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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과거를 들먹이지 않고 *(루가 24,36-4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28 조회수475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1 4 28일 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
(루가 24,36-48)
 

 

 

말씀의 초대

베드로의 설교는 힘이 있다.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생명의 영도자를 죽인 백성들에게 무지를 깨닫고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촉구한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시어 백성들을 악에서 돌아서게 하시고 복을 내리실 것이라고 전한다(1독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손과 발을 보여 주시고 그들과 음식을 나누신다. 단순히 환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육신까지 부활하시어 우리 삶 한가운데 오셨다(복음).

 

***묵상방*** 

부활은 지식이 아닙니다. 부활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애정입니다. 사랑과 애정을 어떻게 이론으로 증명할 수 있을는지요?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스승님께서는 자꾸만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한계를 깨뜨리시기 위해서입니다. “왜 놀라느냐? ……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안타까움이 담긴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그래도 제자들의 의구심은 여전합니다. 마침내 스승님께서는 음식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잡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랑과 인내로 다가가시는 모습입니다. 이렇듯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화려하게 나타나셨지만, 제자들의 반응은 초라했습니다. 그런데도 스승님께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 주셨습니다. 오히려 성경 말씀을 해석해 주시며 위로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인데도 부활 사건을 못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니 후대의 신앙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분의 개입을 기다려야 합니다. 믿는 이들 역시 예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반드시 개입하십니다. 그리하여 평범한 사건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주십니다. ‘보통의 만남을 통해서도 가르침을 남기십니다.
사건과 만남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날 예수님의 부활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부활은 전혀 예기치 못한 깨달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제자들은 부활하신 스승을 보자 유령으로 착각합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건 좀 심한 일입니다.
어쩌다 주님의 제자들이 이렇게 되었는지요? 두려움 때문입니다. 스승이 떠나자 희망도 자신감도 함께 떠나 버렸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그들 앞에 스승이 나타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십니다. 그들의 굳은 마음을 누그러뜨리시려는 배려였습니다.
생선을 잡수시는 예수님과 그분을 지켜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놀람과 환희와 부끄러움이 교차되는 얼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생선 한 토막만을 달랑 드신 것이 아닙니다.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평소의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써 부활하신 당신을 알아보게 하셨던 겁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의도를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스승은 그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선포하십니다.
부활 사건의 깨달음은 지식으로 습득되는 이론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려 주시는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자세가 중요한 것이지, 지식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교리 해석만으로 이 위대한 진리에 접근하려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과거를 들먹이지 않고

 

+*반영억라파엘신부*+ 

 

 

사람들로부터 미처 생각하지 않은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당황 되기도 하지만 개인의 생각을 전제하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부의 얘기이기 때문에 사적인 얘기로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모르면 모른다고 답하고 다음에 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지금 당장은 기대를 채워줄 수 없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합니다. 섣불리 아는 척 하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약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있었고 무덤에 묻혔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한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 앞에서 보면서도 유령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자기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시면서 보아라, 만져 보아라. 고 하셨습니다. 혹 눈으로 환상을 본 것 같으면 직접 만져서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믿지 못하였고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구운 생선을 드시고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음식을 잡수신 것을 보면 부활한 몸이 실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예전의 몸이 아닙니다. 나타나셨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시고 하는 것을 보면 모든 한계로부터 자유로우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오고 가시는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눈을 열어 주셔야 그분을 알아볼 수가 있는 법입니다. 

 

주님을 알아 뵈려면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아는 것이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은 열지 못한 채 머리만 크게 되면 아는 것이 오히려 병이 되고 맙니다. 아는 것이 힘이 될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 결국 유령으로 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여전히 사랑을 주셨습니다. 옛날의 허물을 들추어낼 수 있을 정도로 속이 좁은 분도 아니셨고 그저 믿음을 키워주지 못한 것이 안쓰러울 뿐이었습니다.

 

저 놈은 나를 배신한 놈인데, 저 사람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인데흉보며 험담한 사람인데...하며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아픔들이 나를 지배한다면 주님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를 들먹이지 않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루카24,47) 고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 그분 안에서 큰 품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아 하느님의 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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