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4일 예수 부활 대축일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Mary of Magdala came to the tomb early in the morning,
while it was still dark,
and saw the stone removed from the tomb.
(Jn.20.1)
알렐루야!!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4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로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기쁘십니까? 사실 재의 수요일을 맞이하면서 시작된 사순시기가 얼른 지나갔으면 했지요. 왜냐하면 사순시기 하면 왠지 어두운 기분이고, 속죄와 보속의 시기라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오늘 부활을 맞이하면서 큰 기쁨을 얻으셨습니까? 혹시 그냥 매년 맞이하는 하나의 행사 정도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요?
어렵고 힘든 과정을 뚫고서 자신이 얻고자 했던 목표에 달성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클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시간이 흘러 저절로 얻은 목표 달성이라면, 또한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목표에 달성했을 때의 기쁨은 반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의 부활 소식에 대해서도 더 크게 기뻐하는 사람도 이러한 사람이 아닐까요? 2천 년 전 예수님의 부활에 가장 크게 기뻐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만들었던 죄인들이었을까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그들은 자기들의 적이 사라졌다며 무척이나 기뻐했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서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 부활 소식에 진실로 기뻐했던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큰 아픔을 체험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성모님, 제자들,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던 사람들……. 그들이 예수님 부활 소식에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그러면서 행복과 기쁨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혼자 외롭게 살고 계시던 할머니에게 방학을 맞이해서 손자들이 놀러온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해서, 그날로 성당을 찾아가 감사예물로 5만원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손자들이 놀러왔고, 이 손자들과 여름방학 내내 함께 사셨습니다. 그런데 함께 사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입니다. 드디어 방학이 끝나고 손자들이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손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곧바로 성당을 찾아가 감사예물로 10만원 봉헌하셨다고 합니다. 손자들 돌보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으면,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감사예물을 곱빼기로 내셨을까요? 사실 할머니께서는 손자와 함께 방학을 지낸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생각뿐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함께 살고 보니, 오히려 혼자 사는 것이 더 감사할 일이었다는 것이지요.
지금 어렵고 힘들다면 그 자체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더 큰 기쁨과 행복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통해 이 점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 어렵고 힘들다고 주저앉지 말라고, 정 주저앉을 것 같으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다시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된 당신을 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만을 얻으려 하지 말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합시다.
성실한 사람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말이 많은 이다. 말보다는 성실로 자신을 무장하고 대변하라.(F.제나인)
선물
선물 받은 유화
부활이라고 선물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선물 중에서 인상 깊은 것은 하나의 그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마리아의 모습을 담은 유화이지요. 보면 볼수록 감동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서, 내가 이러한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싶었습니다. 사실 참 많은 선물을 받고 있지만, 솔직히 제 자신은 그러한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얻게 된 존경과 사랑인데, 종종 내가 잘 나서 그런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지곤 합니다.
가장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 그리고 이러한 낮은 자리를 통해서만이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음을 보여주셨지요. 그런데 저는 그러한 낮은 모습보다는 가장 높고 영광스러운 자리만을 탐내는 어리석은 모습만을 간직하며 이 땅을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하며.... 다시금 겸손한 삶을 지향하며,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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