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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팔일 축제 - 주님, 저를 부르셨으니....[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27 조회수559 추천수3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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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불편하시지만 우리 옆에 사람들과 같이 인사 나눠보시죠.


안녕하세요~~

영성의 집에 계신 분들도 안녕하십니까?

아~ 지금 영성의 집도 꽉 찼다고 하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들 많이 오셨습니까?

지난달에 제가 없어가지고 눈이 짓물러서.....정말로 그랬어요?

네~~

저도 그랬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런 불편함 때문에 이 성지에 찾아오신 목적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랬죠?

마귀는 여러분이 집을 나설 때부터 쫓아와 어떻게 해서든지 분심 들게 해서

오늘 받을 은혜를 망가뜨리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주 계략을 묘하게 짜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거 이겨내야죠?

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생기는 법이죠.

은총의 빛이 강하면 역시 어두움도 같이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축복이 올 때를 제일 조심해라.’ 그런 성인들의 말이 있어요.

‘은총이 내릴 때가 가장 경계해야 될 때다...’ .

어떤 분들 뭐 예를 들어서 여러 가지 영성적인 세미나, 성령세미나...

이런데 참석해서 은혜 받고 눈물 콧물 흘리고....

대로 천국처럼 살 것 같은데 세미나 받고 나서 막 떨어지죠?


에페소서 4장 1절에 보면 아주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에페소서 4장 1절

발음을 잘못하면 얘를 패는 게 됩니다.

또 발음을 잘못하면 얘를 빼는 게 됩니다.^^

에페소서 4장 1절을 보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으니 그 불러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따라 해보세요.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으니 그 불러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4월 기도찬미의 밤 때 하느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받아 삼키십시오.

아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으니 그 불러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어디에 나온다구요?

에페소서 4장 1절~

여러분들 잊어버리지 않게 하려고 제가 아까 별 얘기를 다 했어요.

얘를 패라는 얘기도 했고 얘를 빼라는 얘기도 하고......

그 뜻은 뭐겠습니까?

내가 주님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제자로 써주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따라갔듯이...오늘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발로 온 것이 아니라

주님이 여러분을 불러주셨기 때문에 이 기도 찬미의 밤에 왔음을 믿습니다.

아멘.

우리는 애초에 하느님과 인연을 맺을 때부터 우리 쪽에서 선택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백 프로 하느님 쪽에서 우리를 부르셨던 겁니다.

불러주셔서 교리를 배웠음을 믿습니다.

아멘.

우리를 불러주셔서 세례를 받게 했던 것 또한 믿습니다.

아멘.

우리를 부르셔서 레지오 단원 봉사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아멘.

사제인 저는 주님이 불러주셔서 사제가 되었음을 또한 믿고 있습니다.

아멘.


내가 하느님을 선택했다고 하는 이 생각은 내가 선택했으니 언제라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다고 하는 이런 교만한 마음과 연결이 됩니다.

부르심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느님을 멀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그 생각은 다른 이들에게 뭐로 나타나야하겠습니까?

겸손으로 나타나야 되고, 온유와 인내와 사랑으로, 구체적인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은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사랑의 갑옷을 입어야 되는데

바로 이러한 갑옷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늘 천국을 향한 말이 나와야합니다.

소위 천국 팔언이 나와야 됩니다.


자, 여러분들... 천국 팔언, 뭐가 있을까요?

이게 무슨 표시예요?

보통 ‘사랑합니다.’ 하는 건 다 알아요.


첫 번째, 감사합니다.

이 천국 팔언의 첫 번째가 ‘감사합니다.’입니다.

오늘 여러분들 입에서 ‘감사합니다.’ 소리 몇 번하셨습니까?

작년 일 년 동안 살면서 여러분의 입에서 ‘감사합니다.’소리를 몇 번이나 하셨습니까?

감사하더라도 데살로니카 전서에 나오는 대로 ‘범사에 감사하라.’ 그랬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감사할 일이 생기면 우리보다 더 감사합니다.

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감사는 좋은 일이 생길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라.’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어쩌다가 감사할 수 있어요.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는 거, 쉽질 않습니다.

아침에 학교나간 아이가 트럭에 치여 중환자실에서 할딱거리며 생사를 넘나들고 있을 때

그 앞에 가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 자리에서 안 뻗게 해줘서....’ 이말 안 나와요.

‘하느님 뭐야? 내가 얼마나 봉사하고 하느님 위해 애를 썼는데 하나밖에 없는 애새끼 이렇게 만들어?’

우리는 그때에도 감사하셔야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 천국 팔언의 첫 번째.


두 번째, ‘미안합니다.’

이 말은 겸손의 덕을 표시합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분명히 내가 잘못한 거 아는데도 자존심 때문에 ‘미안합니다.’ 말이 안 나옵니다.

남편한테 이말을 해야 되고, 아내한테 이말을 해야 되고, 내 부하직원한테도

이말을 해야 되는 걸 알고 있지만  ‘미안합니다.’  말이 안 나옵니다.

‘미안합니다.’ 는 말은 겸손을 지향하는 아주 특별한 말입니다.

‘미안합니다.’ 소리 해야지요.

내가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한테 미안한 건 미안한 겁니다.

아무리 사제라 하더라도 신자들한테 미안할 때는 정직하게 ‘미안합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겸손합니다.


세 번째,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가락을 잘 맞춰야 돼.^^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칭찬으로 들려야 됩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훌륭하다는 소리를 자꾸 들으면 그런 사람으로 변해갈려고 노력하겠죠?

못난 놈 보고 자꾸 ‘못난 놈’ 그러면 그 사람은 정말 못난 사람이 되고  잘난 사람보고도

‘너 못났다.’ 하면 못난 사람이 되요.

그러나 못난 사람보고 ‘너,  훌륭하다. 너, 정말 이런 좋은 장점이 있지 않느냐?’

남편에게도 뭔가 세상살이가 고달퍼 보일 때,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남편한테

‘당신 정말 훌륭한 사람이야.’ 자꾸 격려하면 그 남편은 힘이나요.

‘훌륭합니다.’ 이것도 천국을 여는 천국 팔언 가운데 삼위에 속합니다.


네 번째 천국 팔언은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네, 이것은 바로 관용을 나타냅니다.

관용,  ‘괜찮습니다.’

관용이라고 하는 것은 불의를 보고 눈감아 주는 것이 관용이 아니지요.

성서에서 나오는 관용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섯 번째 팔언은 ‘자~알 하셨습니다.’

‘자~알 하셨습니다.’

요거는 이해를 의미합니다.

이해


여섯 번째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요거는 위로를 의미합니다. ‘위로’


일곱 번째는 ‘행복합니다.’

‘행복합니다.’ 요것은 축복을 인정하려는 태도입니다.

하느님에게 받은 것이 안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은데 우리들은 행복을 못 느끼고 살아갑니다.

겸손되이 하느님에게 받은 많은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할까?


여러분들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길 원하시죠?
사제도 분명히 행복해야 됩니다.

사제로 살면서 불행하게 산다면 정말 비참한 삶이 아니겠느냐?

여러분들도 행복해야할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하느님 앞에 ‘주님 저는 행복합니다. 주님이 계시기에 행복하구요.

성모님이 계시기에 행복하구요.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구요.

한 달에 한 번씩 성모님 품을 찾아서 감곡성지에 찾아올 수 있어서 행복하구요.’

아멘.


행복을 찾아보다 보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입에서 ‘행복합니다.’

옛날에 어느 가수가 ‘나는 행복합니다.’노래 했죠?


마지막 여덟 번째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애덕을 의미합니다.


천국 팔언

다시 한 번 얘기해 볼까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훌륭하십니다.

괜찮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바로 이 천국 팔언이 주님께서 불러주신 자의 입에서 나와야 될 말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천국 팔언을 하는 사람이 앞에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보고 뭐라 그러느냐?

‘당신 멋져. 당신 멋져’ 그래요.

근데 이 당신 멋져는 뜻이 있어요.

자~ 여러분들이 ‘당’ 해보세요. 제가 풀이할께요.

‘당’ - 당당하게

‘신’ - 신나게

‘멋’ - 멋들어지게

‘져’ - 져주면서 살자.

이게 바로 ‘당 신 멋 져’

신나고 당당하고 멋지게 져주면서 사는 것이 뭐냐!

한마디로 부활신앙입니다.

 

부활하기까지도 힘들지만 부활을 지켜나간다고 하는 것도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부활에 이르기까지 수난과 고통을 참는 것, 참아서 부활하기까지도 힘이 들지만

부활한 후에 부활신앙을 유지해나간다고 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어렵죠? 안 쳐다볼 줄 알고....졸면 안 됩니다.

가끔 쳐다볼 겁니다. 여기 옆쪽도....저쪽도 마찬가집니다.

옆에 있다고 해서 실컷 졸면 안 됩니다.

 

부활한 후에 복음서는 두 가지의 사건을 전합니다.

빈무덤 앞에서 울고 서있던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가 나오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 이야기, 이 두 사건이 아주 큰 사건이었습니다.

 

첫 번째가 어떤 사건이였다구요?

빈 무덤 앞에서 울고 서있던 막달라 마리아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어요.’ 엉엉 울고 있었어요.

주님 어디 계신지 안다면 제가 모셔가겠습니다.

예수님을 누구로 알았다고 나옵니까?

요한복음 20장 11절 이하에 동산지기로 알았다 그랬어요.

그러다가 무슨 소리를 들었을 때 예수님을 알아봤습니까?

이름을 불렀을 때~~

‘마리아야!’ 하고 예수님이 이름을 불러줬을 때

눈이 딱 열려서 예수님인 걸 안 거예요.

그만큼 이름은 참으로 중요해요.


셋째 동생이 사제라는 거 아시죠?

아는 분은 알고 모르는 분은 지금까지 모를 겁니다.

셋째 동생이 사제인데 그 셋째 동생은 어릴 때부터 이 큰형이 우상 이었어요.

그래서 큰 형 따라서 신학교도 들어왔고 말하는 거, 걷는 거, 목소리까지

큰형하고 똑같아 지려고 지금껏 살아.... 그러니까 나는 내 동생 신부를 생각해서라도 잘 살아야 돼!

그 책임을 느껴요.

동생 신부가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랑 싸울 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뭔 줄 알아요?

‘너 우리 큰 형 이름 알어?’

‘김웅렬이 알어?’

왜냐? 그땐 내가 초등학교 때 싸움 짱이었거든.^^

‘김웅렬’   이름 석 자만 대면 동네아이들 내 동생 절대 못 건드렸어요.

그래서 우리 동생은 내 이름 가지고 먹고 살아 아예.....

한 십여 년 전에 피정을 갔더니 점심시간에 어느 분이 저에게 오시더니 명함을 주는데 보니까

울산공대 교수예요. 공학박사였어요.

자기가 아주 심각하게 신부님 이름을 연구했는데.

사제를 만들려면 무조건 ‘웅’자를 붙여야 된데요.

지금 한국에 삼웅이 있는데 첫 번째 김웅렬, 두 번째 오웅진, 세 번째 강길웅....

그 형제는 아주 심각한 얼굴로 아무튼 사제를 만들려면

가운데 붙이든 마지막에 붙이든 아무튼 ‘웅’자 붙이면 성공한다 이거예요.

대단한 연구를 저에게 해주셨어요.


제가 90년대 한 십년동안을 중국 선교를 나갔습니다.

그때는 등소평이가 개방 정책을 써가지고 선교하러나가는 것이 아니라

관광하러 나가서  몰래몰래 피정을 다녔어요.

중국은 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성에는 종교국이 있고, 그 종교국장과 카톨릭 회장이랑 얼마나 평소에 사이가 좋으냐에 따라서

내가 가서 피정을 시켜도 종교국장이 이렇게 모른 척 할 수도 있고......

사이가 안 좋았다가는 당장 끌려 나가요.

4년 동안 조선족 피정을 시켰고 4년동안 한족들, 중국사람들... 피정을 시켰습니다.


소팔가자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거기는 처음에 천주교 신자 여덟 집이 시작됐다고 해서 팔가자입니다.

그때 당시 갔을 때 한 천이백 명이 왔는데.... 천이백 명 가운데 천백명이 천주교 신자예요.

마차를 타고 옥수수밭 사이로 들어갔더니 마을이 나와요.

끝도 안 보이는 옥수수밭 사이에 동네가 있어요.

옛날 영화에 ‘대지’라는 영화 있죠?

그런 느낌이야.

그런데 마을 한가운데 성령상이 있어요. 비둘기 모양으로....

동네가 다 천주교 촌이니까.....

그리고 팔백 년 된 성당이 있는데  회장님이 종을 삼십분을 치니까

그 넓은 옥수수 밭에서 개미처럼 꼼지락 거리면서 신자들이 몰려드는데

순식간에 그 성당 마당에 구백 명이 모였어요.

평일미사를 구백 명, 천 명씩 하는 데예요.

근데 거기가 옛날에 김대건 신부님이 조선 땅으로 들어오기 전, 부제 때 삼년을 머물던 장소예요.

최양업신부님이 또 조선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삼년을 머물던 장소예요.

거기 신자들은 우리 옛날에 여기 있던 조선신학생이 사제가 돼서

지금 성인품에 올랐다는 걸 다 알아요.

그때 갔더니 놀랍게도 ‘대건’이가 그렇게 많아 아이들이....

‘김대건’ 

대건이야 한자까지 똑같아요.

제가 거기서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신부로서는 처음으로

[김대건 신부님 추모현양 묵상회]라고 하는 현수막타이틀을 걸고

일주일 동안 통역을 써가면서 한족들에게 역사적인 피정을 시켰습니다.


사실은 조선족 자체가 서울말을 이해 못하는 게 많아요.

그러니까 내가 열 개를 얘기하면 조선족은 일곱 개 밖에 못 알아들어요.

그 조선족이 다시 중국말로 통역을 해주면 실제로 내가 열 개를 얘기해도

 앞에서 듣는 한족들은 다섯 개밖에 못 알아들어요.

근데 놀라워요.

웃어야 될 때 웃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울어야 될 때 울어요.

그 얘긴 뭐냐?

못 알아듣는 다섯 개 대신에 뭐가 들어가 있느냐?

성령이 같이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5일동안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신부가 가서 뜨거운 피정을 눈물로써 했어요.

작별을 하고 2년 후에 다시 소팔가자를 갔더니...

세상에~~~ 낳은 아이마다 다 웅렬이야.

내가 피정지도를 하고 떠나고 난 다음에 낳은 아이는 전부다 웅렬이야.

그게 96~ 7년 얘기니까 한 10년이 넘었죠?

아마 12살, 13살 된 아이들은 지금 전부다 웅렬일거예요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참 특이하고 신기해

내가 감곡성당에 와서 못 하고 있는 게 한 가지가 있어.

다른 성당에서는 늘 했었거든...여기서는 2년 반 동안 딴 거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가지고....

못한게 있어요,

항상 이름포를 만들어 가지고 미사 때는 이름표 꽂고 성당 떠날 때는 떼라고 했어요.

이름표를 가지고 성체를 받으러 나올 때는

“루시아, 그리스도의 몸!”

“베드로, 그리스도의 몸!”

사제의 입에서 자기 본명이 불러졌을 때 가슴이 울렁거려요..


마치 여러분들 ‘자캐오’ 이야기 아시죠?

돈도 많고 권력이 있는 세리장이었지만 가슴은 펑 뚫어져 있었어요.

동족으로부터 왕따 당하고 그러던 어느날

죄인의 친구라고 하는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오신다고 했어요.

자캐오가 키가 적어요? 커요?

너무 작아요.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니까 사람들이 그놈 얼마나 미워했겠어.

발로 차고....뚫고 들어갈 재간이 없었어.

그래서 사람들보다 앞질러가서 무화과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지요.

평상시의 비단을 칭칭 감았던 그 옷을 입고는 나무에 절대 못 올라가요!

옷을 훌훌 벗어버립니다..

그건 뭡니까?

이제껏 가장 귀하게 여겼던 돈, 명예 이것을 다 포기한다는 그 뜻이에요.

세리장이면 기관장이었어요. 나무를 타는 그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점잖은 양반이....

나무로 기어 올라가서 배를 붙이고 기었겠지요.

그 때 예수님이 딱 지나가셔!

예수님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자캐오를 보고 뭐라고 그래요...

이름을 불렀어요.

“자캐오야!”

자캐오가 그 전에 예수님 만난 적 있어요?

없었어요.

저 양반이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야.

“자캐야, 이리 내려오너라!”

자캐오라는 이름을 불렀을 때 5만 볼트 전기에 짜르르~~~

감전이 되어서.. 자캐오의 인생은 끝난거야!

예수님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마리아야!“ 하고 이름 불러주었을 때

예수님을 봤듯이....

저는 그래서 신자들의 이름을 늘 불렀어요.

교우들끼리도 밖에 나가서 본명 잘 모르잖아요.

“어, 루시아씨”

“어, 베드로?”

형제님, 자매님.....

떠날 때는 그렇게 할 거예요.

이름이 그만큼 중요해요.


빈 무덤을 지키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가 “마리아야!” 하는 이름을 불렀듯이

오늘 이 밤에 하느님께서는...성모님께서는 여러분 각 자의 이름을 부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이야기지요.

30리길을 걸어가면서 예수님과 함께 가면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요.


성서에 보면 눈이 가리워져서....

한평생 내 옆에서 같이 계신대도 불구하고 내 눈이 가리워져 있을 때는

절대 주님을 알아볼 수가 없지요. ~답변에 이어집니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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