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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형제들이 가야할 갈릴래아는 어디인가?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26 조회수527 추천수4 반대(0) 신고
 
 
 
 
 

형제들이 가야할 갈릴래아는 어디인가? - 윤경재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마태28,8-10)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르신 첫 말씀은 “평안하냐?”와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입니다.

평안과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의례적인 인사말이 아닙니다. 그 말을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신원을 증명하는 단어입니다. 이 두 단어는 평소에 스승 예수께서 어떤 의미를 갖고 즐겨 사용했던 것으로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그분이 누구라는 사실을 금세 깨닫게 됩니다. 마치 군대에서 암구호와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지금 여인들 앞에 서 계신 분이 다름 아닌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들과 함께 지냈던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의심하려야 할 수 없는 스승 예수께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갈릴래아로 가라는 전언입니다. 갈릴래아는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첫 만남의 장소이며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장소입니다. 갈릴래아는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삶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장소입니다.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기쁨과 고난을 함께 했던 장소입니다. 예수께서는 삼년 가량 그곳에서 지내며 여러 가지 기적을 베푸셨으며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말씀들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생활하며 제자들은 미래에 대한 벅찬 희망 속에서 나름대로 어떤 계획을 꾀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제자 중 몇몇은 미래에 주어질 자리를 다투기까지 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고 꿈에 부풀었던 제자들은 스승님의 생각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다 이스카리옷으로 그의 행동은 자신의 뜻을 앞세우고 주님의 생각을 오해해서 비롯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하느님 나라를 앞당길 것으로 여기고 무모하게 일을 벌였지만, 막상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나머지 제자들도 알게 모르게 유다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은 제자들은 깊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스승님이 안 계신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아무리 스승님께서 미리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마태26,32)라고 언질을 주셨지만, 막상 스승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얼른 정신을 추스르고 갈릴래아로 떠나길 원하셨습니다. 

예루살렘과 달리 이방인의 땅이라 이르던 갈릴래아는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의 씨를 뿌려 놓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2,24) 하신 말씀대로 스스로 썩는 밀알이 되셨습니다. 언젠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9,38) 또 “씨 뿌리는 이가 다르고 수확하는 이가 다르다.”(요한4,37)

그렇습니다. 갈릴래아는 예수께서 이른 아침에 나가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부르신 곳이었습니다. 맨 나중에 온 일꾼부터 품삯을 똑같이 나누어 주시되 맨 먼저 온 이들에게는 삯을 나누어 주시면서 ‘친구여’(마태20,13)라는 영광스런 호칭까지 불러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삯보다는 호칭이 더 고귀한 보수였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삯은 오히려 보너스이고 친구라는 호칭이 본봉이었습니다. 보너스에 안주하기보다 일하는 즐거움이 더 귀하다는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준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종이 아니라 주님의 친구로서 갈릴래아로 떠나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더는 얄팍한 보너스에 일희일비할 처지가 아닙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뼈에 사무치도록 느꼈고 깊이 후회하였습니다. 

이제는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요한4,35)라는 말씀대로 열심히 추수해야 할뿐만이 아니라 자신들도 썩는 밀알이 되어 씨 뿌리는 농사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나아가 또 다른 이가 추수할 수 있도록 자신들은 새롭게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야 한다는 사실을 예루살렘에서 스승님께 배웠습니다. 

이제는 일상의 땅, 갈릴래아로 돌아가 자신들이 깨우친 바를 실천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스승의 유지를 받드는 길이었습니다. 

갈릴래아를 떠나 올 때와 그곳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제자들의 겉모습은 같은 사람들이었지만, 그 속은 전혀 달라졌습니다. 각자의 마음속에 스승 예수님의 얼을 깊이 새기고 돌아가는 그들에게 스승을 잃은 슬픔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가까이 계시는 예수님의 손길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전과 같되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들도 예수님과 함께 부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갈릴래아로 떠나가라고 하신 말씀의 참 뜻이 어디에 있는지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한 사람의 부활이 이제는 보편적 사건이 되었음을 옛 동료들과 고향 친구들에게 증언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적어도 갈릴래아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그 미세하고도 벅찬 변화를 금세 알아채고 환영해 맞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나를 잃으면 둘을 얻는다는 하느님의 이상한 계산법을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자신이 가야할 갈릴래아를 갖고 있습니다. 그곳은 추수와 함께 씨를 뿌려야 할 장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뵐 수 있는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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