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3년에 궁녀로 뽑힌 문영인 (비비안나) 은 1797년 병에 걸려 궁궐에서 나와 살 때 실 장수 노파한테 신앙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문영인은 이듬해 궁궐에서 신자인 것이 발각되어 쫓겨나 청석동에서 살았습니다. 정약종 회장이 한양으로 이주하자 강완숙 (골롬바) 의 요청으로 그한테 집을 두 달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강완숙의 집에서 주문모 신부님한테 교리를 배웠습니다.
문영인은 처음부터 신앙이 굳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강완숙은 그녀한테 ‘잠깐씩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가르쳐 주어야 도움이 안 된다.’ 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그녀의 신앙을 더욱 굳게 하려는 뜻에서 한 충고처럼 들립니다. 그녀는 포도청에서 혹독한 형벌 중에 정신이 혼미해져 신앙을 버리겠다고 했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신앙을 굳게 증언했습니다. 형조에서 ‘포도청의 맨 처음 진술에서는 비록 사학을 배척한다고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사실은 입으로는 그렇다고 했으나 마음으로까지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으므로 곧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독실하게 믿은 학문인데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가 잔혹하게 다리에 매를 맞을 때 다리에서 솟구친 피가 금방 꽃으로 변해 공중으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서소문 밖에서 참수를 당할 때 목에서 하얀 피가 흘러내렸다고 합니다.
신앙을 살아가면서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신앙이 돈독한 이들은 그들의 나약함에 무관심하기보다는 충고와 모범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여진천(원주교구 배론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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