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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의욕과 상실! [허윤석신부님]
작성자이순정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26 조회수606 추천수13 반대(0) 신고

<제가 주님을 뵈었고, 주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18
그때에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

 

 막달레나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러 무덤에 간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신이 잘 안장되어 있는지 궁금해서 갔습니다.

 

 

그녀는 슬펐습니다.

 

 

그런데 그 슬픔은 더 큰 상실감으로 바뀝니다.

 

 

시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활하시리라는 평소의 예언 말씀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누가 시신을 모셔갔을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리라는 의욕보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그 빈동굴은 상실감이 그 바탕이었습니다.

 

 

첫번째로

 

마리아는

 

천사를 만나 "왜 우느냐?"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두분째로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두질문은 같아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내가 찾는 분이 누구냐에 따라 찾는 내가 달라 져야 합니다.

 

 

막달레나는 죽은 이들 가운데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즉 시신으로서 예수님을 찾았기에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녀의 이름을 살아계셔서 함께 지낼때의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십니다.

 

 

바로 살아있는 자의 목소리!

 

삶을 고유했던 자의 목소리입니다.

 

 

그제사 마리아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뵙기까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역동성이 드러납니다.

 

 

비록 처음부터 그녀는

 

 예수님을 알아뵙지 못하지만

 

오늘의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뵙는가에 대한 길을 열어줍니다.

 

 

첫째

.

 사랑하는 이를 향한 울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하고 그 사람을 잃었을때

 

우리는 상실감을 갖습니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예수님을 빼앗기면서도

 

그 상실감을 갖기는 커녕 오히려 무감각합니다.

 

 

재물이

 

 우리의 주님을 꺼내 가버리고

 

 바쁜생활이 우리의 주님을 꺼내 가버립니다.

 

 

무엇이 과연 중요한지 모릅니다.

 

 

가족들의 생일을 챙기면서

 

 과연 이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함께 기도하기 보다 나들이며 음식나누기에 바뻐 본질을 잊어버립니다.

 

 

사제가 수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수함과 단순함을 잃어버리기기 쉽습니다.

 

 

 이 모든 것이 누가 우리 자신의 주님을 꺼내 간것입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어떻게 다시 찾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상실감을 느끼면서 찾아 헤메는 마리아 앞에

 

 바로 예수님이 서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정원지기로 착각합니다.

 

 

 예수님을 다른 곳으로 모신 사람으로 착각합니다.

 

 

저는 이번 부활을 맞아 하느님께 선물을 받았습니다.

 

 

신자들을 벗으로 생각하게 된것입니다.

 

 

예전에는

 

봉사해야 할 대상으로

 

 선교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신자들을

 

마리아가 예수님을 정원지기로  잘못 안것 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신자들은

 

저에게 스승이고 배울점이 너무 많은 벗입니다.

 

 

마리아는

 

 이제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

 

더욱 성장하여 다른 제자들에게 달려갑니다.

 

 

막달레나! 그녀의 이름처럼 막 달립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누가 주님을 만나 뵙고 싶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주님을 오늘 뵙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그마음의 바탕은 바로

 

의욕이 아닌 상실감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마음은

 

 마리아의 무덤가에 서서 우는 그 착한 마음입니다.

 

 

 

상실감!

 

 

누가

 

나의 주님을

 

찾아갔는지 모르는 것을 인식하고 슬퍼하는

 

그 눈물을 그 마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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