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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는이들의 사명 (마르꼬 16,9-1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30 조회수34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1 4 30일 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마음이 완고하여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그들을 꾸짖으셨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꼬 16,9-15)

 
 

 

 

말씀의 초대

베드로와 요한은 유다의 지도자들이 어떤 협박과 위협을 하더라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도들의 이러한 담대함은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에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굳건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1독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 부활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잃고 슬퍼하며 울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는다. 나중에 열한 제자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신다(복음).

 

오늘의 묵상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납니다. 그녀의 열망은 그만큼 강렬했습니다. 당연히 주님의 제자들에게 사실을 알립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막연한 슬픔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막달레나는 답답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 그들을 꾸짖疸십니다.
막달레나는 기적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일곱 마귀로 표현했던 악의 세력에 휩싸였던 분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릅니다. 완강한 악의 힘으로 해석할 뿐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물리쳐 주셨습니다. ‘절망의 끝에 있던 그녀에게 희망을 선물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다시 살아나시어 모습을 드러내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사랑의 열망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숱한 기적을 보았지만 자신들에게 일어난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믿었지만, 막달레나와는 달랐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무력해졌습니다. 다 끝난 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부활은 어영부영 알게 되는 지식이 아닙니다. 인생과 직결되는 믿음입니다. 받아들이면 삶의 한 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살아납니다. 열망이 클수록 부활의 주님께서는 가까이 오십니다. 우리는 또 다른마리아 막달레나가 되어야 합니다.

☆☆☆

 부활의 정신은 새로운 출발에 있습니다. 언제라도 다시 시작하는 자세입니다. 일이 잘 풀릴 때에는 그것이 쉽습니다.
매일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귀찮은 일이 생기고 계획대로 풀리지 않으면 짜증과 분노가 찾아듭니다. 새 출발은 어디에서 먼저 시작해야 할는지요?
주어진 모든 것을 다시 돌아보는 일입니다. 필요했기에 주셨습니다. 장점도 약점도 시련도 고통도 그리고 질병까지도 필요했기에 주셨습니다. 모든 인연과 관계 역시 나에게는 꼭 있어야 했기에 맺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주신 분의 뜻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지탱하고 있는 힘의 원천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새 출발을 시작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복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부활을 확인시키시려고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도 부활의 삶을 살라는 뜻에서 그렇게 하셨던 겁니다. 그러니 변화의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다고 받아들이면 그 순간 변화는 시작됩니다. 스승의 발현으로 제자들은 ‘모든 것’의 원인이 주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은총 없이는 새로운 출발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애써도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믿는이들의 사명

  ~*반영억라파엘신부*~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합니다. 다양한 사람이지만 그들을 인정해 주고 공감해 주며 위로해 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로부터 주어진 기쁨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보람입니다. 그러므로 일상 안에서 행복과 보람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는 정성이 꼭 필요합니다. 지금 이순간 나와 만남을 이루는 이를 위해 모두를 바칠 수 있는 은총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한 신부님의 아버님을 떠나보내면서 한 개인과의 관계를 얼마나 큰 정성과 사랑을 가지고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문을 온 많은 사람들,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며 미사를 봉헌하고 동료애를 확인하는 신부님들 그리고 신자들을 맞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만남이 소중함을 새삼스레 느끼게 됩니다. 무엇인가의 연결고리가 있기에 함께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와 기쁨을 간직합니다. 

서로를 위하고 기도하는 삶이 곧 복음의 선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을 주님 안에 감사할 수 있도록 눈뜨게 한다면 그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될지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은총의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선포하는 방법은 다양하고 일상 안에서 표현되는 사랑이야 말로 주님을 만나는 감동을 줍니다. 어떤 기회를 특별히 만들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순간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면 그것이 큰 사랑이요, 복음의 선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마음이 굳어져 있었던 까닭입니다. 자기의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다른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는 법입니다. 담기는 것은 담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달라진다.는 옛 말이 있듯이 은총이 풍부해도 담을 그릇의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담을 수 없습니다. 비어 있지 않은 그릇에 무엇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부활의 사실을 이미 알려주었고 또 그대로 이루어졌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시고 이르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16,15)

예수님께서는 듣는 사람의 반응에 상관없이 당신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누구의 말에 구애 받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상함과 따뜻함으로 사랑을 가지고 온 정성을 다하여 그러나 사람의 눈에 들기보다 하느님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전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첨부파일 . 갈릴리 마을 그 숲속에서.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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