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께서는 피요, 우리는 동맥 (루가 24,13-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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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1-04-27 | 조회수354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2011년 4월 27일 부활 팔일 축제 내 수요일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그 두 제자는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말씀의 초대 베드로가 가진 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능력뿐이다. 베드로는 태생적으로 불구였던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 준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사도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부여하셨다(제1독서). 제자 두 명이 예수님을 잃고 크게 실망하여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고 있다. 엠마오까지는 두세 시간가량 걸릴 것으로 보이는데 낯선 사람이 나타나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간다. 그들이 엠마오에 도착하여 빵을 나눌 때야 비로소 그 낯선 분께서 부활하신 주님임을 깨닫는다(복음).
* *묵상 * *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루살렘 밖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스승님의 죽음을 보았기에 마음이 심란했던 것입니다. * * * * *
키위’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토종 새’입니다. 덩치는 꿩과 비슷하며 긴 부리를 갖고 있습니다. 키위라는 이름은 ‘원주민’ 말로 수컷의 울음소리를 뜻한다고 합니다. 200년 전만 해도 500만 마리가 넘었는데 지금은 8만여 마리로 줄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 지폐에도 등장했던 키위 새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 * * * * 엠마오는 어디에 있는 마을이며 무엇으로 유명한 곳인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피요, 우리는 동맥
-반영억라파엘신부- 청주교구 사제 연수 중입니다. 총대리 신부님께서는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주님께서는 온몸에 꼭 필요한 피요, 우리는 그 피를 온몸에 제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동맥과 같다고 하시며 피의 흐름을 가로막는 찌거기를 말끔히 씻어 주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야말로 동맥경화가 오면 약물이나 시술을 통해 치료해야 하듯 연수나 피정은 그 역할을 수행합니다. 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도구 되기를 희망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은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무슨 특별한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를 위한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할 뿐입니다. 마음에 있는 얘기는 기회가 되면 할 것이고 지금은 묵묵히 있는 것이 좋습니다. 큰 일을 치루고 난 후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할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무기력한 죽음에서 모든 기대와 희망이 무너졌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참히 돌아가시고 더더욱 그 시신까지 없어졌으니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더 이상 예루살렘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늘 같은 스승이 힘없이 사라졌으니 거기에 있다가는 어떤 불똥이 튀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서둘러 그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사실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은 ‘고난을 겪은 다음에 자기 영광 속에 들어가리라’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었지만 그것을 알기까지는 아직 눈이 뜨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더 큰 실망과 좌절만이 더하였습니다. 실망이 큰 만큼 기쁨이 크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동행하시면서 성경 말씀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일으키고 결정적으로 제자들은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 하자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습니다. 지금 당장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지만 예수님과 함께 살았던 깨우침이 남아있었는가 봅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천사를 대접’(창세18,1-15)하였듯이 나그네를 묵어가라고 붙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마침내 나그네와 함께 식탁에 앉게 되었고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알 것을 알았으니 더 이상 거기 남아계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또한 제자들도 가던 길을 돌아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였고 거기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 뵙게 된 일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결국 주님이 먼저 알려 주셔야 그분을 알 수 있고 우리도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눈이 뜨인다는 가르침을 얻게 됩니다. 또한 나그네를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삶의 절망 한가운데에서도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하였던 제자들처럼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시련과 고통의 어두움 속에서도 주님은 우리와 동행 하십니다. 다만 내 아픔이 커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 뿐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나와 동행하시면서 마음을 열어 주시고 뜨겁게 해주시지만 지금 당장은 눈이 가려져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어둠 속에서도, 절망 가운데에서도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주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 하지 않으십니다. 붙잡기만 하면 언제든지 함께 묵으십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씀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두려워 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예레1,8)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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