에 대한 신앙을 불어넣으소서.

세밀한 독서 (Lectio)
요한의 부활 이야기는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1절), 예수님의 ‘빈 무덤’ 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요한이 부활절을 ‘세 번째 날’ 이 아니라 ‘주간 첫날’ 로 지칭하는 것은 부활절을 새로운 계약의 날로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어두울 때에” (1절)라는 시간 배경은 독자로 하여금 요한복음 전체에 걸쳐서 나오는 ‘밤과 어둠’ 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1, 5; 3, 2; 6, 17; 8, 12; 9, 4; 11, 10; 12, 35. 46; 13, 30; 19, 39 참조) 이 ‘어둠’ 은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후 그분의 본성과 운명에 대해 미궁에 빠진 제자들의 혼란 상태를 상징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등장합니다. 그녀는 예수님 생애 마지막 시간의 절정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사랑받는 제자와 나란히 십자가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19, 25) 여기서 ‘서 있다’ 라는 말은 단순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유혹의 순간에 도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 현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20장 1절 이하의 이야기는 이 장면과 연결됩니다. 십자가 밑에 있던 그녀는 혼자서 무덤,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이 묻힌 곳으로 갑니다. 이 걸음은 예수님을 향한 것이고 또한 신앙을 향한 걸음이기도 합니다. 요한의 본문에서 ‘예수님에게 온다는 것’ 은 그분과 관계를 맺고 그분을 믿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2절은 첫 번째 단락 (2 – 9절) 의 입문에 해당하는데, 무덤에서 일어난 일과 그녀가 사도들한테 가게 된 이유를 보여줍니다. 어둠 속에서 돌이 치워진 것을 보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 한테 달려갑니다. 요한복음의 문맥으로 봐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죽음 후 서로 떨어져 있었던 두 인물을 각자 방문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안다는 것을 이미 거부했고 (18, 15 – 18. 25 – 27), 사랑받는 제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19, 26 – 27. 35)
 
이름이 없지만 ‘사랑하다’ 라는 동사는 이 제자가 예수님과 맺고 있던 특별한 관계를 설명해 줍니다. (19, 25 – 27; 20, 2 – 10; 21, 1 – 15 참조) 나아가 사랑받는 제자와 베드로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나오는 복음서 여러 대목을 보면 요한복음서 저자가 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독자들이 특별하게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13, 6 – 10. 23 – 25. 36 – 38; 18, 15 – 16; 19, 26 – 27. 35; 20, 2 – 10; 21, 7 – 24 참조)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가 먼저 무덤에 도착했지만 베드로한테 무덤에 먼저 들어가도록 허락합니다. 이 동작은 베드로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면서 또한 사랑받는 제자가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배운, 자신을 잊는 사랑에 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계시해 줍니다. (13, 23)
 
저자는 사랑받는 제자의 체험을 통해 초대교회 공동체에 부활신앙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소개합니다. (20, 3 – 9) 8절에 사용된 ‘믿는다’ 라는 동사는 사랑받는 제자의 실질적인 신앙을 가리키는데 ‘본다’ 라는 다른 동사와 관련됩니다. 요한한테 ‘본다’ 는 것은 단지 자신의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서 오는 빛으로 보는 것입니다. ‘본다는 것’ 과 ‘믿는다는 것’ 은 동의어입니다. (6, 40. 62; 12, 44 – 45 참조) 보는 것과 믿는 것은 모두 필요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더욱 깊게 보는 것, 곧 사실을 보고 신앙의 실제와 동일시하는 것, 더 높은 빛에 비추어 그 증언들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것은 체험 또는 체험에 대한 추구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믿음은 활동적인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에 우리는 믿음을 지탱해 주는 방식으로 우리의 체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지 않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에게 생명과 희망을 주기 위해 성경 말씀에 기록된 대로 다시 살아나셔야 합니다. (9절)

묵상 (Meditatio)
오늘 복음은 부활 후 제자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랑에 바탕을 둔 새로운 공동체를 낳았습니다. 그분의 부활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항상 존재하던 그 친교, 그 사랑의 관계, 새로운 계약의 내면화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 어둔 아침에 인류를 대표하는 세 사람이 무덤에 서둘러 달려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면 두 제자는 각자 떨어져서 어둠 속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기도 (Oratio)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 1)

 

임숙희(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성서영성 신학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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