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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험한 영적 상태 [나의 뜻 / 하느님의 뜻 분별]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26 조회수593 추천수5 반대(0) 신고
 
근래 이상한 말을 듣는다.
자신이 하는 일은 하느님의 뜻이라며
타인의 충실한 봉사생활(사랑)에 대해 비판을 계속 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 처음엔 다음과 같이 이렇게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이 생겨난다.
그 자신이 하는 일은 늘상 하느님의 뜻이라며
사람들은 겸손해야 한다면서 교만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를 대하면 그의 말 속에서 그 자신만의 세상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어쩌면 그가 가장 교만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른 이들에게 아주 강력하게 겸손을 내세우면서
그 자신의 주장에 반대되는 말을 하면 바로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인다.
겸손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자신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 때문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남들은 오로지 겸손하게 자기 자신의 메세지를 잘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자신에게는 <나, 자기>가 없고, 오직 하느님만 계신다며 많은 말을 한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는 다른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
이제 막 세례받은 신자들은 그의 말에 끌려갈 수 있겠지만
기실 나로서는 그의 주장에 공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이상해 보이기까지 한다.
자기 일을 철두철미하게 하느님의 뜻이라고 강조하면서
자기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성경말씀에 가깝게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자기 뜻을 계속 주장한다.
처음으로 천주교에 발을 들여놓는 신자들은 그의 말에 넘어가기가 쉽다.
자기의 일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강조하면서
오로지 자기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말을 듣고보면 언뜻 개신교의 이단집단체가 생각들기도 한다.
구원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자기의 말 안에 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나, 자기>가 없는게 아니라
반대로 아주 자기 자신이 강하다.
그러나 그 자신(자기 일)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굳게 다져있다.
이런 부류의 현상을 보면서 신흥이단 집단체가 발생하는 것이다 생각든다.
그가(자신이) 하느님의 뜻이고, 그의(자신의) 말 안에 구원이 있고,
그는(자신은) 전적으로 겸손한 것이다.
타인이 반대하면 교만으로 치부하고 타인의 말은 이론에 불과할 뿐, 살아있지 못하다고 단정 짓는다.
초신자들은 그 자신이 자기를 우상화하는 일에 빠져드는 것을 모를 것이다.
그래서 초신자들은 자기 집 재산을 모두 처분해서 그에게 바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항상 반대 주장에 대해서는 교만, 이론으로 폄훼하고
자기 자신은 하느님의 뜻, 자기 말에 구원이 있으며
타인(초신자들)들로 하여금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게 한다.
그는 새로운 공동체를 주장한다.
자신의 뜻이 하느님의 뜻이고, 자기 말 안에 구원이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타인의 재산을 취하여 공동체를 세우고 그 자신은 교주가 될런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나>가 있고, 나라는 존재는 피조물이며
<하느님>이 계시며, 하느님께서는 창조주이시다.
나와 하느님의 구별이 분명할 때, (이를 "타자성"이라고 한다)
<나>라는 사람은 <하느님>께로부터 구원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나, 자기는 없어야 한다>는 말은 그의 전체적인 말에 따르면
자기 말을 따르고 남의 말은 쓰레기와도 같다는 암시를 남기게 할 뿐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자기 자신을 철두철미하게 강조하는 그에게서
오히려 <나, 자기만의 세상>을 두드러지게 볼 수 있게 된다.
남들은 오직 그 사람 자신(자기, 나)에게 머리숙여 겸손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자기 일)이 하느님의 뜻이라며
자신을 우상화 시키는 것에서 영적 위험성을 본다.
아니 어쩌면 영적 위험성의 내재 보다는 다른 숨은 의도가 있는지도 모른다 하겠다.
그 자신의 새로운 공동체는 바로 자기 세상인 것이다.
초신자들은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서
그를 교주로 내세워 그에게 이끌려 갈 수도 있다. 
타인의 충실한 봉사생활을 비웃고 비판하면서
그 자신의 이상한 주장을 다른 상대들(복수)에게 주입하는 일을 본다.
 
하느님의 뜻을 내세우면서
남들에게 판단하지 못하도록 겸손을 강조하고
자기만의 구원 세상을 꿈꾸는 일들에 대해
우리는 항상 교회의 가르침에 더욱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새삼 깨우친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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